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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출범 한달...대기업, 6개월째 투자계획 못내놓는 이유는?


입력 2017.06.12 15:44 수정 2017.06.12 15:59        박영국·이홍석 기자

경영환경 개선 정책 없고 위협 요인만 늘어

주요 대기업 사옥 전경. 왼쪽부터 삼성서초사옥, 현대차양재사옥, 여의도 LG트윈타워, SK서린빌딩.ⓒ각 사


경영환경 개선 정책 없고 위협 요인만 늘어

매년 초 투자 및 채용계획을 발표하던 주요 그룹들이 올해는 6개월째 조용하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나오던 ‘선물 보따리’ 역시 이번 정부 출범 이후로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그룹 중 SK그룹을 제외하면 올해 투자·채용계획을 발표한 곳은 전무하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투자 계획은 갖고 있지만 통상 수준을 벗어나는 대규모 투자계획은 없다”면서 “지금으로서는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별 투자계획을 취합해 발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올해는 각 계열사별로 시장 상황에 맞게 투자와 고용계획을 수립한 상태”라며 “투자 규모가 예년과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대기업들은 투자발표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던게 사실이다. 특검 수사의 칼날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했고, 이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조기 대선 등 정국이 정신없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도 투자·채용발표가 없는 건 다소 의외다. 그동안 정부가 바뀌면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계획으로 ‘선물 보따리’를 내놓던 관례가 있어왔다.

이는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재계 일각에서는 ‘받은 게 없는데 무엇을 내놓겠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투자계획을 무작정 짜는 게 아니라 일단 투자 소요를 파악하고, 국내 투자가 유리한지 해외 투자가 유리한지 입지 조건과 인건비, 각종 세제혜택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요즘 상황을 보면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고려할 만한 조건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오히려 섣불리 투자했다가 리스크만 떠안을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통상 새 정부가 들어서면 경영환경에 대한 기업들의 고충과 요구사항을 들어보고 정책 기조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업계 의견을 수용한 규제 완화와 세제혜택 등의 방안을 내놓는다. 이후 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호응해 투자와 고용 계획을 제시하며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계획에 힘을 실어준다. 일종의 ‘기브 앤 테이크’인 셈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기업 경영환경 개선과 관련된 정책 발표가 전무했다. 오히려 재벌개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경영 리스크를 확대하는 정책들을 내놓고, 청와대 정책실장과 공정거래위원장에 ‘재벌 저격수’로 불려온 인사들을 임명하거나 내정하면서 재계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경제계 목소리를 들어보겠다는 노력도 없었다. 문 대통령 취임 한 달이 지난 이달 8일에서야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일부 인사가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간담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정위 위원장이 아닌 사회분과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위원들이었다.

사회분과위는 사회, 노동, 복지, 여성, 문화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이들과 경제계 주요 현안을 폭넓게 논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 간담회에서도 경제계 목소리를 듣기 보다는 비정규직 문제 등 정부 정책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지금 분위기에선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압박을 수용하기도 힘겨운 상황”이라며 “일자리 창출은 정부가 주도한다고 했으니 그 기조에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물론 산업부 장관 인선이 마무리되고 매년 그래왔듯이 산업부 장관 주재 ‘투자 간담회’가 소집되면 각 기업 CEO들이 뭐라도 하나씩 내놓을 수밖에 없겠지만, 기존 중장기 투자계획의 올해 투자분이거나 필수적인 R&D(연구개발) 투자에 국한되고, 대규모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신규 투자계획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최근 대기업들의 유보금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난 데 대해 논란이 이는 부분에 대해서도 대기업들은 할 말이 많다.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유보금을 늘려놓는 게 기업들의 성향이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들의 불확실성은 커졌고, 새 정부 들어 위협 요인은 더욱 늘어 가는데 유보금을 줄이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노동 관련 이슈건, 지배구조 개편 관련 이슈건 모두 기업들에게는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리스크에 대비하지 않고 정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무작정 유보금을 털어 투자에 나서는 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무책임한 행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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