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해법 더딘 '나고야의정서'…화장품·제약업계 '불안불안'
유전자원 이용 비율 높은 화장품·제약업계 타격 예상
업체별로 자구책 찾지만 "별 소용 없을 것" 회의적 분위기
생물 주권 보호를 위한 '나고야 의정서' 발효가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화장품, 제약·바이오 등 연관 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하지만 나라마다 관련 법령이 다르고 의정서 규정도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데다 정부 차원의 정책 마련과 지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5월 나고야 의정서 비준서를 유엔 사무국에 기탁했으며 오는 8월 17일부터 당사국이 된다.
나고야 의정서의 정식 명칭은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공유(ABS·Access to genetic resources and Benefit Sharing)에 대한 의정서'다.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이익을 자원 제공 국가와 이용 국가가 공정하게 공유하는 국제협약이다. 특정 국가의 생물 자원을 이용해 상품화하려면 해당국의 승인을 받고 이익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우리나라 생물자원이 세계적으로 보호받을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원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분야의 경우 로열티가 높아지는 등 원료 수급의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 특히 화장품 및 제약·바이오 업계는 원료 수입 비중이 높아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조사결과 유전자원 이용 제품 비율은 의약품 63.7%, 건강기능식품분야 46.2%, 화장품 44.2%, 바이오 화학 및 기타 43%다. 또 나고야 의정서가 시행되면 제품단가 25% 상승, 연구개발비용 31.8% 상승, 허가와 절차의 복잡성 9.1% 증가 등이 예측된다.
주요 화장품 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부터 나고야 의정서 대응 팀인 CFT(Cross Functional Team)을 만들어 대비하고 있다. 사용 중인 원료의 원산지를 확인하고, 이익 공유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국산 원료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무궁화 줄기인 목근피에서 추출한 보습 성분을 함유한 마몽드 '모이스처 세라마이드 인텐스 크림', 이른바 '무궁화 크림'을 선보인 바 있다.
LG생활건강, 한국콜마 등 다른 화장품 업체들도 의정서 규정이나 업계 동향 등을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제약·바이오 업체들도 최소한의 대책 마련에 나서는 분위기다. 동아에스티는 기획 프로젝트 팀을 중심으로 대체 생물자원 개발 등 대응 전략을 세우고 있고, SK케미칼이나 녹십자 등 다른 회사들도 내부적으로 수입 원료 현황을 확인하고 자원 제공국과의 이익 공유 계약 체결을 계획하는 등 의정서 대응 방안을 찾고 있다.
다만 현 시점에서 업체별로 뾰족한 자구안을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담당 팀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 관련 법령이나 가이드라인이 정확히 나오지 않아 맞춤식 대처가 어렵다"면서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각 주마다 법령이 다를 수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파악될 때까지 모니터링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차후 중국이 우리나라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경제적 보복으로 나고야 의정서를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중국은 국내 수입 유전자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요 수입국이다.
중국이 올해 3월 공개한 '생물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 관리조례(초안)'를 봐도, 특허 출원시 출처공개 의무와 이익의 0.5%~10%의 추가 기금 납부 등 자국에 유리한 조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산업계의 원활한 대응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은 부족한 수준이다.
올해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이 바이오산업계·연구계 종사자 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도 조사에서 나고야 의정서 대응 준비 중 어려운 점으로 ▲법적분쟁 대응 31.4%, ▲나고야의정서 적용 여부 24.1%, ▲이익공유 조건 23.4%, ▲유전자원 접근절차 20.4% 순으로 나타났다.
대응 준비사항으로는 이익공유 절차정보 확인이 41.6%, 유전자원 제공국 파악이 27.2%, 제공국 비준 여부 조사가 16.8%를 차지했고, 향후 정부가 제공할 정보 서비스 기능으로 유전자원 정보 검색과 편리한 연계, 기본 절차에 대한 정보 제공 등이 우선적으로 요구됐다.
정부는 정보 공유 서비스에 대한 업계의 필요에 따라 지난 5월 '국가생약자원정보 총괄 DB(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추진했지만, DB 구축은 의정서 발효 시점인 8월 중순부터 11개월간 진행될 예정이어서 한발 늦은 대응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가간 협상에서 정부가 어떻게 주도권을 차지할지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 한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중국이 나중에 논의 테이블에서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데 미리 대책을 마련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정부 차원의 협상력이 앞으로 더 결정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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