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해?] 원작과 다른 반전…'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작가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
설경구·김남길·김설현 주연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리뷰
설경구·김남길·김설현 주연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20만부가 팔린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김영하 작가가 쓴 이 소설은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앞으로 나아가던 이야기는 후반부에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독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앉은 자리에서 후딱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밌는 소설이 스크린에서 되살아났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은 양날의 검이다. 원작에 대한 기대감은 플러스 요인이지만, 원작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
영화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을 내세운 원작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되, 주변 캐릭터에 변화를 줬다.
병수(설경구)는 연쇄살인범이었다. 열다섯 살, 엄마와 누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를 우발적으로 죽인 후 연쇄살인범이 됐다. 죄책감 따윈 없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하나. 죽어 마땅하다는 것. 세상의 나쁜 것들을 '청소'한다는 마음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 병수는 살인을 그만두고 동물병원 원장으로 17년 동안 살인본능을 감춘 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병수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며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으려 애쓴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던 병수는 접촉사고로 만난 남자 태주(김남길)에게서 자신과 같은 눈빛을 발견하고, 그가 살인자임으 직감한다. 병수는 경찰에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신고하지만, 태주는 경찰이라 아무도 병수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다 병수는 태주가 딸 은희(김설현)와 사귀는 사실을 알고 딸을 구하려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소설이 주는 속도감을 그대로 살려 팽팽한 긴박감을 유지했다. '세븐 데이즈', '용의자'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스릴러에 능한 재주를 보기 좋게 발휘했다. 원작을 읽지 관객들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원작을 읽은 관객들은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며 향후 전개를 상상하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특히 병수가 망상과 실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매끄럽게 처리해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병수가 살인을 하는 이유다. 소설 속 병수는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때문이다. 반면 영화에선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청소하기 위함'이다.
병수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도 원작과 다르다. 소설에서 병수가 연쇄살인범이라고 의심하는 박주태는 영화에서 태주라는 이름의 순경으로 바뀌었다.
병수의 딸 은희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소설에선 아버지 병수에게 애정이 별로 없지만, 영화에선 병수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착할 딸로 묘사됐다.
원 감독은 "소설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원작을 영화화하는 게 쉽지 않았다"면서 "소설의 원형을 반영하려 했고, 판타지적인 요소는 관객이 직접 느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설 속 주인공은 독자가 응원하기 힘든 인물"이라며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은 관객이 응원할 수 있게끔 했다. 소설과 영화의 장르적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 감독의 말마따나 소설과 영화의 차이는 병수에 대한 관객들의 시선에서 나온다. 영화에선 병수와 은희의 부성애가 부각되고, 새로운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면서 병수를 응원하게 된다.
이는 원작 팬들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다. 원작은 마지막에 강력한 한 방으로 반전을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후반부에 늘어지면서 원작이 주는 깔끔한 맛을 잃어버린다. 반전에 대한 강박관념을 조금 덜어냈으면 어땠을까.
주연 설경구의 연기에는 엄지가 올라간다. 캐릭터를 위해 체중 10kg 이상을 감량한 설경구는 표정의 변화, 피부의 미세한 떨림, 현실과 망상을 오가며 겪는 혼돈을 온몸으로 연기했다. 사실상 설경구가 끌고 간 영화로, 그의 연기를 보노라면 감탄이 나온다.
설경구와 반대로 김남길은 체중 10kg을 늘렸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인물을 준수하게 연기했다.
걸그룹 AOA 출신 설현도 극에 잘 녹아들었다.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한 느낌이다.
9월 6일 개봉. 118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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