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드리워지는 '키코 악령'…금융권 초긴장
여당, 키코사태 금융적폐 규정…피해자·시민단체 재조사 촉구
“불완전판매 아닌 사기 입증 가능…당국 재조사 이유 명백“
형사 고발 움직임 본격화…민간 혁신위 재조사 향방에 '눈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최대 20조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진 키코 사태에 대한 재점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당시 피해기업과 시민단체, 정치권까지 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이에 따른 후폭풍이 어느 선까지 확산될지 여부 또한 관심을 끌고 있다.
700여개 수출기업 중 70% 도산…"사기행위 입증 가능"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집권여당이 과거 키코 사태를 대표적인 금융적폐로 규정한 데 이어 당시 피해기업들을 중심으로 키코 상품을 판매했던 시중은행들에 대한 사기죄 적용을 주장하고 나서 사건 재조명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안은 그간 사실상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금융기관 및 상품의 사기성 여부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를 사이에 두고 첨예한 대립각을 보여왔던 금융기관과 피해기업 간의 연이은 법적 분쟁이 증거와 논리로 무장한 가운데 또다른 국면을 맞게 된 셈이다. 그간 키코 사태 해결에 목소리를 높여 온 조붕구 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은 "시중은행들의 불완전판매나 건전성 등에 초점을 맞춰왔던 그간의 방식에서 벗어나 은행들의 키코 판매 과정에서의 녹취록 등을 통해 사기성 부분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당시 투자기업들의 70% 가량이 줄도산하면서 빠르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은행의 ‘불완전판매’, ‘고위험 파생상품 취급 적법성’ 등을 중심으로 소송을 진행해왔다. 금융당국 역시 2010년 키코를 판매한 신한·우리·하나 등 시중은행 9곳과 68명 임직원을 징계했으나 ‘불완전판매’ 혐의에 대해서는 대부분 적용하지 않았다.
여기에 여당을 중심으로 정치권 등이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지난 2010년 당시 이와 관련한 서울중앙지검 수사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는 제일은행 본점 딜러와 지점 담당자 간 통화내역이 담긴 이 보고서에는 40배 가량 이득이 나는 키코에 투자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 의원은 “이번 사례는 2010년 738개사가 3조 2천억 원의 손실을 본 대표적인 금융사고”라며 “키코 사태야말로 대표적인 금융적폐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은행권 수수료가 0.2% 포함된 사례를 예로 들며 키코 사태에 대한 재수사를 법무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형사 고발 움직임 본격화…혁신위원회 재조사 향방에 '눈길'
한편 피해기업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형사소송 등 움직임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관계자들은 특히 당시 사건 수사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정황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 회장은 “여러 시민단체들과 협의를 거친 뒤 고발 일정을 조율 중”이라며 "과거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릴 당시도 일선 검사의 수사 내용과는 다르게 결론이 나왔다는 의혹도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번 사안에는 키코 상품을 판매한 시중은행 뿐만 아니라 상품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과 법조계, 정치권 관계자 등이 두루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며 이번 사안 확대에 따른 영향이 어느 선까지 미칠지 여부도 관심을 끌고 있다.
다만 이미 대법원을 통해 한 차례 결론이 상황에서 이에 대한 결론이 어떻게 날 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법조계의 특성 상 한 번 난 기존 판결을 뒤집기가 사실상 쉽지 않은 데다 앞서 사기성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결론 역시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잇단 재조사 요청에 금융위원회의 외부 민간자문단 격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이번 사태를 재검토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 향후 키코 사태의 향방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최근 혁신위가 설정한 4가지 사안 가운데 '금융권 업무관행 개선 방안' 중 하나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와 언론, 소비자 등 민간 위원 13명으로 구성된 이번 혁신위는 과거 금융당국의 검사 및 제재 과정의 적절성 여부와 은행의 키코 설계·판매 타당성을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당시 금감원은 해당 금융사들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이전하는 거래를 했거나 기업의 수출예상액을 과도하게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추궁에 나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재조사의 실효성 여부와 관련해 조 회장은 "대법원에서 키코 사태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고는 하나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체 쟁점 중 절반도 채 다루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번 재조사를 계기로 책임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과 당시 9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이제라도 피해기업들에 대한 제대로 된 구제방안 등이 순차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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