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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왜 미안하다고 안 해요?" 웃는 아들…68년 만에 꺼낸 말


입력 2018.08.24 19:54 수정 2018.08.24 19:55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아버지, 그때 소고기 어디서 사셨어?"…"..."대답 없는 아버지

'우리엄마 어데가고 너만홀로 피었느냐…' 글쟁이 언니가 쓴 시

체제선전 열올리는 北 가족도…어색한 분위기 속 농담 오가기도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조카 안세민(80) 할머니와 남측 고모 안경숙(89) 할머니가 눈믈을 흘리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버지, 그때 소고기 어디서 사셨어?"…"..."대답 없는 아버지
'우리엄마 어데가고 너만홀로 피었느냐…' 글쟁이 언니가 쓴 시
체제선전 열올리는 北 가족도…어색한 분위기 속 농담 오가기도


24일 오후 3시 15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단체상봉에서 재회한 남북 이산가족들은 절절한 그리움을 털어놨다. 68년 만에 만난 남북 이산가족들은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진행된 첫 만남에서 반가워 얼싸안고, 안타까워 서로를 다독이며 끈끈한 가족애를 나눴다.

오후 5시 15분. 딱 2시간 만에 "아쉽지만 오늘 단체상봉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북측 가족이 먼저 일어나서 상봉장을 나가는 방식인데, 남북 가족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북측 안내원들이 돌아다니며 북측 가족들을 데리고 나갔다.

상봉 종료 안내가 나오자 북측 리근숙(84) 씨의 표정이 금세 침울해졌다. 남측의 이부동생 황보원식(78) 씨는 "저녁 때 또 만나 (환영만찬) 해야하니까, 또 만나"라며 달랬다. 리근숙 씨는 전쟁통에 원산 방직공장에 돈벌러 나간다고 떠나면서 가족들과 헤어졌다. 황보원식 씨는 오늘 북측 이부누나 근숙 씨를 만나 한동안 끌어안고 울었다.

"아버지, 그때 소고기 어디서 사셨어?"…대답 없는 아버지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북측 아버지를 만난 조정기(67) 씨는 오늘 아버지를 만나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 북측 아버지 조덕용(88) 씨와 남측에 남겨진 아들 정기 씨는 이번 상봉에서 유일한 부자 상봉으로 눈길을 끌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에서 온 아버지 조덕용(88·왼쪽) 할아버지와 남측 동생 조상용(80,가운데), 아들 조정기(67·오른쪽)씨를 얼싸안고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들 정기 씨는 귀가 어두운 아버지 귀에 대고 "아버지 그때 소고기 어디서 사셨어요?"라며 외치듯 물었다. "아버지, 그때 이모 손에 들려보낸 소고기 어디서 사셨어요?" 라고 재차 묻는 정기 씨의 말에 아버지 덕용 씨는 들리지 않는지 아무 말이 없다.

곁에 있던 덕용 씨의 동생 조상용(80) 씨가 "무슨 소고기?"라고 묻자 정기 씨는 "(아버지가 피난) 나가실 때 어머니가 그랬대요 임신했다고. 그래서 아버지가 소고기 사서 이모 손에 들려보낸 걸로 알아요"라고 답하며, 다시 아버지 쪽으로 몸을 돌려 "소고기 어디서 사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러고는 테이블의 다른 가족들에게 "홍천역에서 사셨데요, 홍천역"이라고 되짚었다.

아버지 조덕용 씨는 6.25 전쟁 때 홀로 북으로 갔고, 당시 어머니 뱃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정기 씨가 있었다. 정기 씨의 어머니는 남편 조덕용 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불과 50여일 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정기 씨의 어머니는 그동안 68년 평생을 남편 덕용 씨를 기다리다가 끝내 숨을 거두셨다고 아들은 전했다.

덕용 씨는 아들에게 "손수건은 뭐하러 사왔어?" 라고 물었고 정기 씨는 "나 눈물 닦으려고 사왔지"라고 말했다. 정기 씨는 이어 "아버지 근데, 보니까 괜찮아요. 어머니 때문에 그렇지..."라며 "나한테 미안하다고는 안 해요?"라고 물었다. 덕용 씨는 들리지 않는지 대답이 없고, 정기 씨는 아버지 손을 잡고 그냥 웃었다.

'우리엄마 어데가고 너만홀로 피었느냐…' 글쟁이 언니가 쓴 시

6남매 딸부잣집 둘째인 북측 량차옥(82) 씨는 김일성대 문학과를 나와 과학기술통신사에서 40년 동안 기자생활을 한 '엘리트'다. 량 씨가 어린 시절 '우리집 쥐'라는 작문을 했는데 이를 보고 아버지가 '너는 기자가 돼야 될 것 같다'고 칭찬했다는 전언이다. 그후 량 씨는 북에 가서도 아버지 말씀을 잊지 않고 '기필코 기자가 돼 통일이 되면 기자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해 실제 기자가 됐다고 한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누나 리숙희(90) 할머니가 남측 동생 이용희(리용희, 89) 할아버지와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글솜씨가 남달랐던 량 씨는 북측에서 시집도 냈다고 전했다. 량 씨는 북에서 엄마 생각을 하며 쓴 시 '우리집에 코스모스'를 양순옥(86)·계옥(79)·영옥(77)·경옥(74)·성옥(71) 등 남측의 다섯 자매에게 읊어줬다. "우리집에 코스모스, 담장밑에 코스모스, 빨간꽃은 피었는데, 우리엄마 어데가고, 너만홀로 피었느냐…너만보면 엄마생각, 너만보면 고향생각". 동생 경옥 씨는 언니가 읊는 시를 적어 남측 취재진에게 자랑해보이기도 했다.

체제선전 열올리는 北 가족도…어색한 분위기 속 농담 오가기도

일부 북측 가족들이 훈장 등을 잔뜩 챙겨 진열해보이며 체제 선전에 열을 올려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한 북측 이산가족은 챙겨온 훈장 등을 테이블에 진열해 놓고 남측 가족에게 "우리 민족이 외세를 몰아내야지"라고 열심히 설명했고, 이에 남측 가족이 "하하, 네 우리나라 좋은 나라죠"라고 답하며 이내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남북 동생 강두리(87·여) 씨를 찾은 북측 강호례(89·여) 할머니의 딸이 호례 씨를 향해 "오마니가 당의 품속에서 오래 사시니까 할머니 얼굴이라도 보잖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강두리 할머니가 "북에서는 평소에도 한복을 입고 사느냐"고 묻자 호례 씨의 딸은 "우리는 민족성을 살려서 항상 치마저고리를 입습네다"라고 대답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량차옥 (82) 할머니와 남측 언니 양순옥(86), 동생 양계옥(79), 동생 양경옥(74), 동생 양성옥(71), 동생 양영옥(77) 등 6자매가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에 남측 가족들은 어색한 듯 웃다가 강두리 할머니가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우리는 그냥 이런 거 입고 산다. 하하하" 라고 농담을 던지자 폭소가 터지며 어색한 분위기가 이내 풀리기도 했다.

아쉽기만한 2시간의 첫 단체상봉을 마친 남북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후 7시 14분 환영만찬으로 한번 더 그리운 가족들을 만났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2차 상봉이 시작되고 가슴을 저미게 하는 저마다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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