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면 언제 다시 만나"…차창 너머 이산가족 '생이별'
"68년만에 처음보고 마지막이 됐어" 아버지, 우리 아버지
기약없는 이별에 눈물만…"우리 꼭 같이 사는 날 오도록"
"지금껏 살아줘 고맙고, 건강해요 고마워요" 마지막 인사
"68년만에 처음보고 마지막이 됐어" 아버지, 우리 아버지
기약없는 이별에 눈물만…"우리 꼭 같이 사는 날 오도록"
"지금껏 살아줘 고맙고, 건강해요 고마워요" 마지막 인사
"상봉이 모두 끝났습니다"
26일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강원도 고성 금강산호텔 2층 상봉장에서 긴 이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어 "잘 있어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가 반복되는 북측 가요 '다시 만납시다'가 울려퍼졌고, 북측 가족이 먼저 퇴장하면서 남측 가족들은 "잘가" "또 만나요" "오래 살아라" 라는 마지막 인사를 토해내듯 내뱉었다.
북측 가족들은 상봉장을 나서며 2층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보고 눈물을 터뜨렸고, 남아있는 남측 가족들은 "건강해야해" "몸조심해라" 마지막 당부를 전하며 기약 없는 이별 앞에 무너져 내렸다.
2차 상봉 마지막 날인 이날 남북 이산가족들은 작별 상봉으로 또 한번의 이별을 나눠야 했다. 꿈에 그리던 휴전선 너머의 가족들을 만난 이산가족들은 2박3일 간의 상봉 일정을 마치고 또 한번의 이별을 하게 됐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지난 사흘 간 총 6차례에 걸쳐 12시간을 만났다. 남북 분단으로 잃어버린 지난 70여년의 세월을 12시간 안에 눌러담기는 부족했다. 또 한번의 이별을 앞둔 가족들 사이 아쉬움의 탄식과 눈물이 터져나왔다.
"68년 만에 처음 보고 마지막이 됐어" 아버지, 우리 아버지
예순여덟 살이 돼서야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본 조정기(67) 씨는 아버지 조덕용(88) 씨를 태운 북측 버스가 출발하자 버스 속도에 맞춰 계속 따라가며 울음 섞인 인사를 이어갔다. 아버지 덕용 씨는 버스 창문을 열어 정기 씨를 바라보고 엉엉 울며 대성통곡했고, 아들은 끝까지 아버지 손을 잡고 "오래 사셔야 돼, 그래야 한 번 더 만나지. 그러니까 꼭 그렇게 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아버지가 탄 버스가 코너를 돌아 더 이상 따라갈 수 없게 되자 정기 씨는 한쪽 구석에 서서 담배를 물고 눈물만 흘렸다. '잘 보내드리셨느냐'는 남측 취재진의 말에 정기 씨는 "68년 만에 처음 보고 마지막이 됐어"라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먼 산만 바라봤다. 버스가 출발하고 전체 남측 이산가족 중 제일 마지막까지 버스를 따라간 사람이 정기 씨다.
정기 씨는 상봉 첫 날 아버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 아버지 덕용 씨는 6.25 전쟁 때 홀로 북으로 갔고, 당시 어머니 뱃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정기 씨가 있었다. 정기 씨는 앞서 작별상봉에서 "둘째 날 개별상봉 때 아버지께서 모든 말을 다 해주셨다"며 "그때 당시 올라가지 않았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에 납득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얼굴 봤으니 좋다"고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기약없는 이별에 눈물만…"우리 꼭 같이 사는 날 오도록"
먼저 버스에 오른 북측 오빠 정선기(89) 씨에게 달려온 남측 여동생 정영기(84) 씨는 버스에 매달리며 "아이고, 아이고" 하며 통곡했다. 오빠는 여동생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며 울기만 했다. 이내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자 영기 씨는 오빠의 손을 조금이라도 더 잡아보려고 버스에 매달려 울었다.
앞선 단체상봉 내내 말수가 적었던 선기 씨와 영기 씨 남매는 오늘 오전 작별상봉에서 만나자마자 오열했다. 영기 씨는 "아이고, 아이고…드디어 오늘이 왔구나"라며 통곡했고, 선기 씨는 우는 동생의 손을 쓰다듬으며 "이 오래비가 지혜롭지 못했다. 내가 큰 죄를 지었다"며 동생을 달랬다. 영기 씨는 아무 말 못하고 통곡했고, 오빠는 그런 여동생을 보며 눈물을 훔치고 "내가 미안하다"고 되풀이했다. 정 씨 남매가 꼭 붙어 우는 모습에 이를 지켜보던 북측 남성 보장성원은 눈이 벌게지도록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오빠를 태운 북측 버스가 떠나가고 남은 영기 씨와 남측 가족들은 부둥켜 안고 오열했다. "아이고 이를어째, 아이고 아이고…오빠를 어떡해 아이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영기 씨를 옆에서 본 재일 '조선신보'의 한 기자는 영기 씨의 손을 잡고 "어머니, 제가 잘할게요. 제가 열심히 해서 꼭 같이 사는 날이 오도록 노력할게요" 라고 말하며 오열하기도 했다.
"여태까지 살아줘서 고마워요, 건강하세요 고마워요" 마지막 인사
남측 조카들을 만난 북측 림홍수(80) 씨는 조그마한 버스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눈물만 흘렸다. 잔뜩 주름진 얼굴은 금세 눈물범벅이 됐다. 아쉽게도 림 씨가 찾던 형제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이번 상봉에서 조카들을 만나 그리움을 달랬다. 림 씨는 버스에 올라 남측 네 명의 조카들 손을 번갈아 꼭 잡고 "똑똑히 살아야 한다, 똑똑히 살아야 한다"며 마지막 당부를 건넸다. 대성통곡을 하던 한 조카는 눈물범벅이 된 삼촌의 얼굴을 양손으로 애처롭게 쓰다듬었다.
북측 유재숙(79) 씨가 버스에 탑승한 가운데 남측 사촌동생 유애숙(72) 씨는 울먹이며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해 외쳤다. 애숙 씨는 "건강하세요. 고마웠어요"라며 "여태까지 살아줘서 고마워요. 만나줘서 고맙고, 건강해서 고마워요…"라고 연신 외치며 헤어지는 아쉬움과 그리움을 전했다.
이로써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 행사는 2박3일 간의 일정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분단으로 수십년째 가족과 이별한 채 기약없는 삶을 살아왔던 수많은 이산가족을 생각하면 상봉 정례화 및 규모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현실적인 문제로 상봉 규모가 제한적이라면 이산가족 생사 확인이라도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후 서신 왕래, 화상 상봉 등 다양한 대안이 논의돼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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