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고아성 "내 생애 가장 의미 있는 3.1절"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주연
"배우로서 크고 소중한 경험"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주연
"배우로서 크고 소중한 경험"
실존 인물을 연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누구나 알고 있고, 존경을 받는 순국선열을 소화하는 건 큰 숙제와도 같다. '항거: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에서 유관순을 연기한 고아성(26)은 이 어려운 일을 준수하게 해냈다.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서대문 감옥 8호실 속 유관순과 여성들의 1년 이야기를 그렸다. 유관순의 일대기가 아닌 유관순과 서대문형무소 안 8호실에서 함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게 미덕이다.
20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고아성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인물을 연기해야 했는데 길이 보였는데도 '준창조'에 가까운 과정이었다"며 "정말 부담스러웠는데 배우로서 크고 소중한 경험이 될 듯하다"고 밝혔다.
우리에게 3·1운동은 교과를 통해 접했던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시작한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민호 감독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방문했다가 유관순의 사진을 접하게 된다. 이후 역사관 내부에서 여옥사 8호실을 방문한 감독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만세를 외친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고아성은 "잘 몰랐던 8호실 이야기를 만든다는 점이 흥미로워서 출연하게 됐다"고 전했다.
큰일이 닥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한다는 그는 촬영이 다 끝나고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고아성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배우로 꼽힌다. "상대 배우가 우는 장면에서 따라 울기도 하고, 웃음을 못 참기도 합니다. 하하."
고아성은 언론시사회와 인터뷰 당시 눈물을 쏟기도 했다. 배우는 "이번 작품처럼 한 호흡을 꾸준하게 유지하며 찍은 작품은 없었다"며 "감정을 털어낼 기회가 없어서 그랬다"고 고백했다.
고아성은 유관순 열사에게 자필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죄송하다", "유관순 열사의 육성을 몰라서 안타깝다"는 진심이 담겨 있다. 우리가 다들 익히 본 사진에서 본 목소리, 어린 목소리, 어른 목소리 등을 떠올렸다.
대화를 통해서도 얘기를 듣고 싶었다. 마지막 면회 장면은 배우들끼리 대사를 짜서 연기했다. 고아성 스스로 유관순 열사에게 듣고 싶던 이야기를 직접 했다.
고아성은 유관순 열사를 훌륭한 리더라고 해석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감독은 배우, 스태프에게 편지를 남겼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리더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나 잘하고 있냐"는 거다. 배우가 생각했던 리더는 신념이 강하고,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리더였다.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배우가 생각했던 거와 다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유관순 열사 혼자였을 때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모습을 다르게 연기하려고 연구했다. 마지막에 혼자 있을 때는 안 보이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유관순이 많은 사람이 모인 낯선 공간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감정, 그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썼던 부분, 소속감을 느끼는 장면, 고문을 받고 혼자 있을 때 모습을 달리 표현했다.
유관순은 모두가 알고 있는 독립투사이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도 많다. 배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히 상상해볼 수 없는 부분을 건드리는 게 가장 힘들었단다.
고아성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했다. 촬영이 끝난 후 이상하게 몸이 아팠다.
첫 테스트 촬영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했다. 분장하고, 맨발로 복도에 서 있었다. 혼자 있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촬영이 끝난 후 고고학과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유물을 발견하면 냄새만 난다고 하더라고요. 서대문형무소에선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 속 고문 장면에 대해선 "고문장면 만큼은 서대문형무소 외에 다른 장소에서 찍고 싶었는데 그렇게 됐다. 고문의 참혹함이 잔인하게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다"고 강조했다.
영화엔 죽음을 무릅쓰고 만세를 외친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이 나온다. 고아성은 "끈끈한 연대감이 느껴졌다"고 했다.
고아성은 5일 동안 금식을 하기도 했다. 이전의 제 모습과는 달라진 모습이어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실제로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고 털어놨다.
고아성은 1997년 아역 모델로 데뷔한 후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설국열차'(2013), '우아한 거짓말',(2013), '오피스'(2014), '풍문으로 들었소'(2015), '오빠생각'(2015), '자체발광 오피스'(2017) 등에 출연했다.
이번 작품은 배우에게 남다른 의미가 될 작품이다. 고아성은 "이렇게 큰 용기를 낸 작품은 처음"이라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단단해졌다"고 미소 지었다.
힘든 감정 연기를 한 그는 "만세 1주년 장면은 외로움이 끝나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모든 배우가 고아성에게 눈빛을 보냈다. 혼자 짊어지려는 짐을 벗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촬영이 끝난 후 고아성은 고흐에게 흠뻑 취하게 됐다. "나는 나 이상의 실재하는 어떤 것을 추구하기 위해 내 삶을 다 써도 좋다"는 고흐의 말이 유관순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배우는 말했다.
유관순은 고아성에게 적역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배우는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말 기뻤다"고 웃었다.
한 번도 리더였던 적이 없었던 그는 "영화에서처럼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리더라면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고의 리더를 드라마에서 함께 호흡한 정경호를 꼽았다.
또 한 명의 존경하는 선배로는 유호정을 언급했다. 해외에서 고아성의 인터뷰를 본 유호정은 "널 알게 돼서 자랑스럽고 기쁘다"는 감동적인 말을 건넸다. 고아성은 "저 또 울리지 마세요"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배우는 또 "내 생애 가장 의미 있는 삼일절이 될 듯하다"고 조곤조곤 얘기했다.
차기작은 결정하지 않았다. 이 영화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새로운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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