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부산국제영화 개막작으로 선정된 <집결호>는 중화권의 대표적인 흥행 감독으로 불리는 펑샤오강의 최신작이다.
국내에는 <야연>,<천하무적>등의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펑샤오강은 코미디 영화에서 시대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연출력을 바탕으로 장이모우, 첸카이거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업 영화의 거장이다.
<집결호>의 시대배경은 ´국-공 내전´이 한창이던 1948년 겨울에서 시작된다. 중국 인민해방군 9중대의 지휘관인 구즈디(장한위)와 46명의 대원들은, 연대장으로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거듭되는 적의 공세에 대원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가지만 퇴각나팔(집결호)이 울리지 않는 한 구즈디는 결코 진지를 떠날 수 없다.
영화는 전-후반부의 색깔이 극명하게 나뉜다. 전반부가 구즈디와 9중대 대원들이 전지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전쟁 스펙터클에 기초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수년의 세월이 흘러 끔찍한 전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구즈디가 조국으로부터 ´실종자´로 처리되며 잊혀진 옛 전우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다큐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구즈디를 짓누르는 평생의 딜레마는 전우들에 대한 죄책감이다. 부하들은 퇴각 나팔이 울렸다며 철수를 종용하지만, 전장에서 입은 부상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된 구즈디는 집결호를 확신하지 못한다. 과연 구즈디는 정말 집결호를 듣지 못한 것일까?
´중국 최초의 전쟁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집결호>는 전쟁씬 연출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들었던 한국 스텝들이 대거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은바 있다. 이 영화는 중국의 화이 브러드스와 한국의 MK 픽쳐스가 힘을 모은 본격적인 아시아 합작 영화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화면과 다큐적인 거리감이 느껴지는 영상. 전쟁에 직접 참여한 군인의 시점에서 보는 듯한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중국 버전같은 느낌을 준다. 펑샤오강 감독은 개막식 기자회견을 통해 날씨가 매섭기도 소문난 중국 동북부에서 4개월간 혹한의 야외촬영을 강행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의 활약을 보여준 한국의 스텝들 덕분에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며 각별한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부산 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선정이 장르와 상업성을 막론하고 항상 의외의 선택을 거듭했다는 점에서 새삼스러울 것은 아니지만, 내용 면에서 다분히 체제 선전적인 측면이 강하게 묻어나는 <집결호>의 내용은 다소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집결호>는 중국의 고단한 근현대사를 통해, 전쟁의 광폭함 속에서 평범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유린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다분히 보편적인 전쟁영화의 공식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역사와도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데다 중화권 특유의 영웅주의 정서가 묻어나는 설정들은 부담스럽다.
주인공이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한국군 복장으로 위장하고 한미 연합군을 격퇴하는 내용이라든가, 한심한 명령에 희생당한 대원들의 명예를 뒤늦게 복권시키며 영웅으로 추앙하는 모습은 ´인간에 대한 배려´보다는 체제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그래도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의 중국이 있다.´는 체제 옹호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편하게 받아들이기에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감독 펑샤오강 인터뷰
Q: <집결호>같은 대작을 만들게 된 계기는? 그리고 중국 외 해외시장 진출을 의식했나?
<집결호>는 실화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이 중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대작이라고는 해도 중국 이외의 관객들이 좋아할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블록버스터나 해외 시장에 대한 진출을 의식하기 보다는 감독으로서 이 영화를 반드시 만들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
Q: 주연배우 장한위의 캐스팅과 연기는 어땠나?
장한위는 중국의 명문인 중앙연극학원을 나온 실력파 배우이며 수많은 TV 드라마에서 성우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주연배우 자리를 놓고 몇 차례 오디션을 보기도 했는데 장한위 만큼 이 캐릭터에 부합하는 배우를 찾지 못했다. 얼마나 이 인물에 몰입했으면 나중에 알고 보니 잠꼬대에서도 ´전우를 찾아야해´라고 했다더라.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영화 끝났네, 이제 깨어날 때가 됐어´라고 말해줬다(웃음).
Q: 한국 스텝들과의 작업과 아시아 합작영화에 대한 비전은?
이 영화를 만드는데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국스텝들이 큰 역할을 했다. 이 영화의 주제인 전쟁의 참혹함을 설명하게 위해서는 전쟁씬 연출이 그만큼 설득력이 있어야했다.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강제규 감독이 내게 좋은 스텝들을 소개시켜줬고 수차례 어려운 상황을 거치면서도 오히려 나를 격려하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주어 정말 좋은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앞으로 한국의 영화인들이 중국에서 작업하게 될 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도울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아시아 영화인들이 힘을 모으면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주연배우 장한위 인터뷰>
Q: 주인공을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과 연기의 비결은?
내가 생각하기에 구즈디라는 인물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비결이라고 한다면, 연기에 어떤 계산을 하거나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그 인물에 대하여 스스로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아시아 배우들의 헐리웃 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그리고 같이 작업하고 싶은 한국 감독이나 배우는?
아시아 배우들이 더 큰 무대로 진출하는 것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헐리우드는 말 그대로 영화의 제국이 아닌가. 한국에서의 작업 가능성은 여기계신 분들이 부디 좋은 소문 좀 내달라(웃음). 저과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감독과는 언제든 같이 작업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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