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논란 얼룩진 본회의…대화·타협 실종
법적 근거 없이 야당 필리버스터 요구 묵살
제안설명 봉쇄 항의하는 부의장 "당신" 지칭
'날치기' 모양새 부담됐나…선거법 기습상정
위법 논란 얼룩진 본회의…대화·타협 실종
법적 근거 없이 야당 필리버스터 요구 묵살
제안설명 봉쇄 항의하는 부의장 "당신" 지칭
'날치기' 모양새 부담됐나…선거법 기습상정
국회의장이 스스로 의회민주주의를 관에 넣고 대못을 박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평소 '의회주의자'를 자칭한 문희상 의장은 본회의를 근래 보기 드문 아수라장으로 이끌며, 역대 최악의 국회의장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당 의원들은 "문 의장의 폭거에 의회 민주주의가 허물어져내렸다"고 규탄했다.
문희상 의장이 일부 정당과 담합한 채 개의를 강행한 23일 오후의 임시국회 본회의는 위법 논란과 일방적인 의사진행으로 얼룩지며,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찾을 길이 없었다.
문 의장은 이날 본회의를 개의하자마자 첫 안건인 회기 결정의 건부터 "심재철 등 108인으로부터 무제한토론 요구가 제출됐지만, 무제한토론이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국회법에는 무제한토론 요구를 할 수 없는 예산부수법안 등 일부 안건이 제한적으로 열거돼 있을 뿐, 이에 해당하지 않는 안건에 대한 무제한토론 요구를 의장이 불허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 문 의장이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위법적으로 무제한토론 요구를 묵살한 셈이다.
이에 판사 출신인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본회의 부의 안건에 대해 (무제한토론 요구가 제기되면 국회법상) 의장은 반드시 무제한토론을 실시해야 한다"며 "국회법상 규정이 명백한데도 의장이 임의로 거부하면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의장은 법적 근거 없는 '의장 방침'을 내세워 5분만에 발언 중인 주 의원의 마이크를 일방적으로 꺼버렸다.
이에 격분한 한국당 의원들은 의장석 앞에 모여 '아빠 찬스 OUT'의 피켓을 들고 "의장 사퇴""아들 공천"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렬히 항의했다. 6선의 문 의장이 자신의 지역구를 아들에게 세습하려 한다는 비판을 제기한 것이다. 이같은 빌미를 제공한 문 의장은 "이게 의회냐"고 외치며 자승자박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방적으로 토론 종결을 선언한 문 의장은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요구하기도 했던 예산부수법안을 하나씩 상정해 강행 처리를 시도했다. 예산부수법안 중 증권거래세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한국당이 제출한 수정안들도 함께 상정하는 게 불가피해졌다. 국회법상 수정안은 원안보다 먼저 표결에 부쳐야 한다.
그러자 문 의장은 새로운 수정안이 제출됐는데도 제안설명을 못하게끔 가로막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의장 불법"을 외쳤고, 이주영 국회부의장은 "엉터리"라고 항의했다. 문 의장은 '엉터리'라는 말에 정곡을 찔린 듯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국회의장단의 일원인 이 부의장을 거칠게 밀치며 단상 아래로 내려가라고 고성을 질렀다.
증권거래세법 개정안에 이어 예산부수법안 두 번째인 FTA 이행을 위한 관세법 특례법 개정안이 처리됐으나, 한국당의 합법적인 의사진행 지연 전략에 예산부수법안 처리는 더디기만 했다.
그러자 문 의장은 '친정'인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요청을 받는 형식으로 처리가 예정돼 있던 예산부수법안들을 제쳐놓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앞으로 당겨와 먼저 처리하는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기습적으로 상정했다.
예산부수법안 처리하다말고 선거법 '마각'
"아들 공천 준다고 국회 망치냐" 격렬 항의
귀틀어막고 필리버스터 시작되자 눈감기고
밤샘사회는 주승용 떠넘기고 퇴근 '빈축'
문 의장이 20건 남아있던 예산부수법안 상정을 미룬 채 선거법 개정안을 당겨와 기습 상정한 것은 '날치기'와 같은 모양새를 스무 차례나 거듭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법안을 일방적으로 상정하고 △수정안의 제안설명을 하려는 야당 의원을 못하게끔 봉쇄하며 △반대토론을 강제로 종결시키고 △의장석 주변의 야당 의원들과 국회부의장마저 거세게 항의하는 가운데 △찬성하는 범여당 의원들만을 대상으로 전자투표를 통해 강행처리하는 '그림'을 두 번 반복하다보니 이미 스스로도 난감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다.
하지만 이로써 문 의장과 민주당이 주장했던 예산부수법안·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라는 것은 허울 뿐으로, 선거법 기습 상정과 일방적 강행 처리라는 실제의 마각을 드러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예산부수법안을 제쳐둔 채 의사일정 변경을 전광석화와 같이 강행처리한 문 의장은 '게임의 룰'을 바꾸는 선거법 개정안도 일방적으로 상정을 이어갔다.
야당 의원들은 "날강도""문희상 내려와" 등의 항의를 이어갔다. 한 한국당 의원은 "아들 공천을 준다고 나라를 팔아먹느냐, 국회를 이렇게까지 만드느냐"며, 문 의장을 겨냥해 "역사의 죄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날 문 의장은 본회의 진행 내내 야당 의원들의 정당한 항의를 듣지 않겠다는 듯 귓구멍을 틀어막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동료 의원들을 비웃는 듯한 웃음을 흘려 빈축을 샀다. 또, 국회의장단의 일원인 이주영 국회부의장을 향해서는 "당신"이라 지칭하며 '막말 논란'을 일으키고 물리력을 행사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선거법 개정안이 상정돼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시작되자, 문 의장은 의장석에서 지그시 눈을 감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에 한국당 의원이 "의장, 졸지 말라"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날 한 한국당 중진의원은 "여러 명의 국회의장을 거쳤지만, 저런 의장은 처음 본다. 역대 최악의 국회의장"이라며 "문희상은 명예라는 게 있는 인간이냐. 제 정신이 아니다"라고 혀를 찼다.
김종석 한국당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잠시 국회본청 1층으로 내려오면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힘이 없다.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며 "이제 현명한 국민들의 판단을 구하는 수밖에 없게 됐다"고 고개를 떨궜다.
김 의원은 동료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무제한토론을 이어가고 있는 점을 의식한 듯, 오후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인데도 "(집에)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반면 본회의를 아수라장으로 이끈 문 의장은 이날 오후 11시 20분 무렵, 밤새도록 이어질 무제한토론의 사회권을 주승용 국회부의장에게 넘긴 채 여유롭게 퇴근하는 모습을 보여 재차 도마 위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국회본청 1층으로 내려온 문 의장은 밤새 사회를 봐야 할 주 부의장을 의식한 듯 "주 부의장도 (사회를) 교체해줘야 할텐데…"라고 말했다.
이만희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이와 관련 "군사 독재 정권 시절에도 이런 날치기는 없었다"며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하는 전 정권, 전전 정권에서도 국회가 이렇게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하고, 국회의장이 철저히 청와대 하수인을 자처하며 권력 앞잡이 노릇을 한 적은 없었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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