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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의 디스] 노동계만 외면하는 '고임금 지옥'


입력 2020.07.20 07:00 수정 2020.07.19 23:03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최저임금 인상→생계비 상승→고임금 구조에 따른 비용경쟁력 악화 '악순환'

손익분기점 이하 제품 늘수록 일감 줄어…구조조정·일자리 감소 불가피

6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먹고살자 최저임금! 열자 재벌곳간!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현대자동차는 왜 자체 공장을 놔두고 ‘광주형 일자리’ 공장에 경형 SUV 생산을 맡기려 할까.

기아자동차는 왜 자체 공장을 놔두고 협력사에 모닝과 레이 생산을 위탁할까.


현대차와 기아차는 국내 대표적인 고임금 사업장으로 꼽힌다. 임금이 높다는 건 근로자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 정도의 임금 수준으로는 최소 준중형 승용차나 소형 SUV 이상은 돼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아반떼나 기아차 셀토스 정도가 가까스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차종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 차급은 기본트림이 1000만원대 중후반이지만, 기본트림은 사실상 ‘미끼상품’이고 중상위 트림이 주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차 가격이 2000만원은 넘어야 수지를 맞출 수 있는 셈이다.


현대차가 출시 예정인 경형 SUV나 기아차가 판매중인 모닝·레이는 연봉 1억원에 육박하는 현대·기아차 근로자들이 만들면 적자란 얘기다.


경차보다 윗급인 소형 승용차 엑센트(현대차)와 프라이드(기아차)는 이미 단종된 상태다. 이들 역시 역시 손익분기점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차종이었다.


경차 스파크를 생산·판매하는 한국GM의 경우 현대·기아차보다 임금 수준이 다소 낮기도 하지만, 스파크의 주력 시장이 한국이 아닌 미국이기 때문에 그나마 수지를 맞출 수 있다. 미국에서 스파크는 기본 모델 가격이 1만3400달러, 우리 돈으로 1600만원이다. 상위 트림에 이것저것 옵션을 붙이면 20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그나마 스파크를 가져다 미국에 파는 제너럴모터스(GM)는 판매량이 시원치 않아 조만간 스파크를 단종시킬 예정이다. 경차를 2000만원이나 주고 사는 게 미국인들에게도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던듯 하다.


GM이 옛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때만 해도 한국은 중소형차 생산 기지로 매력이 있을 정도의 임금경쟁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2년 전 한국을 떠나겠다는 GM을 혈세까지 지원해서 잡아야 할 정도로 글로벌 생산기지로서의 한국의 매력은 바닥에 떨어졌다.


경상용차 다마스와 라보는 한국GM에서 일찌감치 단종시킬 예정이었다. 국내 안전규제에 맞추기 위한 개조비용 투입조차 꺼릴 정도로 팔아서 남는 게 없는 차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잉여인력 발생에 따른 대량 실직사태를 우려한 정부가 안전 규제를 알아서 유예해주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생산을 유지하고 있다.


임금이 상승하며 손익분기점 아래에 위치하는 제품이 점점 늘어날수록 일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 같은 토종기업은 해외 생산 비중을 늘리고, 한국GM이나 르노삼성 같은 해외 자동차 업체의 자회사들은 일감 배정이 줄어드는 상황이 불가피하다. 일감이 줄면 잉여인력은 구조조정해야 하고 그만큼 일자리도 감소한다.


글로벌 소싱이 보편화된 시대에 노동계에서 생떼를 쓰고 정부가 압박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아주 기본적인 시장 원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침체 속에서도 ‘임금을 올려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된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이런 시장 원리와 동떨어져 있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8720원으로 역대 최저인 1.5% 인상에 그쳤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 마이너스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소폭이나 올린 것만으로도 우리 경제에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식당 아르바이트생의 최저임금이 오르면 손님은 그 임금에 걸맞은 비용을 지불해야 된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을 올려 받은 아르바이트생도 어디선가 이전보다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테니 최저생계비는 더 올라간다.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임금이 올라가고, 그만큼 생계를 위해 써야 할 돈도 많아진다. 이걸 진보 진영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이라고 부르지만 경제 논리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비용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전체적인 고임금 구조 심화와 비용 상승의 악순환이 내부적으로는 자영업자들의 종업원 축소나 폐업, 대외적으로는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비용경쟁력 악화로 이어져 수많은 일자리를 없애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자신들의 무리한 요구가 ‘고임금 지옥’을 불러올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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