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대표소송은 법인격 독립의 원칙 훼손
공격형 펀드에 경영간섭수단 더 주는 셈
자회사 일은 자회사 주주들이 알아서해야
원칙 없는 입법은 법 만드는 게 아닌 파괴
한국 회사법이란 상법전 제3편 회사편을 말한다. 한국 회사법은 개별회사법이다. 기업집단을 규정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독일 회사법인 주식법(Aktiengesetz)은 기업들의 결합체인 콘체른(Konzern)에 대해 상세하게 규정한다.
법무부의 상법개정 입법예고안에는 다중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돼 있다. 자(子)회사의 이사 등 임원이 그 임무를 게을리 해 자회사가 손해를 입었음에도 자회사의 대표이사나 모(母)회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모회사의 주주가 나서서 소를 제기하는 것을 이중대표소송이라 한다. 손(孫)회사의 임원에 대한 소는 3중대표소송이다.
이와 같이 자회사 이하의 회사의 임원을 상대로 모회사의 주주가 제기하는 소를 총칭해 다중대표소송이라 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기업집단을 전제로 한다.
한국 회사법만은 기업집단에 대해 비교적 무관심했다. 모회사 감사의 자회사 감사권 인정이 유일한 것이었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을 가진 65개 기업집단에 대해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도의 도입은 회사법이 기업집단에 대해서도 점차 관심을 두겠다는 포석이다.
그러나 다중대표소송제도는 실제에 있어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한국 상법이 1962년에 제정된 이래 대표소송 자체를 제기한 사례도 70건에도 미달한다. 겨우 1년에 한 건 정도이다. 다중대표소송은 더 희귀할 것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주주들이 회사 임원을 상대로 소(訴)를 제기해 얻을 이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승소하면 회사가 입은 손해를 이사로부터 배상받는데, 그 배상금은 소를 제기한 주주가 나눠 갖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일반회계로 들어간다. 주주로서는 시간과 정력을 쏟았지만 승소해도 직접적인 이익이 없다. 배상금을 받아 주가가 상승한다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이사 개인에게서 배상을 받아야 얼마나 받겠는가. 변호사 비용 등 소송비용은 승소하면 회사나 패소한 이사가 부담할 수 있지만, 만약 패소하면 막대한 소송비용을 보전 받을 길이 막연하다. 그러니 쓸데없이 소송하자고 할 주주가 거의 없다.
그럼 이 제도를 누가 이용할까. 미국에서도 다중대표소송 판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판례법 국가라 다중대표소송이 회사법에 규정된 것이 아니고 완전모자회사 간이거나 자회사의 법인격이 부인(否認)될 정도로 모자회사가 실질적으로 한 몸인 경우에만 법원이 허용한다.
또 대개는 판결 전에 중도 합의로 끝난다. 회사에 대해 불만인 주주가 어떤 협상을 위해 기획소송을 벌이는, 말하자면 위협소송이다. 판결을 받는 것보다 이사진을 위협해 돈을 뜯어내는 것이 이득이 더 크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일단 개별 소액주주로서가 소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개인이 발행주식총수의 1%(비상장회사) 또는 0.01%(상장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패소했을 때 금전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결국은 공격형 펀드가 이사들을 위협하고 경영권을 넘보기 위해 소를 제기할 것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고자 애쓰고 있는 법무부는 경제민주화라는 국적 불명의 이념을 실현한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액주주 보호란 명분뿐이고, 실제로는 펀드들에게 경영간섭수단을 하나 더 얹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법에서는 모자회사의 개념은 주식 50%를 초과보유를 기준으로 한다. 이 말은 자회사에도 다른 주주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자회사 일은 자회사 주주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 모회사의 감사에게 자회사 감사권이 있기 때문에 모회사 감사(監事)가 자회사를 감사(監査)하면 충분하다.
상법상 각 회사의 법인격은 독립되어 있다. 다중대표소송 제도 도입은 법인격 독립의 원칙을 훼손한다. 실은 이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일본도 다중대표소송을 인정하지만 자회사에 다른 주주가 없는 상태, 즉 완전모자회사 간에만 인정된다.
아무거나 만든다고 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원칙 없는 입법은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의미를 깡그리 무시하는 작태로서 아주 고약한 짓이다.
글/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