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정공법으로, 때론 플랜B로 위기 때마다 해법 찾아
글로벌 車업계 줄줄이 적자에도…현대·기아차만 흑자 선방
정의선 체제 출범 이후 지금까지 현대자동차그룹의 위기경보 체계는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만큼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그룹을 이끌어왔다는 의미다.
우선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 총괄을 맡기 전부터 불거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여파로 현대·기아차는 주력 시장 중 하나인 중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반토막이 나고 있었다.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사드 사태를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으로 교묘히 이용해 현대·기아차의 공백을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로 만들었다.
지난해는 미-중 무역갈등을 비롯한 무역갈등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이라는 악재가 덮쳤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까지 더해지며 세계 자동차 시장은 더욱 위축됐다.
올해는 ‘대외 악재의 끝판왕’으로 산업 역사에 기록될 만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자동차 업계를 덮쳤다. 불과 2년도 안되는 사이에 젊은 총수를 뒤흔들 만한 초대형 악재들이 연이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정 수석부회장은 침착하게 위기에 대응했다. 우선 중국 시장과 관련해서는 현지 기업들의 급성장으로 다시 예전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연착륙’ 전략을 택했다.
현지 경영진을 재정비하고, 불매운동 등 급격한 판매 위축으로 무너진 딜러망을 재건하는 한편, 일부 잉여 설비에 대해서는 폐쇄·매각·용도변경을 통해 불필요한 비용 소요를 줄였다.
중국 특화모델 출시 및 현지에서의 사회공헌 활동 강화를 통해 중국 소비자들로부터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 감소를 만회하기 위한 대체 시장 모색에도 나섰다. 중남미와 인도, 러시아 등 신흥 시장에서의 판매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정 수석부회장의 총괄 임명 첫 해인 2018년 현대·기아차는 전세계 시장에서 각각 1.8% 및 2.4%의 판매 성장을 기록했다.
증가폭은 높지 않았지만 중국 시장에서의 감소 요인을 감안하면 상당한 선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기아차는 2015년 이후 3년 만에 플러스 성장을 달성했다.
지난해는 중국에서의 판매 감소를 보완해줬던 신흥 시장에서의 수요 위축이라는 악재가 겹쳐 현대차는 3.6%, 기아차는 1.5%의 마이너스 성장을 각각 기록했지만, SUV와 제네시스 브랜드, 중대형 차종 등 고부가가치 차량 위주로 판매믹스를 개선하면서 수익성은 오히려 개선했다.
현대차는 2018년 2조4222억원에 그쳤던 영업이익을 지난해 3조6055억원으로 끌어올렸고, 같은 기간 기아차는 영업이익을 1조1575억원에서 2조97억원까지 늘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 경제가 공황에 빠진 올해는 정 수석부회장도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을 듯 보였다.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된 2분기 글로벌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했다. 독일 다임러는 2분기 영업손실이 16억8000만 유로(약 2조3000억원)에 달했고, 미국 포드는 19억달러(약 2조3000억원), GM은 8억달러의 영업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일본 닛산은 2분기 2855억엔(3조2000억원)의 적자를 냈고, 혼다도 적자가 808억엔에 달했다. 토요타는 흑자에 턱걸이했으나 영업이익 감소폭이 전년 동기 대비 98.1%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비교적 양호한 수준의 영업이익을 냈다. 현대차는 5903억원, 기아차는 1451억원의 영업이익을 각각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와 비교하면 현대차는 52.3% 줄었고, 기아차는 72.8% 감소했으나 지금이 이익의 가감을 따질 형편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선방이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한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신차를 출시하며 판매와 수익성 감소를 방어했다. 현대차의 경우 제네시스 GV80, G80 등 고부가 신차를 비롯, 그랜저, 아반떼 등이 신차 효과를 보여줬고, 기아차도 K5, 쏘렌토 등이 수익성 방어 역할을 해줬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신차 출시는 독이 될 수 있다. 막대한 개발비가 투입된 신차가 수요 위축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요 자동차 브랜드들이 계획된 신차 출시를 미루는 상황도 벌어졌지만, 정 수석부회장은 정공법을 택했고, 결국 위기 속에서도 수익을 창출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위기 상황일수록 경영자의 역량이 빛을 발한다. 중요 결정권을 가진 경영자의 판단 하나하나가 기업의 존망을 가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 총괄을 맡은 이후 쉴 새 없이 악재가 터졌지만 결국 큰 어려움 없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지켜내고, 수익성을 확보한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