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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감독탐구⑦] 한 직장 27년, 다큐에서 영화로…고레에다 히로카즈


입력 2020.09.18 14:18 수정 2020.09.20 12:06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티캐스트 제공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티캐스트 제공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한국인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외국 감독이다. 세계인들도 그를 좋아한다, 특히 칸국제영화제는 2001년 ‘디스턴스’를 시작으로 ‘아무도 모른다’ ‘공기인형’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도’에 이어 2018년 일곱 번째로 ‘만비키 가족’(국내 상영명 ‘어느 가족’)을 초청했고 제71회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 됐다. 세계가 일본 사람들의 정서와 생활문화에 대해 가진 이미지의 많은 부분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눈을 통해 형성되었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생각하면 우선 ‘가족’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자본주의가 소비를 증진 시키는 단위로 원했던 대가족의 해체와 핵가족, 황금만능주의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너진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가족의 유대감 그리고 이어진 1인 가족과 고독의 일상화. 현대사회 병폐와 잔인한 사건들의 수원(水源)이 가족의 해체라고 소리 없이 외치듯, 고레에다 감독은 부모의 부재, 식구의 부재에 주목했다. 해체에만 관심을 둔 게 아니라 대안도 모색했다. 결혼과 출산에 따른 ‘혈연 가족’이 아닌, 다양한 이유로 이어진 사람들에게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리어 가족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DNA로 이어지지 않은 결합 속에서 상기됐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영화 '아무도 모른다'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겼던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를 보면, 아이들만 살고 있다. 그 집에 사람이 사는지, 어른 없이 아이들끼리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현대 이전 근대 사회였다면 모를 수 없었던 옆집 사정. 아빠는 다 다른데 자신의 자식에 대해 책임질 생각이 희미하고,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비우기도 하지만 생각도 인생도 자유분방하다. 크리스마스 전까지 돌아온다던 엄마는 봄이 돼도 오지 않고, 아이들끼리 연대하여 고난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눈물겹다.


부모에게 기대를 지닐 수 없는 아이들의 닫힌 마음이 이웃에게 손길을 청할 리도 없지만,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끼리 있는 걸 들키는 날엔 4남매는 뿔뿔이 고아원으로 흩어져야 하고 더는 엄마를 기다릴 수 없다. 요금을 못내 전기도 수도도 나오지 않고, 먹을 것을 살 돈도 떨어진 4남매에게 삶은 버겁다. 특히 어린 나이에 동생들의 보호자로 살아야 하는 장남 아키라의 어깨는 무겁기만 한데.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세상에 존재하지만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을 방치한 게 과연 엄마만일까. 감독은 우리에게 묻는다. 영화 마지막, 둘째 교코가 뒤를 돌아보는데 흠칫 놀란다, 이 비극을 지켜만 보고 있던 나의 눈을 발견한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15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의 장례식에 간 세 자매가 그곳에 남겨진 이복동생과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나를 닮아 똑똑하다는 자부심 속에 6년간 키운 아들이 출생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와 함께 살면서 또 아이가 바뀐 또 다른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아버지가 되어가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도 가족을 가족이게 하는 ‘무엇’에 관해 생각할 시간을 준다. 분명 ‘혈육’이지만 남보다 먼 그들을 가족으로 만드는 건 서로의 아픔을 솔직하게 나누는 마음이다. 더욱 중요한 건, 혈연이 아니더라도 함께 지내온 시간과 쌓아온 추억에 의해 이미 가족인 그들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만비키 가족’(2018)에서 가족의 범위를 제대로 확장한다. 원래 하고 싶었던 얘기가 이거였다는 듯, 도저히 가족일 수 없는 악연과 상황 속에 타인들을 얽고 ‘가족’을 보여준다. 영화가 한참 흐르도록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미 가족인 그들의 일상과 관계 속에서 우리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온도를 지닌 가족을 본다. 새로 만비키 네로 온 꼬마 유리, 점차 드러나는 사연들 속에서 그들이 가족이 되어 온 역사, 가족이 되어가는 현장 안에서 ‘가족의 탄생’을 본다. 우리들의 집에 진짜 가족이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 공통의 문제이고, 현대사회를 병들게 한 원인 가운데 중요한 하나를 절감케 했다고 생각하기에 칸도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이제는 고인이 되어 너무나 그리운 키키 키린이 표현한 하츠에 할머니가 오갈 데 없고 외로운 사람들, 상처 속에 비뚤어진 사람들을 품어 서로를 아끼고 새로운 식구도 맞이할 수 있는 가족이 되게 하고. 할머니가 죽자 노부요와 오사무가 새로운 엄마 아빠가 되어 가족을 이어가는 모습은 뭉클하다. 무언가를 훔쳐, 심지어 가족을 훔쳐 형성되고 유지돼 온 ‘만비키’(물건을 사는 체하고 훔침; 또, 그 사람) 가족이 이제는 할머니 성 그대로 ‘시바타 가족’으로 살 것이다.


그런 희망을 가능케 하는 것은 넉넉하고 당찬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가 스스로 ‘가족의 중심’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랴 유야(아키라 역)가 14세의 나이로 칸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만일 ‘만비키 가족’이 황금종려상을 비껴갔다면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은 안도 사쿠라였을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케이트 블란챗이 “앞으로 우리가 찍는 영화에 우는 장면이 있다면 안도 사쿠라를 따라 한 연기일 것이다”라고 극찬한 장면은 꼭 봐야만 하는 연기다.


변호사-살인자, 두 주인공의 얼굴이 겹쳐진 '세 번째 살인'의 명장면 ⓒ티캐스트 제공 변호사-살인자, 두 주인공의 얼굴이 겹쳐진 '세 번째 살인'의 명장면 ⓒ티캐스트 제공

‘세 번째 살인’(2017)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 만큼이나 그 결말에 대한 해석이 자자한 영화다. 미스미가 사키에의 아버지를 죽인 건지 그리고 단독범인지, 미스미가 재판 말미 증언을 번복한 이유는 정말 사키에를 위한 것인지 그 또한 변호사 시게모리가 믿고 싶은 범죄자 미화 서사일 뿐인지,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지. 흥미로운 건 결말이지만 중요한 건 과정이다.


집요하다고 할 만큼 반복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질문,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권한이 인간에게 있는가. 사람을 죽이는 순간 그의 생명을 좌지우지한 살인자, 살인자를 놓고 진실을 찾아내려 하기보다는 판사-검사-변호사 ‘법조계’라는 배에 함께 탄 이들이 자신의 성적표를 위해 미리 결론을 정해 놓고 진행하는 재판에서 사형을 판결하는 순간 좌지우지된 인간의 생명. ‘세 번째 살인’ 안에서 인간에게 없는 권한인 생명의 소멸에 관해 결정권을 휘두른 것은 살인자나 법조인이나 같다. 인간에게 허락된 적 없는 생명을 거두는 최악의 죄, 살인. 첫 번째, 두 번째 살인을 한 것이 인간 미스미라면 세 번째 살인은 인간의 법과 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국 내에서는 ‘만비키 가족’이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기 딱 1년 전, 마찬가지로 작품상을 받은 영화다.


배우 야쿠쇼 코지(왼쪽)와 후쿠야마 마사하루 사이에 선 감독 ⓒ티캐스트 제공 배우 야쿠쇼 코지(왼쪽)와 후쿠야마 마사하루 사이에 선 감독 ⓒ티캐스트 제공

‘세 번째 살인’을 두고 그간의 고레에다 감독의 결과 많이 다른 작품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볼 것도 없지 싶다. 감독은 꾸준히 사회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 왔다. 1987년 티브이맨 유니언 입사 후 ‘지구 ZIG ZAG’ ‘또 하나의 교육: 이나 초등학교 봄반의 기록’ ‘번영의 시대를 떠박치고…도큐먼트 피차별 부락’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그다. 극영화 데뷔작 ‘환상의 빛’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연출한 다큐 ‘그러나…복지를 버리는 시대로’의 연장선에 있다. 영화를 통한 사회 참여적 시각은 말할 것도 없다. 앞서 말했듯, 가족에 관한 영화들은 섬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 문제에 대한 고레에다식 고찰이자 해법이다.


‘세 번째 살인’에서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중요하다. 미스미(야쿠쇼 코지 분)에게는 자신의 범죄에 연좌되어 밑바닥 인생을 사는 딸이 있고, 딸처럼 다리가 아프고 아버지로 인해 삶이 버거운 사키에(히로세 스즈 분)에게 안식처를 내준다.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 분)에게도 별거 중인 딸이 있고, 자꾸 물건을 훔치는 딸을 구하러 갈 때만 딸을 본다. 살인, 강간, 이혼으로 어긋난 아버지들과 딸들. 딸의 아픔은 모른 척하고 남편의 사망보험금만 기다리며 진실을 말하려는 딸의 입을 막는 엄마. 이들에게서 보이는 건 가족의 ‘부재’(不在)이다. 오히려 ‘결과적으로’ 사키에에게 도움이 된 미스미, 그런 미스미를 위해 증언하려는 사키에, 그에 앞서 자신의 아픔을 입 밖으로 낼 수 있었고 들어줬던 사키에와 미스미가 더욱 ‘가족’다워 보인다.


제71회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티캐스트 제공 제71회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티캐스트 제공

1987년 다큐멘터리로 시작해 제작사의 성장과 함께 드라마, 영화로 이어가며 27년 동안 한 회사에 다닌 직장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 과정에서 검증된 무던한 뚝심, 성숙한 시각과 철학은 2014년 독립해 ‘분후쿠’라는 제작자 집단을 만든 후 폭발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2015년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2016년 ‘태풍이 지나가도’가 연이어 칸에 초청됐고, 2017년에 ‘세 번째 살인’으로 일본 아카데미 작품상, 2018년엔 ‘만비키 가족’으로 일본 아카데미 작품상과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황금종려상 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행보는 신예 감독 5인이 연출하는 영화, 10년 후의 일본을 상상하는 미래 프로젝트 ‘10년’의 제작·개봉이었다. 그다음엔 까드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등의 세계적 배우들과 함께한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연출했다. 그리고 특별히 반가운 건, 내년 촬영을 시작할 영화 ‘브로커’의 주연이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이다. ‘공기인형’(2010) 이후 10년 만에 이뤄지는 배두나와의 재회, 칸 황금종려상 감독과 배우(‘기생충’) 듀오의 호흡이 기대되는 송강호,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만나면 어떤 얼굴이 나올지 궁금해지는 강동원. 상상만으로도 벌써 행복해지는 조합, 극장에서 즐길 날을 기다린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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