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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우회로 찾아라"…은행 대출 차단 풍선효과 커진다


입력 2020.11.25 06:00 수정 2020.11.24 10:15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제 2금융권·가족 찬스·신탁 활용 등 사각지대 향하는 수요

부동산 패닉 바잉 속 강압적 금융 규제에 시장 왜곡 우려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규제 정책을 둘러싼 부작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은행 대출 창구 모습.ⓒ뉴시스

대형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의 압박에 신용대출을 억제하고 나서면서 이를 둘러싼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규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제 2금융권 대출 혹은 신탁 상품을 활용하거나, 부모형제의 이름으로 빚을 내는 이른바 가족 찬스 등 각종 우회로를 찾는 개인들이 늘어나면서 부작용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대출 광풍의 원인이 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근본적인 대책 없이 지금처럼 강압적인 금융 규제만 계속된다면 시장이 왜곡되는 악순환만 반복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오는 30일부터 연 소득 8000만원이 넘는 이들을 대상으로 1억원을 초과하는 은행 신용대출에 대해 40%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DSR은 연간 부채 상환액을 소득으로 나눠 계산한 값으로, 빚이 늘거나 소득이 줄면 수치가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값이 금융당국에서 정한 상한선을 넘으면 추가 대출이 불가능해진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팔을 걷고 나선 이유는 올해 들어 신용대출이 과도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지난 달 말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들이 보유한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총 128조8431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7.2%(18조9323억원)나 늘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개인 신용대출이 101조9332억원에서 109조9108억원으로 7.8%(7조9776억원) 확대되는데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벌써 연간 증가량의 두 배를 넘어선 수준이다.


이에 금융당국이 규제를 예고하자 주요 은행들은 한 발 먼저 신용대출 제한 조치에 들어갔다. 어차피 일주일 뒷면 실시해야 할 규제인데다 은행 입장에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금융당국이 강력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 만큼,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국민은행은 금융당국이 권고한 DSR 40%를 이번 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내부 시스템 개발이 끝나는 대로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에 대한 규제를 실행할 계획이다. NH농협은행 역시 신용대출의 한도와 우대금리를 줄이고 있고, 신한은행은 지난 달 전문직 마이너스통장에 최대 1억원의 한도를 새로 설정했다. 하나은행도 같은 달 하나원큐 신용대출의 한도를 2억2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낮춘 상태다.


문제는 이런 정책 강화에도 불구하고 신용대출 수요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최근 신용대출의 급증세는 치솟는 집값의 역풍으로 풀이된다. 지금이 아니면 내 집 마련이 어려울 수 있다는 패닉 바잉 현상과 더불어, 이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신용대출까지 끌어 쓰려는 영끌 열풍이 맞물리면서다. 결국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되찾지 못한다면 어떻게든 대출을 받기 위해 활로를 모색하려는 개인들의 움직임은 계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은행을 상대로 한 신용대출 규제의 여파가 다른 곳으로 번져나갈 수 있다는 염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꼽히는 영역은 제 2금융권이다. 아직 은행에 비해 규제가 느슨해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 2금융권 대출도 조만간 규제가 강화된다는 현실은 실수요자들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게 만들 수 있는 지점이다.


금융당국이 은행을 제외한 비금융사 대출에 대해 정하고 있는 DSR 상한선은 현재 60%로 은행(40%)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는 같은 조건이라면 은행보다 제 2금융권에서 최대 1.5배까지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제 2금융권 대출에 대한 DSR도 내년 50%, 2022년 40%로 강화할 계획이다.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대목은 가족의 신용을 동원해서까지 대출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데 있다. 이럴 경우 실질적으로 대출을 받은 당사자를 넘어 가족들까지 함께 빚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규제 발표 이후 온라인 상에서는 부모의 집을 담보로 빚을 내 증여를 받거나, 당장 목돈이 필요 없는 형제자매 명의로 신용대출을 내는 방법 등이 공유되고 있다. 또 주택 명의자에게만 적용되는 DSR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부부 중 한 사람의 명의로 집을 산 뒤 나머지 배우자가 신용대출로 보태는 방법도 규제를 회피할 꼼수로 거론된다.


이보다 여유가 있는 고액 자산가들은 또 다른 방식에 눈을 돌리고 있다. 수수료를 물더라도 주택담보대출 규제의 적용 대상이 아닌 부동산 신탁을 통해 집을 사는 식이다. 또는 보유하고 있는 토지를 증여한 뒤 이를 토대로 자녀가 담보대출을 일으키게 해 주택을 마련토록 돕는 형식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권에서는 이처럼 규제의 허점을 노린 대출과 내 집 마련이 금융권 전반의 잠재적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울러 정당한 자기 소득을 바탕으로 돈을 빌리려는 이들이 도리어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워지면서, 시장 구조 자체를 훼손하는 결과만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을 향하는 레버리지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한 규제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은행 대출 수요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와중 잇따른 규제로 풍선효과가 커지면서, 특정 부문의 금융 리스크가 여러 분야로 전이될 수 있는 환경만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비교적 낮은 고액 근로 소득자에게 규제가 집중되는 모양새"라며 "신용도와 상환 능력이 좋은 차주가 더 많은 돈을 대출 받을 수 있다는 금융의 기본 원리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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