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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이슈] '며느라기', '82년생 김지영'의 또 다른 이름


입력 2020.11.28 02:00 수정 2020.11.27 16:15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결혼 후 시어머니 첫 생신상을 차리기 위해 전날 시댁에 가고, 아침에 일어나 홀로 미역국을 끓여내는 민사린. 키위를 내오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왔지만 민사린 앞에 남은건 시부모님, 남편, 시누이가 먹고 남긴 키위 세조각이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사린아 이거 우리가 한개씩 먹어치우자. 남기면 아깝잖니"라고 키위를 사린의 입에 넣어준다. 여기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며느리 민사린 뿐이다.


수신지 작가의 동명의 웹툰 '며느라기'가 카카오 TV 오리지널로 드라마화 되면서 또 한 번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미 '며느라기'는 2017년 연재할 당시부터 SNS에서 공감과 분노 유발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며늘아기'가 아닌 '며느라기'(期)란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며느라기'는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시기를 뜻한다. 시댁 식구들한테 예쁨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라는 것이다. '며느라기'에 접어들면 며느리가 시댁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제가 할게요", "저한테 주세요", "제가 다 할게요" 등이 있다.


드라마는 아직 1화 밖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웹툰의 감정선과 분위기, 대사를 최대한 반영했다. 웹툰 연재 중 많이 언급됐던 민사린이 시어머니에게 앞치마를 선물 받는 장면, 자신의 할아버지 제사준비를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남편, 명절에 남자와 여자가 상을 나눠서 밥을 먹고, 식사 중간 국을 뜨면서 '남녀평등이 다 뭐예요. 여성 상위 시대지'란 말을 듣는 민사린의 불편한 시댁 라이프는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며느라기'는 오랜 시간 속에 우리 사회에 은근하게 스며든 불평등과 차별을 콕 짚어 이야기 하진 않는다. 나, 혹은 주변의 이야기를 일상처럼 담담하게 풀어낸다.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 하기 보다는,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건넨다.


'며느라기'는 2017년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보여진다.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여성이 정체성 혼란으로 정신이상이 와 빙의 증상을 겪으며, 어려서부터 당했던 불합리, 차별을, 대한민국의 가장 흔한 여자 이름인 김지영의 시선에서 풀어냈다.


이에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은 반면 남성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 정유미, 공유가 주연을 맡아 '82년생 김지영'이 영화화 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부터 개봉 때까지 별점 테러를 비롯해 여성의 입장에서만 차별을 부각시켰다는 일부 남성들의 우려가 있었다.


소설은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아버지, 남편, 남동생을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으로 그려냈다면 영화는 모두가 좋은 아버지, 남편, 남동생이 되려했지만, 남성으로서 당연하게 받아온 혜택과, 가했던 차별을 무신경하게 받아들이는 설정을 더해 중립를 지켰다.


두 작품 모두 여성의 차별과 희생을 지적하고 있지만 '며느라기'는 페미니즘 이슈가 아닌, 가족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언뜻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문제처럼 보이지만 더 파고들면, 시어머니도 무뚝뚝한 남편, 어머니로서 고충을 겪은 또 하나의 '며느라기'인 셈이다. 자신이 시어머니가 됐을 때 '며느라기' 생활을 며느리에게 무의식적으로 바라며,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며느리로서의 희생이 가족 내 당연시 됐는지 자각시켜준다.


'82년생 김지영은'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이 사회에 나와서 겪는 차별, 남성중심적 사회 구조에 낮아진 여성의 지위 등을 '빙의 증상을 보이는 김지영'이란 여중인공의 파격적인 설정으로 강한 어조를 띄운다.


다르게 차별을 이야기하지만, 두 작품이 화두로 떠으로며 공감을 받는 것은, 더 이상 이를 당연시 여기지 않는 '김지영', '민사린'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준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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