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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픽] 화가의 고통과 갈등 ‘자화상’, 작가 심온의 마띠에르는…


입력 2020.11.27 09:51 수정 2020.11.27 09:51        데스크 (desk@dailian.co.kr)

카르마(Karma), 90.6x60.6(30호), Acrylic on Canvas&Fabric, 2018 ⓒ이하 갤러리K 제공

자화상이란 화가가 스스로 자신을 그린 모든 그림을 칭한다. 화가들은 예술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남다른 고통과 갈등을 겪고, 그 해소책의 하나로 수많은 자화상을 남긴다. 자화상을 통해 창조적 주체인 화가의 은밀한 내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고, 시대적 간격을 뛰어넘어 인간적 고뇌의 승화 과정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나이가 들다 보니 예전처럼 무엇인가 성취해 보겠다는 과도한 욕심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나에게 정직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합니다. 어설프게 아는 세상에 대한 또는 감상에 젖은 그림이 아닌, 내가 변하고 자아가 완성되어 가는 그 과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심온 작가 ⓒ데일리안DB

심온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자기 고백적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붓질을 통해 재현되는 페인팅 자화상이 아니다. 패브릭 부조(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를 통해 입체와 평면의 조화로 표현하고 있다. 작업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기 것, 심 작가의 작품이 색다르게 와 닿는 이유이기도 하다.


캔버스의 평면 작업과 패브릭을 이용한 입체 작업의 결합은 현실과 이상 사이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부유하듯 떠 있는 작가 자신과 현대인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패브릭 구조를 통해 주된 주제인 망(望, 꿈)을 이야기한다. ‘망’의 의미는 욕망, 희망으로 나뉘어 설명할 수 있겠다. 욕망은 타인의 시선이 나의 욕구로 반영된 것을 의미하고, 희망은 자아를 드러낸 개인적 욕구를 나타낸다. 상반되는 망의 의미와 개념이 작업의 전반적 흐름으로 잡힌 가운데 그 중심에는 인형의 부조가 자리 잡고 있다.


파랑새(Bluebird), 45.5x53(10gh), Acrylic on Canvas&Fabric, 2015 ⓒ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나 스트라빈스키 ‘나이팅게일’ 오페라에 등장하는 인형처럼, 심온 작가의 인형은 환상과 완벽을 대변한다. 다만 인형은 인간의 대리로 언제나 객관화된 욕망만을 위한 것이며 본래의 영혼은 없다. 다시 말해, 자신의 욕망이 자신의 희망이 아니듯, 사회적 관습과 집단의 행동규범이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가면을 쓴 것임에도 그것이 마치 ‘자기 자신의 가치’인 것으로 생각하는 작가의 모습과 현대인을 빗대어 인형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직은 알 수 없는 ‘인형의 꿈’을 담아낸 것이기에 눈을 감은 채 구체적 이목구비가 없는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은 따뜻한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인형의 볼에는 홍조를 띠게 했는데, 어쩐지 그 안에 다양한 궁금증과 많은 이야기가 내포된 듯 보인다. 결국, 타자화된 작가의 모습을 표현한 인형은 거꾸로 우리에게 관습과 규범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진실을 전하고 있다.


붉은방(The red room), 130.3x89.4(60호), Acrylic on Canvas&Fabric, 2016 ⓒ

작품에는 이니셜이 다양한 모습으로 들어있다. 청소기의 On-Off 스위치처럼 또는 다림질 스프레이 작동장치, 상품의 원산지 표기나 제품의 브랜드명 등등으로. 실재와 부재, 명품과 짝퉁, 동전의 앞뒤, 또 인생의 명암처럼 상반되지만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멜랑콜리와 위트를 함께 담아낸다. 이니셜은 단순한 서명을 넘어 현재의 상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코드로 작용, 시각의 즐거움을 더함과 동시에 숨어있는 사소한 유머를 찾는 재미까지 부여한다.


또한,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DNA가 들어가 있다. 실제로 작품의 진위를 확인할 때 굉장히 요긴하게 사용된다. DNA는 인형 주변에 머리카락 한 올이 숨겨져 있는데 이 또한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새롭고도 특이한 ‘자화상’이다.


I am, 45.5x53(10호), Acrylic on Canvas&Fabric, 2015 ⓒ

심온 작가는 “그림을 처음 보고 즐거움을 느낀 후, 슬픔이 몰려오는 멜랑콜리 그리고 위트를 동시에 담아내고 싶다”고 말한다. 개성적 표현의 작가가 전하는 색다른 힐링, 작가의 진실한 표현만큼 그림을 보는 우리도 솔직해질 수 있다면 나를 짓누르는 가면 하나쯤은 벗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심온 작가/ 가천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대학원 서양화 미술학 석사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미술 교과 전담교사, 백남준아트센터 교육·예술강사로 재직한 바 있다. 국내 외 다수의 개인전, 단체전, 초대전에 참여했으며 현재는 갤러리K 제휴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최영지 갤러리K 큐레이터 c6130@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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