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엘스 전용 59㎡ 호가 11억원
"조금씩 몇 년간 올랐어야 할 전세가가 한꺼번에 올라"
임차인에게 법정 최고 요율 적용하는 경우도 발생
"전세가가 한 달마다 무섭게 오른다고 보시면 돼요. 거의 1년 전 매매가와 비슷할 정도입니다. 지금 비싸다고 기다리면 다음에는 더 비싼 가격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2일 오후 찾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최근 무섭게 치솟는 전셋값과 관련 된 기자의 질문에 공인중개사도 당황한 듯 상기된 얼굴로 답했다. 임대차법이 시행된지 4개월여가 지났지만 '전세시장 안정'이라는 정부의 목표와 달리 전세시장은 갈수록 불안해 지고 있다.
전세대란 속 강남 재건축 단지의 대표격인 '은마'가 최초로 10억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고, 인근 잠실은 전세 호가가 1년 전 매매가 근처까지 따라잡았다. 집주인들의 콧대가 높아지면서 '배짱 호가‘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부동산 시스템을 살펴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 엘스 전용면적 59㎡ 전세 매물이 11억원에 등록됐다. 이전 전세 신고가(10억원) 보다 1억원 높다. 웬만한 수도권 지역 내 아파트도 무리 없이 매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난해 초에는 해당 전세가에 1억~2억원만 얹으면 엘스 전용 59㎡ 주택형의 매매도 가능했다.
실제로 지난해 2월에는 같은 주택형(21층)이 12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이 외에도 12억~13억원 중반대 거래가 수십 건에 이른다.
이날 만난 중개사들은 11억원 전세가를 두고 "중개업소를 하면서 처음 보는 호가"라며 당혹스러워했다. 이전 전세 최고가인 10억원 보다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는 게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잠실동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이 11억원으로 딱 집어 말했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전세 보다는 매매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실거래가를 볼 수 있으니 그거보다는 더 받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최근 집주인들의 배짱이 보통이 아니다"고 말했다.
엘스와 함께 잠실 아파트 삼형제라고 불리는 리센츠와 트리지움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리센츠 전용 84㎡ 전세의 경우 시세가 13억~14억원으로 지난해 초 매매가와는 적게는 6000만원 차이에 불과하다. 트리지움 전용 84㎡도 전세시세가 12억원 대로 지난해 매매 거래가격과는 2억원 정도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수요는 꾸준한 듯 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사무실을 찾아오는 이들은 드물었지만, 전화는 쉴 틈 없이 울렸다. 중개사와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응대 전화로 대화가 끊기기 일쑤였다. 대부분 전세를 찾는 전화라고 했다. 하지만 중개가 쉽게 성사되지는 않는 눈치였다. 매물 금액을 듣고는 끊겨버리는 전화에 금세 자리로 돌아왔다.
C 중개업소 대표는 "전세 매물 찾는 연락은 계속 온다. 하지만 가격이 생각했던 것 보다 높으니 좋은 매물 찾아달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 경우가 많다"라며 "불과 몇 달 전과 비교해도 가격이 수억원씩 올랐으니 이해는 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임대차법 이후 전세 매물이 귀해져 수요자 입맛에 맞는 물건을 찾아주기도 힘들어졌다. 때문에 다시 전화를 주는 경우는 드물다. 매물이 있어도 소개해주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게 대부분이다. 전세 거래가 진짜 힘들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차인이 먼저 나서 중개료 외에 성공보수를 주겠다고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변호사가 소송 승소 시 받는 일종의 성공보수처럼 전셋집을 구해주면 추가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얘기다.
한 공인중개사는 "워낙 매물이 적다보니 원하는 지역에 그것도 어느 정도 가격이 맞는 매물이 '하늘의 별 따기'라 말을 안 해도 먼저 주겠다고 하는 임차인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사는 임차인에게 법정 최고 요율을 적용해야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탓에 계약 후에 종종 큰 소리가 난다고 한다. 매물이 적다 보니 집주인에겐 최저 요율의 가격으로 받거나 아예 중개료를 안 받는 경우가 더러 있어 어쩔 수 없이 임차인에게 많은 보수를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서로 협의 하에 깎아나가는 게 상식이지만,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집주인들이 갑인 상황에서 임차인에게 최대한 받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조금씩 오르며 몇 년 뒤에나 나왔어야 할 금액이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 상한제(5%) 등 임대차법 탓 한꺼번에 뛴 것으로 해석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가가 1년 전 매매가에 근접한다는 것은 이상 현상"이라며 "사실 지금의 전세가는 2~4년 뒤에나 나왔어야 할 금액이다. 규제로 인해 몇 년치가 올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