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수요는 느는데 "집값 잡아라" 대출규제로 '막차' 수요 부채질
가계대출 13조6천억원 폭증에 은행 임원 불러 "관리 안된다" 질책
금융당국이 급격한 가계대출 증가에 "관리가 안된다"며 은행들을 불러 질책하는 등 '빚투(빚내서 투자)‧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의 책임을 은행에게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시중은행 가계대출 담당 임원들을 모아 '가계 대출 관리 동향 및 점검' 화상회의를 진행한데 이어 개별 면담까지 요구하며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주재한 비공개 회의는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들에게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를 반드시 지켜달라"고 경고와 함께 가계대출 속도가 가파른 특정 은행을 지목해 질책하는 자리였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대출 문제로 혼쭐났다"고도 했다.
현재 은행권은 지난 10월 이후 신용대출 금리를 높이고 한도를 축소하는 등 금융당국의 '총량관리' 지침에 따라 대출창구 문턱을 높였는데, 자산시장 과열 현상으로 늘어난 대출 수요를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지난 한 달 간 늘어난 가계대출 총액은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이는 정부의 신용대출 규제 강화 방침에 앞서 대출을 일단 받아두려는 '막차' 수요가 몰린 결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 가계 대출 잔액이 총 982조1000억원으로 한 달 사이 13조6000억원 증가하며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가계대출의 최후 수단인 신용대출은 지난 한 달 동안 7조4000억원 늘어났다.
"부동산 정책 실패 아닌 시장의 실패"라더니..."원인을 '은행창구'서 찾는 격"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경고에 따라 이례적으로 연말 대출창구 문을 걸어 잠그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신용대출 금리를 높이고 한도를 축소하는 등 가계대출을 조여왔지만, 몰려드는 수요를 틀어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라는 해석이다.
KB국민은행은 9일부터 연말까지 대출상담사를 통한 주택담보·전세대출 모집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고, 우리은행도 비대면 신용대출 주력 상품인 '우리 WON하는 직장인대출' 판매를 11일부터 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대출 수요가 보험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국내 생명보험사 24곳의 부동산담보대출 규모는 9월 48조1865억원으로 지난 1월 보다 11.3% 뛰었고, 같은 기간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29조5913억원으로 전분기 말 보다 1조8267억원 늘어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다만 금융권에선 은행권을 향한 금융당국의 질책과 지침을 두고 "부동산정책 실패 원인을 '은행 창구'에서 찾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의 시각이 "집값 상승은 정부 정책의 실패가 아닌 시장의 실패"라는 정부여당의 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정책 실패의 '원흉'으로 몰릴 위기인 은행들은 억울하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대출을 진행했는데,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며 집값이 상승한 책임을 은행에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수요가 늘면 창구 문턱이 높더라도 대출 총액이 늘어나는 것인데, 정부는 은행이 쉽게 돈을 빌려줘서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켰다고 보는 게 아닌가.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며 "은행이 잘못해서 질책을 하면 달게 받겠는데, 이렇게 지적을 하면 좀 억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