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이익 6.3조…1년 전보다 6000억 넘게 늘어
증시 활황·재난지원금 등 수혜…적절성 논란 '고개'
국내 4대 금융그룹들이 수수료로 벌어들인 돈이 1년 전보다 6000억원 넘게 불어나면서 6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과 카드 계열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산 속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금융사들은 도리어 이를 기회로 수수료 실적을 부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신한·KB·하나·우리금융 등 4개 금융그룹들이 거둔 수수료 이익은 총 6조2762억원으로 전년 동기(5조6474억원) 대비 11.1%(6288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그룹별로 보면 KB금융의 수수료 이익이 같은 기간 1조7165억원에서 2조1705억원으로 26.4%(4540억원)나 늘며 유일하게 2조원을 웃돌았다. 신한금융 역시 1조6195억원에서 1조7550억원으로, 하나금융도 1조4707억원에서 1조6197억원으로 각각 8.4%(1355억원)와 10.1%(1490억원)씩 해당 금액이 증가했다. 반면 우리금융의 수수료 이익은 8407억원에서 7310억원으로 13.0%(1097억원) 줄며 조사 대상 금융그룹들 중 홀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이 같은 흐름은 당초 예측을 다소 빗나간 것이다. 올해 금융권의 수수료 실적은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펀드 손실 논란으로 금융당국이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탓이다. 이로 인해 주로 펀드 상품 판매에서 수수료를 거두는 은행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예상대로 4대 금융그룹 소속 은행들이 올린 수수료 이익은 2조7758억원에서 2조5422억원으로 8.4%(2336억원) 감소했다. 지난해 말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에 이어 올해 라임자산운용을 둘러싼 파장에 이르기까지 대량의 펀드 손실이 계속되자, 금융당국은 은행들로 하여금 비예금 상품 판매의 내부통제를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은행들도 불완전판매를 관리하는 내부 조직을 강화하고, 직원에 대한 성과 평가에서 펀드 상품 판매 실적의 비중을 줄이고 나선 상황이다.
이런 은행을 둘러싼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금융그룹들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많은 수수료를 쓸어 담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계열사들의 약진 덕분이었다. 증권사와 카드사에서 눈에 띄게 개선된 수수료 실적이 은행의 빈자리를 메꾸고도 남을 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4대 금융그룹 증권 사업 부문의 수수료 이익은 9652억원에서 1조4507억원으로 50.3%(4855억원) 급증했다. 아울러 카드 계열사들의 수수료 순익도 9320억원에서 1조1454억원으로 22.9%(2134억원)나 늘었다.
이처럼 비은행 계열사들의 수수료 성적 상승에 가속도가 붙은 배경에는 코로나19의 직·간접적인 영향이 자리하고 있다. 우선 증권사들은 코로나19 이후 급속도로 불어난 시장 유동성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기준금리가 추락하면서 시장에 풀린 돈이 주식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증권 거래가 활발해졌고, 이 과정에서 증권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수수료도 몸집을 불린 것이다. 더불어 꾸준히 파이가 커지고 있는 투자금융 사업도 이에 힘을 보탠 것으로 풀이된다.
카드사들의 경우 정부의 코로나19 정책으로 실시된 긴급재난지원금의 덕을 봤다. 대량의 재난지원금이 카드 결제에 사용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수료가 카드사들의 몫으로 떨어진 것이다. 올해 1~8월 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 중 카드를 통한 이용액은 14조9891억원으로, 이를 통해 카드사들이 거둔 수수료 수익은 1967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결제가 부쩍 늘어난 점도 카드사의 수수료 수익 확대에 한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늘어난 수수료 이익은 금융그룹들 입장에서 가뭄 속 단비처럼 여겨진다. 저금리 기조 심화로 은행 이자 마진의 축소가 불가피해지면서, 다른 수익원 창출이 절실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0%대까지 떨어진 건 올해가 처음이다. 이어 한은이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를 결정하면서 현재 기준금리는 0.50%로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금융그룹들의 수수료 수입 확대에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금융그룹들이 저마다 코로나19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금융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하면서, 뒤로는 코로나19의 반사이익을 온전히 챙기는 행태로 여겨질 수 있어서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각종 결제 수수료와 같이 서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영역에서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서비스 이용에 따른 수수료 발생은 당연한 일이지만, 대형 금융그룹들이 코로나19와 같은 국난 상황에 도리어 이와 관련된 반사이익을 고스란히 누리는 것은 적절치 못한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며 "추가적인 수수료 감면 등 고객들에게 좀 더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도, 정부의 정책을 마지못해 따라가는 수동적인 자세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