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확장법 232조 '관세폭탄' 우려 벗어나…각종 불확실성 해소
'친환경' 내건 바이든 정부 출범, '전기차 원년' 현대차그룹에 호재
미국이 ‘조 바이든’이라는 새 지도자를 맞게 되면서 자동차 업계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대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됐다.
신임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 통상규범 준수와 환경보호 관련 공약들을 내세웠던 만큼 트럼프 정부 시절의 관세폭탄 우려는 덜게 됐고, 새로운 환경정책은 위기이자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 출범이 자동차 업계에 가져올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무역통상 분야의 불확실성 해소다.
툭하면 국제관례에서 벗어난 일방적인 고율 관세 부과로 미국 진출 기업들을 압박하던 트럼프 특유의 ‘돌출행동’이 바이든 정부에서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당장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년여간 들먹이며 통상 교섭의 지렛대로 활용해 왔던 무역확장법 232조는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제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하는 조항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조항을 자동차 산업에 적용해 수입 자동차와 부품에 대해 최대 25%의 고율 관세 부과를 추진해 왔다.
이 조치의 시행은 2년 넘게 미뤄져 왔지만 미국향 수출 물량이 연간 60만대에 달하는 현대자동차그룹(현대·기아)과 제너럴모터스(GM)의 중소형차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GM으로서는 무역확장법 232조의 시행 가능성이 심각한 위협 요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국제무역에서 다자체제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 온 만큼, 트럼프와 같은 극단적인 보호무역조치와 예측 불가능한 돌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바이든 정부가 주도할 새로운 미국의 경제·무역 체제에서 우리 기업들이 더 기민하게 대응해야 될 부분은 친환경 정책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화 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와 관련된 친환경 사업 인프라 구축에 재임 4년간 2조달러(약 2230조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 내 전기차 중전소를 2030년 말까지 50만개소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은 전세계 자동차 업계가 군침을 흘릴 만한 소식이다.
미국 내에 전기차 충전소 50만개소가 설치된다는 것은 주유소 못지않은 전기차 인프라가 깔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각 주(州)당 1만개소의 충전소만 설치돼도 우리나라의 전국 주유소 개수(1만1000여개)와 맞먹는다. 그만큼 미국 내 전기차 시장 확대가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그밖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전기차 판매량을 2025년까지 연 18.3%씩 늘린다는 계획 하에 전기차 보조금 지급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미국 시장의 변화는 올해를 전기차 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한 현대자동차그룹의 미래차 사업 전략과도 맞아떨어진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전기차 시장 대응에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말 공개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을 적용한 전기차 모델들을 올해부터 잇달아 시장에 내놓는다.
현대차의 경우 E-GMP를 적용한 전기차 라인업을 ‘아이오닉’이라는 별도의 브랜드로 론칭해 올 상반기 대중화 차급을 담당할 준중형 CUV ‘아이오닉5’를 출시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강력한 주행성능을 갖춘 중형 스포츠 세단 ‘아이오닉6’를 출시하고 2024년에는 럭셔리 대형 SUV ‘아이오닉7’을 내놔 3종의 라인업을 완성한다.
기아도 올해 1분기 크로스오버 디자인의 ‘CV’(프로젝트명)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승용부터 SUV, MPV 등 다양한 차급에 걸쳐 7개의 전용 전기차를 순차적으로 출시한다. 제네시스도 전용 전기차 모델 ‘JW’(프로젝트명)를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전용 전기차 모델들은 E-GMP 기술을 기반으로 1회 충전시 450km 이상의 주행 거리와 20분 미만의 고속 충전 시스템을 갖출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약한 연방정부 차량과 스쿨버스 등의 친환경차 대체는 전기차 뿐 아니라 수소전기차 시장이 열리는 데 있어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수소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가진 현대차그룹에게 긍정적인 요인이다. 현대차는 세계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수소차 넥쏘뿐 아니라 수소연료전지를 기반으로 한 버스, 트럭 등 상용차까지 양산 체제를 갖춘 상태라 수요가 발생하면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
바이든 정부의 적극적인 환경 정책은 이처럼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자동차 관련 정책에는 완성차 업체들의 친환경 차량 의무 판매비율 명시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미국 시장 내에서 전기차나 수소차를 일정 비율로 판매하지 못할 경우 기존 내연기관 차량도 판매에 제약을 받는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시절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위협 요인이다. 그는 후보 시절 공약으로 ‘친환경차 산업에서 100만개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외국 완성차 업체들에게 ‘미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세우라’고 각종 정책 수단을 동원해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대·기아의 경우 해외에 완성차 생산시설을 설립할 경우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데다, 최근 노조가 자동차 전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어 미국 내 전기차 공장 설립 추진이 노사간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본격적으로 열리는 미국의 전기차 시장을 노리는 게 현대차그룹 뿐이 아니라는 점도 각오해야 한다. GM·포드·테슬라 등 미국 토종 업체들 뿐 아니라 독일과 일본의 여러 완성차 업체들, 심지어 애플과 같은 IT기업들도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플랜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애플이 전기차 기반 자율주행차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완성차 업체들과의 제휴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애플과 손잡고 바이든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의 수혜를 노릴지 여부도 현대차그룹의 고민거리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가 친환경차 사업을 본격적으로 강화하는 시점에 친환경 공약을 앞세운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는 것은 분명한 호재”라며 “다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모두 경쟁하는 치열한 각축전이 될 것일 만큼 확실한 경쟁력으로 초반 기선을 제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