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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이 '계산'하기 전에 '손절'된 강경화


입력 2021.01.21 08:40 수정 2021.01.21 08:53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강경화, '김여정 담화' 한달여 만에 교체

남북관계 '부담' 덜겠다는 취지로 읽혀

北美 모두 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자료사진) ⓒ뉴시스

문재인 정부 '최장수 장관'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자리에서 물러난다.


대남·대미 분야를 총괄하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강 장관을 공개 비판하며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만큼, 향후 남북관계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장관 후보자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명했다.


북한이 남측의 '노력'을 들먹이며 '3년 전 봄날'을 거론한 상황에서 '봄날의 주역'이었던 정 전 실장을 외교장관 후보자로 지명해 대북정책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강 장관은 그간 정치권에서 개각 대상으로 거론된 바 없어 이례적 교체로 평가된다. 지난달 4일 개각 당시 강 장관이 직을 유지하자 임기 5년을 채울 것이라는 '오(五)경화'라는 말까지 나왔다. 예상 밖 교체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한 이유다.


일각에선 '김여정 데스노트'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6월 '김여정 담화' 이후 김연철 당시 통일장관이 사의를 표했듯 김 부부장 표적이 된 강 장관이 개각을 피하지 못했다는 관측이다.


앞서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해 12월 10일 담화에서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우리의 비상방역 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며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계산한다'는 표현은 북한에서 '잘잘못을 가려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의미로 활용된다고 한다.


중동 방문 중 북한의 '코로나 청정국' 지위에 의구심을 표한 강 장관은 김 부부장 공개 비판 이후에도 기존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이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김 부부장은 지난 13일 담화에서 열병식 동향을 추적·감시하는 남측에 불쾌감을 표하며 "언제가 내가 말했지만 이런 것들도 꼭 후에는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김 부부장이 '계산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 상황에서 강 장관이 돌연 교체됨에 따라 '김여정 데스노트'에 더욱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강 장관 교체가 김 부부장 담화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강 장관이 스스로 심신이 지쳤다며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해왔지만 만류해왔다"며 "이번에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춰 최종적으로 외교안보 라인 인사를 단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김여정 데스노트'가 통했다는 해석은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는 무리한 추측 보도"라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자료사진) ⓒ뉴시스

이번 인사와 관련해 강 장관이 외교안보 라인에서 '소외'돼왔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실제로 강 장관은 지난해 9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심야에 긴급 소집된 관계장관회의에서 배제된 바 있다. 지난해 7월 개각 이후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장관 △박지원 국정원장 등이 강 장관을 배제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전반을 조율하는 정기 조찬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대미·대북관계를 새롭게 꾸려가야 하는 시점에 외교안보 라인의 '유기적 협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만큼, 과거 청와대에서 대외정책을 조율한 경험이 있는 정 내정자를 '일선'으로 복귀시켰다는 관측이다.


정의용, 하노이 결렬 '책임'
北, '정의용 대북특사' 거절
韓美 대북정책 '불협화음' 우려도


정의용 외교부 장관 지명자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직을 맡았던 지난 2018년 9월 대북특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자료사진). ⓒ청와대

문 대통령이 인사를 통해 대북정책 추진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상황이지만, 북미 모두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과거 대북·대미 메신저로 활약한 정 내정자가 '하노이 결렬'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북한이 정 내정자의 일선 복귀를 마뜩잖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6월 정 내정자(당시 국가안보실장)를 대북특사로 보내겠다는 문 대통령 제안을 거절한 바 있다. 당시 대남 대적사업을 진행 중이던 북한은 정 내정자 방북을 거절한 다음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한국의 일방적 대북 드라이브가 한미 불협화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기 내 대북성과 달성을 위해 개각까지 단행한 문 정부와 장기적 관점에서 대북정책을 입안하려는 바이든 행정부 사이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은 한미 양국에서 민주당 정권이 동시에 들어선 것은 20여 년 만에 처음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다만 스나이더 국장은 "두 정권 정책에는 차이가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서로 협력할 방법을 모색하는 '공통된 의지'에 더 기대를 걸고 싶다"고 말했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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