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총리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서 공개적으로 양사 화해 촉구
LG에솔·SK이노, 합의금 및 방법 놓고 막판 합의 시도 가능성
정세균 국무총리가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간 배터리 소송과 관련해 "낯 부끄럽다"고 양측을 공개 질책하면서 양사가 합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양사는 2019년부터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특허 침해 등을 놓고 한국과 미국에서 햇수로 3년째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2월 10일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 판결을 앞두고 정 총리가 화해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극적인 합의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서울 양천구 대한민국예술인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K-배터리의 미래가 앞으로 정말 크게 열릴텐데 작은 파이를 놓고 싸우지 말고, 양사가 나서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큰 세계 시장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정치권도 나서서 제발 좀 빨리 해결하라고 하고 있다"며 "양사 최고 책임자와 연락도 해서 낯 부끄럽지 않냐, 국민들 걱정을 이렇게 끼쳐도 되냐고 빨리 해결하라고 권유를 했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 총리는 "소송 비용이 수 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며 "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양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남이 누군지는 제가 거론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CATL 등 중국업체를 겨냥한 것이다.
앞서 2019년 4월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자사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했다.
ITC는 작년 2월 SK 조기패소 결정(예비결정)을 내렸으나 SK의 요청으로 같은 해 4월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 당초 ITC는 10월 5일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세 차례나 미룬 끝에 내달 10일 최종 발표를 예고했다.
이번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는 별개로 특허침해 소송 등 국내외 10건의 소송이 잇따라 진행중이다. 양사는 소송전과 관련해 "합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기본 입장은 같지만 합의 방식 등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정 총리의 배터리 소송 관련 발언 이후 SK이노베이션은 지동섭 배터리 사업대표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지금까지의 모든 소송 과정에 성실하게 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원만하게 해결을 하지 못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지 대표는 "이같은 국민적인 우려와 바람을 잘 인식해 분쟁 상대방과의 협력적이고 건설적인 대화 노력을 통해 원만하게 해결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하루 빨리 LG에너지솔루션과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유리하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예비결정에 이어 조기패소가 확정될 경우 배터리 소재를 원칙적으로 미국에 수출할 수 없다. 현재 건설중인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역시 가동에 제한을 받게 된다.
특히 조지아 1공장은 2022년 1분기부터 양산에 돌입할 계획으로, 정상 가동을 위해서는 하루 빨리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아울러 한창 키워야 할 배터리 사업이 이번 소송으로 전면 차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사업 성장성을 도모하는 것이 최선이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논의할 만한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조건부 합의' 의사를 밝혔다.
이날 LG에너지솔루션은 입장문을 통해 "배터리 소송 관련해 당사는 현재 합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원만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겠다"면서도 "최근까지 SK이노베이션의 제안이 협상의지가 전혀 없는 것인데 논의할만한 제안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의 합의금 액수와 납입 방법 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LG화학은 지난 27일 열린 4분기 결산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ITC 조기패소 판결 시 SK이노베이션이 받게 될 불이익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LG화학은 "ITC가 조기패소 판결을 인용할 경우 영업비밀 탈취 사실이 인정되는 것으로 (SK이노베이션의) 침해 제품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명령이 내려진다"면서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의 소송도 재개될 것으로 보이며 여기서는 실제 손해, 징벌적 손해, 변호사 비용을 모두 배상받게 된다"고 말했다.
업계 의견 등을 종합하면 LG측이 원하는 배상액은 수 조원대인 반면 SK는 수 천억원대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상액에 대한 편차가 큰 만큼 막판 합의를 두고 양사간 진통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정 총리가 공개적으로 화해를 촉구한 데다 대규모 투자 등 시장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양사가 끝내 합의를 도모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ITC 결정이 나오면 LG가 연방법원에 제기한 소송 결과도 이를 따르게 된다. 다만 패소한 측에서 항소를 할 경우 최종심까지 수 년이 더 소요될 뿐더러, 법정 다툼을 지속하는 사이 글로벌 수주 물량이 위축될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양사 모두 강경 대응만을 고집하기 어렵다.
두 기업 다 글로벌 사업을 영위해야 하는 만큼 기술 탈취 여부에 대한 사과 등 대응 수준과 합의금액을 놓고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