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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올드무비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사랑을 카피하다’


입력 2021.02.01 00:00 수정 2021.02.02 08:54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 스틸컷 ⓒ이하 ㈜마운틴픽쳐스 제공

이란 태생의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선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삶이 예술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 키아로스타미 감독 덕에 낯선 곳 이란이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언제나 이란을 배경으로 한 것도 아니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뒤에는 유럽 각국, 미국, 일본 등지에서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사랑을 카피하다’를 무척 좋아한다. 일반적 극영화 역시 잘 만든다는 것, 줄리엣 비노쉬 같은 세계적 배우와의 협업도 멋지게 해낸다는 것이 확인되는 영화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해냈다.


‘사랑을 카피하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줄곧 묻는 감독의 질문이 기존 영화들에서는 주로 형식에 의해 던져졌다면, 이 영화에서는 줄거리와 주제 전면의 내용에 의해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별세 6년 전, 노장의 감독은 일생의 질문을 친절하게 풀어 준다. 그것도 멜로로, 비범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답게 독특한 멜로로.


엘르 역의 줄리엣 비노쉬 ⓒ
제임스 역의 윌리엄 쉬멜ⓒ

남자 주인공 제임스 밀러(윌리엄 쉬멜 분)는 작가다. 최근 ‘기막힌 복제품’이라는 책을 냈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골동품이나 복제품을 파는 여자 주인공 엘르(줄리엣 비노쉬 분)는 책에 매료됐다. 복제품도 경지에 이르면 진짜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다는 주제에 깊이 공감하고 있고, 자신의 평소 생각과 같은 생각을 펴낸 작가를 좋아한다. 신작 강연 차 들른 투스카니에서 밀러와 엘르는 만난다. 엘르가 강연에 갔고, 투스카니 시골 지역을 안내하겠노라 1일 관광 가이드를 제안한다.


이곳저곳을 함께 둘러보던 엘르는 밀러에게 마음에 들 거라며 박물관에 걸려 있는 하나의 그림 앞으로 데려간다. ‘투스카니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초상화 ‘무제 플림니아’이다. ‘오리지널 카피’ ‘리얼 카피’라고 소개하며, 밀러의 책 ‘기막힌 복제품’이 주장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엘르와 해설사의 말을 종합해 보면 18세기 나폴리인이 그린 위작이라는 사실이 겨우 50년 전에 20세기 들어서야 밝혀졌지만 200년 동안 로마시대 작품으로, 진품으로 여겨왔던 프레스코화다. 박물관 측은 진품만큼 뛰어난 이 작품을 소장하기로 결정했다. 위작이지만 원본만큼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을 박물관 측은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니리자’를 관리하듯 세심하게 보존하고 있다.


다 아는 얘기면서도 해설사의 말에 흥분과 공감을 표하는 엘르와 달리 밀러는 시큰둥하다. 밀러의 반응에 실망한 엘르는 “집필 전에 그림을 봤으면 좋았겠다고 말해 주면 안 되느냐”고 말하고, 밀러는 “그 말을 못 한 건 미안하다. 하지만 그런 예는 끝도 없이 많다”고 대꾸한다. 이어 ‘무제 플림니아’의 원본이라는 그림 역시 사실은 실제 모델의 아름다움을 모방한 것 아니냐, 그 모델이 진정한 원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모나리자’도 마찬가지여서, 그 미소가 모델의 표정인지 작가의 의도인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결국, 자신이 안내한 그림에 대한 호응을 찾을 수 없는 역설에 이번엔 엘르가 시큰둥하고 밀러는 지루한 얘기는 그만하고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제안한다.


어쩐지 잘 어울리는 두 사람. 부부 행세하다 부부 될까 ⓒ

찻집에 들어간 두 사람. 엘르는 다른 얘기를 하자며, 신간 강연회에서 아이가 배고프다고 투정해서 피렌체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데 듣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며 무슨 내용이었는지를 물었다.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된 5년 전의 목격담이었고, 어느 모자에 관한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엘르 모자였다. 5년 전 엄마는 시뇨리아 광장에 선 다비드상에 대해 불어로 설명했고, 아이는 마치 진품을 보는 듯한 경이로움으로 다비드상을 올려다봤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진품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 진품인 줄 알고 경탄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밀러는 책 ‘기막힌 복제품’을 착상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아이와 단둘이 이탈리아로 이주해 온 때가 생각나선지 얘기를 듣는 엘르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엘르가 질문을 건넨 뒤 “아, 질문 잘못했다”고 말한 것이나 “모르는 척하지 마요”라고 말한 것을 보면, 엘르는 책의 시작이 자신과 아들이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밀러 역시 알고 있었고, 그래서 토스카니 동행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때 벨이 울리고 밀러가 전화를 받으러 나간 사이 찻집 주인이 밀러의 커피가 식었다고 걱정하자 엘르는 “매번 저래요”라고 답한다, 이 말을 주인 할머니가 “좋은 남편 같아요”라고 받으면서 엘르와 밀러는 말 속에서 부부가 된다. 눈가를 적셨던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고 엘르는 얼른 훔친다. 프랑스인 엘르와 영국인 밀러는 영어로 대화했고, 이탈리아인 주인은 대화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부부로 생각했고 엘르가 부인하지 않으면서 밀러를 놓고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자기와 자기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게 낫다”, “외로우려고 결혼한 게 아니다. 내 삶을 남편과 나누고 싶다”, “남자가 다른 여자보다는 일에 몰두하는 게 낫다”, “여자들도 일한다, 다만 조절해서 가족을 돌본다”, “여자는 조절이 되지만, 남자는 몰두밖에 못 한다”. 엘르가 자신의 전 남편 얘기를 하는 것인지 일반적 결혼 생활에 관해 얘기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밀러는 말 속에서 15년 차 이기적 남편이 되어 간다. 할머니는 “그래도 일요일에 아내를 커피숍에 데려온 것만으로도 존경스럽다. 서운함은 묻어 두고 내색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젠 부부 싸움까지, 진짜 부부 같은 엘르와 제임스 ⓒ

부부놀이는 엘르와 주인의 말로 끝나지 않고 엘르와 밀러의 역할극으로 발전한다. 주인 할머니가 부부로 안다는 말에 밀러는 “사실 우리는 잘 어울린다”며 동조를 하더니, 부인과 아들이 이탈리아에 사는데 이탈리아어를 못 하는 게 이상하다는 말에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산다, 각자 편한 언어를 쓴다”고 말한다. ‘설명 잘했지?’ 하는 밀러의 태도, 이때 엘르의 전화벨이 울리고 서둘러 나가는데 어딘가 화가 난 표정이다. 마치 남편의 냉정한 말에 상처라도 받은 듯. 아들과 전화하며 엘르는 화를 내는데 아들을 향한 것인지, 혼자 좋은 사람인 척하며 그런 아이를 두둔하는 밀러인지, 아이 아빠인지 분노의 대상이 겹쳐 보인다. 두 사람은 가족과 분리된 남편의 삶을 화제로 언쟁을 이어간다. 엘르는 “아빠 닮아서 속만 썩인다니까!”라고 말하면서 전화기를 밀러 얼굴에 들이민다, 마치 그 아빠가 밀러인 양. 길가에 앉은 사람들은 부부 싸움을 하는 두 사람을 구경하듯 쳐다본다.


두 사람이 그렇게 싸우고 화해하는 사이 날이 저물어간다. 영낙 없는 부부의 모습이다. 처음엔 가짜 부부 행세였는데, 이것도 하다 보니 기막힌 복제 부부가 되어 진짜 부부처럼 보인다. 세상의 아내 대표, 남편 대표가 된 듯한 역할극이지만 화를 토해 내고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카타르시스 효과를 발휘한다, 상처에 약이 발라지는 느낌이다. 묘한 건 전 남편과의 마음의 화해가 아니라 앞에 있는 제임스와 교감과 호감이 커간다는 것, 어쩐지 새로운 사랑이 움트는 것만 같다. 정말 더 묘한 건, 영화를 보면서 자꾸 상상하는 나다. 어쩌면 제임스가 남편 아닌가, 지금 쏟아내는 얘기가 사실은 당사자를 향한 건 아닐까. 제임스는 남편 대리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엘르의 호소를 듣고 해명하고 분노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황에 깊이 몰입한다. 과연 엘르와 제임스, 제임스와 엘르의 진실은 무엇일까. 기막힌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의 매력을 직접 느껴보길 추천한다.


촬영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사람은 가고 작품이 남았다. ⓒ

‘사랑을 카피하다’를 좋아하는 이유를 보태고 싶다. 줄리엣 비노쉬는 어릴 적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좋아한 첫 번째 외국 배우인데, 그의 표현법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했다. 푸른 눈도 촉촉해 보이는 입술도 아름다운데 이상하게도 중성적으로 느껴졌다. ‘사랑을 카피하다’에서의 줄리엣 비노쉬는 흔히 말하는 여성미가 물씬 흐른다. 줄리엣이 이토록 매혹적이었던가. 그 안에서 새로운 종류의 아름다움을 꺼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에게 감사한다. 성악가인 윌리엄 쉬멜을 영화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도 감사한다. 까탈스럽고 이기적이면서도 어딘가 따뜻해 보이는, 침묵할 땐 멋있고 폭발할 땐 귀여운 오묘한 배우의 영화 출연작이 너무 적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주연작은 이 작품 하나여서 자꾸 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시작과 끝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있다. 현실의 기막힌 복제품인 영화, 이쯤 되면 현실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다고 말하는 감독.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 영화를 위한 최고의 변호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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