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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초점] “저도 가해자일까요?”…학폭 폭로가 불러온 변화


입력 2021.03.18 13:00 수정 2021.03.18 10:48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연예인, 스스로 과거 검열 나서

드라마계, 출연 계약서·서약서에 '학폭' 특약 포함

ⓒKBS

“이것도 학폭으로 볼 수 있나요?”


배우 A씨가 자신의 소속사 대표에게 한 말이다. A씨는 최근 온라인을 통해 번지고 있는 연예계 학교 폭력(학폭) 폭로가 잇따르자 자신의 학창시절 일화를 대표에게 전하면서 혹시 동창생이 이를 학폭으로 느꼈을 여지가 있는지 물었다. 오래 전의 기억인 터라 흐릿하지만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들 사이에서 한 명과 사소한 다툼이 있었고, 그 무리에서 그 친구가 이탈하면서 생긴 트러블이었다.


연예계는 학폭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해 연예인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고, 그 내용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아 여전히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는 사례도 있다. 또 허위글로 판명이 나고, 글을 쓴 당사자의 사과로 논란이 마무리되기도 한다. 오래 전, 과거의 사건이다 보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실이 왜곡되거나 부풀려지는 경우도 잦았다.


문제는 진위와 무관하게 연예인의 경우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연예인의 경우 폭로자가 허위글임을 인정했음에도, ‘소속사가 돈으로 사건을 무마한 것이 아니냐’면서 학폭 의혹이 기정사실화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미지가 곧 신뢰고, 신뢰가 곧 인기로 연결되는 연예인에게 학폭 프레임이 씌워지는 순간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는 셈이다.


때문에 많은 연예인들이 스스로의 과거를 검열하는 일도 허다하다. 앞서 언급한 A씨처럼 말이다. 기획사 관계자들도 긴장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뚜렷한 증거 없이 철저히 가해 의혹을 받는 연예인과 피해를 주장하는 네티즌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검증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학폭 폭로가 잇따르자 소속 아티스트가 직접 과거의 일을 털어놓으면서 학폭으로 분류(?)될지를 묻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몇몇 사례들을 목격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검열하고 있다. 방송에서 자랑처럼 떠들었던 과거의 비행이, 이제는 용납되지 않는 것을 인식하고 연예계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소속사에서는 전속계약 논의 과정에서 생활기록부를 필수로 확인하는 절차도 생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KBS2 ‘달이 뜨는 강’의 지수, SBS ‘모범택시’의 나은(에이프릴)이 하차했다. 두 작품은 모두 사전 제작 드라마로 기획돼 상당 부분 촬영이 완료됐음에도 이들의 하차를 결정했다. 비용과 다른 배우들의 수고, 제작기간이 초과되더라도 의혹에 휘말린 배우를 그대로 끌어안고 가지 않는다. 이들 외에도 조병규도 예정돼 있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불발됐고, 모든 촬영을 마친 드라마 ‘디어엠’도 여자 주인공인 박혜수의 학폭 의혹에 당초 지난달 26일 방송 예정이었지만 편성을 전면 보류했다.


연예인의 자가 검열은 물론, 출연 중인 배우의 과거가 발목을 잡으면서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배우 개인의 사회적 물의로 드라마에 피해를 끼쳤을 경우 위약금 조항을 작품 계약서나 서약서에 지금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기입하게 됐다. 특히 과거 ‘미투’가 연예계를 휩쓸었을 당시 이와 관련된 조항이 계약서에 추가됐던 것과 같이, 이번에도 ‘학폭’ 관련 조항이 포함되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출연 계약서에 이미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에 대비한 위약금 조항이 있지만 학폭 폭로로 인해 제작에 큰 차질이 빚어지는 만큼 학폭 항목을 추가하는 등 계약서를 더 상세하게 기입하고 있다. 일종의 ‘특약’ 개념”이고 밝혔다. 또 이미 계약서를 쓴 배우의 경우엔 별도로 학폭 관련 서약서를 받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최근 온라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 아닌)무분별한 학폭 폭로에 연예계가 몸을 잔뜩 웅크리게 됐다. 이로 인한 제2의 피해자, 즉 의혹을 받는 연예인과 함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나 스태프·제작진, 심지어 시청자까지 피해를 봐야 하는 상황까지 오다 보니 연예인 스스로는 물론 업계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만약의 불상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을 내놓고 있다”면서 “향후 위약금 조항을 작품 계약서나 서약서에 지금보다 더 면밀히 기입하고 연예인 학폭 대책 위원회를 만드는 등의 변화 등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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