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이행률 35.6%…강제수단 미흡과 솜방망이 처벌로 '나 몰라라'
자녀 생존권 위협하는데도 법·제도 '느릿', 소송전만 반복…개인의 도덕성·책임감에만 맡길 수 없어
'방임행위'로 규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이름: 장OO
직업: 주방요리사
양육비 미지급금: 9800만원
이름: 김OO
직업: 영업사원
양육비 미지급금: 1억4000만원
이름: 강OO
직업: 분양업자
양육비 미지급금: 2000만원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 '배드 파더스(Bad fathers)'에는 무책임한 아빠·엄마의 명단이 수시로 갱신된다.
법원판결문 등 사실관계를 확인해 리스트에 오른 이들의 미지급 양육비는 적게는 200만원부터 많게는 1억원을 웃돈다. 직업도 무직, 보험설계사, 강남 학원 영어강사, 룸살롱 웨이터, 어린이집 교사 등 다양하다.
양육비는 아동의 생존권과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와 직결된다. 하지만 아동과 양육자의 어려운 사정은 '나몰라라' 한 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나쁜 아빠·엄마들은 아직도 대다수인 게 현실이다.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양육비 이행률(누적기준)은 2015년 21.2% 2016년 29.6%, 2017년 32.0%, 2018년 32.3%, 2019년 35.6%, 2020년 36.1% 등이다. 2015년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설립된 후 이행률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한부모가정 10곳 중 7곳은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양육비 이행률이 저조한 원인으로 미흡한 양육비 이행 강제 수단과 솜방망이 처벌을 꼽는다.
허민숙 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외국의 양육비 이행관리기관은 상당한 권한을 행사해 양육비 지급을 강제 한다"며 "반면 우리나라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주 업무가 양육비 관련 소송에 대해 법률지원을 하는 수준에 그치는 등 권한이 미미하고 역할도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 해외의 양육비이행 관리 기관은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면허증 및 자격증 취소, 벌금형·징역형을 포함한 형사처벌, 출국금지, 지명수배, 신원공개 등의 강력한 조치를 가해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가장 강력한 조치는 감치명령에 그친다. 감치명령은 채무를 고의로 이행하지 않은 사람을 법원이 직권으로 구속하는 제도다.
특히 감치명령의 집행 기간인 6개월 내 양육비 미지급자를 찾아내지 못하면 감치 결정은 무효화 돼 이행명령 재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양육비 미지급분은 쌓여가고 아동과 양육을 전담하는 부모의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지급능력을 확인·조사할 권한이 없다. '양육비이행법' 제16조는 양육비이행 관리기관이 양육비 미지급자의 재산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긴 시간 소송 과정을 거쳐야만 하며, 이조차도 양육비 미지급자가 일정한 급여를 받는 급여소득자, 본인 명의 재산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다만 관련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해 운전면허정지·출국금지·명단공개· 최대 징역 1년의 처벌을 할 수 있는 내용의 '양육비이행책임법'이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 조치는 감치명령을 전제로 하고 있어 복잡한 소송 과정을 거쳐하는 만큼 법·제도의 지속적인 개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대응이 미약한 것은 양육비 미지급을 '사적인 채무관계'로 보는 잘못된 인식이 뿌리 깊었던 탓이라고 지적한다.
양육비 지급 이행을 개인적인 양심과 도덕성, 또는 양자 간의 합의 문제로 치부하면서 양육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립이 더뎠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에 준하는 행위로 취급하고,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를 높여 이행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는 "그동안 아동복지법은 양육자에게만 아동학대·방임죄를 적용했지만 양육비 미지급 또한 공동책임에 의한 아동방임으로 보고 형사처벌을 가해야 한다"며 "개인간 채무에 대해서 형사처벌은 과도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지만 이미 미국, 독일 등 많은 국가가 양육비 미지급자를 형사처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허민숙 조사관은 "양육비 미지급 행위가 보호자의 '방임행위'로 규정되면 양육비 미지급자를 아동복지법 제71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며 "아동복지법 제17조 6호는 '의식주를 포함한 보호·양육·치료·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를 방임행위로 규정하는 점에서 양육비 미지급은 방임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다"고 설명했다.
허 조사관은 이어 "해외 선진국들이 양육비 이행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도입하는 것은 양육비 문제가 개인의 도덕성과 책임감에만 맡길 수 없는 사안임을 알려준다"며 "강력한 이행 조치 없이 이행률이 저절로 개선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 강력하고 다양한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효원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최근 법원의 해석들에 따르면 비양육자가 양육비를 미지급하는 행위는 명백히 형법상 유기 및 학대죄에 해당되고, 아동복지법 위반죄에도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육비 미지급은 단순한 금전채무의 불이행을 넘어 자녀의 생존권 위협 등 특수성이 있음이 인정되는 것"이라며 "아동의 건강과 복리를 기준으로 양육비 미지급 행위에 대한 판단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