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 거부권 일주일 앞으로…합의금 의견차 '팽팽'
SK 美 사업 조기 철수 등 배수진 펼쳐…LG 역시 강경 모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이 6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미국 정치권까지 가세하며 양사간 '합의'를 촉구하고 있지만 합의금에 대한 의견차가 워낙 커 거부권 시한까지 팽팽한 대립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거부권이 나오지 않을 경우 미국 사업 철수를 고려하는 등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협상이 늦어질수록 불리한 것은 SK이노베이션이라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LG-SK 배터리 분쟁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 판결과 관련해 오는 11일(현지시간)까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ITC는 지난 2월 10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최종 판결하며 SK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 수입 금지를 명령했다. 다만 미국 고객사들의 피해를 고려해 포드와 폭스바겐 일부 차종엔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통상 ITC 판결 이후 ITC 상급기관인 USTR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따지기 위한 리뷰 기간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의견을 듣고 60일 이내에 승인 또는 거부 여부를 결정한다.
일주일 안으로 USTR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SK이노베이션 배터리의 수입금지 처분은 철회된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사업을 지속하면서 델라웨어법원으로부터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배상 규모를 판단받게 된다.
만일 배상 규모를 놓고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이노베이션 둘 중 하나가 불복할 경우 항소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영업비밀 침해 관련 다툼은 1~2년 가량 더 소요될 전망이다.
반대로 거부권이 나오지 않으면 ITC 결정은 그대로 효력을 갖는다. SK이노베이션이 시간을 벌기 위해 연방항소법원에 항소를 하더라도 수입 금지 처분은 유지된다.
이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은 자사에 불리한 결정이 나올 경우, 미국 사업 철수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은 ITC 판결 이후 미국 조지아주 2공장 공사 속도를 늦추는 한편 협력업체에 대한 추가 공사 발주도 중단했다.
합의금 지급과 미국 사업 철수를 놓고 득실을 계산한 뒤 사업을 접는 것이 낫다고 판단되면 중단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까지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 배터리 1공장과 2공장에 약 1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철수를 확정하면 조지아주 생산 설비는 헝가리 공장으로 이전될 전망이다. 설비 이설 비용을 SK가 부담하는 것은 물론, 배터리 공급 불발에 따른 위약금도 고객사인 포드·폭스바겐에 물게 된다.
이에 대해 SK 측은 "미국 공장 땅은 조지아주로부터 제공받은 것으로 공장 철수시 반환하면 되며 설비 이전 비용은 1000억원대 정도"라며 "위약금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더해도 LG가 요구하는 '3조원+α'보다는 훨씬 낮다"고 설명했다.
SK가 미국 사업을 철수하더라도 LG가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제기한 민사소송 결과에 따라 LG에 배상금은 물어야한다.
LG측은 ITC가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한 만큼 배상금이 수 조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 반면 SK측은 미국 사업을 조기 철수하게 되면 미국에서 발생하는 수익(부당이득)이 없어 배상금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SK이노베이션은 사업 조기 철수를 검토하는 한편 미국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득전에도 총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달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이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을 끌어내기 위해 미국을 다녀왔고, 김준 사장도 미국으로 건너가 막판 설득에 나섰다.
외신 등에 따르면 김 의장은 조지아주 공장 철수 가능성을 언급하며 배터리 공급 부족 심화, 미국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SK이노베이션 미국 사업 고문으로 영입된 샐리 예이츠(Sally Yates) 전 법무부 차관 역시 일자리 창출과 전기차 및 전기차 배터리 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근거로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 독점금지법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생산이 무산될 경우 사실상 LG에너지솔루션의 독점 생산 체제가 불가피해진다는 이유다.
바이든 행정부가 밀고 있는 친환경차 시장 확대를 위해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을 밀어줘야 하는 데 그 한 축인 SK 배터리가 무너진다면 사실상 LG에너지솔루션의 독점 체제가 굳혀질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는 미국에서 경계하는 독점금지법과 상충된다.
이 과정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가 재개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대규모 설비 이전과 미국 사업 철수라는 뼈 아픈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조지아 공장을 예정대로 가동할 수 있다.
그러나 합의금 의견차가 워낙 커 가능성은 아직까지 크지 않다. 업계 의견 등을 종합하면 LG측이 원하는 배상액은 3조원 이상인 반면 SK는 이에 훨씬 못미치는 1조원 안팎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가 LG의 기술을 탈취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합의금액을 제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SK는 침해됐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어떻게 침해됐다는 것인지에 대해 ITC가 판단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수 조원 규모의 합의금을 내는 것은 불가하다며 맞서고 있다.
양사의 끊임없는 분쟁과 반목으로 부작용이 크게 확산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적으로 LG와 SK 각 사에 악재이고, 중장기적으로는 배터리 기술 중심축이 한국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배터리 내재화 선언으로 완성차-배터리 업계에 충격을 줬다. 폭스바겐은 LG-SK 배터리 최대 수요처 중 하나다.
더욱이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다. 현대차 코나 전기차(EV) 화재로 인한 충당금 설정으로 한 차례 홍역을 앓았던 LG에너지솔루션이 폭스바겐 이슈까지 겹치면서 당초 기대했던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내외 이슈가 산적한 상황에서 '소송전'에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SK이노베이션 역시 ITC 판결로 미국 사업에 제동이 걸린 만큼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양사가 합의를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할 수록 중국·일본 배터리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ITC 판결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여부가 6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LG와 SK가 극적 합의로 경영 정상화를 시도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