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 절대 믿지 않아"
내부기강 다잡기·사상통제 강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당 최말단 책임자를 대상으로 한 세포비서대회에서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대회장 벽면에 크게 새겨진 '전당과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 주의화하자!"는 문구처럼 익숙한 문법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장기전을 예고한 모양새다.
9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총비서는 전날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우리의 전진도상에는 많은 애로와 난관이 가로놓여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당 제8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은 순탄치 않다"며 "당 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하여 각급 당 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 총비서는 "우리는 그 어디에 기대를 걸거나 바라볼 것도 없다"며 "우리 인민의 앞길을 개척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로 가는 위대한 목표, 위대한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있어 우리 당은 그 어떤 우연적인 기회가 생길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에 있어 '원칙론'을 거듭 강조함에 따라 대외관계 개선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장기전 차원에서 '고난의 행군'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용어는 1930년대 말 김일성 전 주석이 이끄는 '항일빨치산'에서 유래했다. 당시 항일빨치산은 만주에서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혹한과 굶주림을 견디며 100일가량 행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고난의 행군을 체제 안정을 위한 개념으로 변용 시켜 활용했다. 1990년대 지속되는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영향으로 아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고난의 행군에 빗대 자신에 대한 충성과 경제난 극복을 다그친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 역시 지난해 대북제재·코로나19·수해 '삼중고'로 어려움을 겪은 상황에서 고난의 행군을 내세워 내부기강 다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이 앞서 대미노선으로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내세운 만큼, 바이든 행정부가 원칙론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내놓을 경우 고난의 행군을 바탕으로 '대미 강경책'을 취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다.
양무진 북한 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고난의 행군이 재등장한 것은 대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준다"며 "코로나19 확산과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피로감과 함께 내부기강 문제도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이번 세포비서대회에서 내부기강과 사상통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 총비서는 대회 결론으로 당세포의 과업 10가지와 갖춰야 할 기본품성 12가지를 제시하며 당원·주민·청년에 대한 '기강 세우기'를 주문했다.
10가지 과제 및 12가지 기본품성은 '정신 무장'을 골자로 하며 △인간개조사업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와의 투쟁으로 요약된다. 인간개조사업이란 일종의 '세뇌 사업'으로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와의 투쟁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 총비서는 청년들의 사상통제가 "최중대사"라며 옷차림부터 언행까지 통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청년들의 건전한 성장과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적지 않고 새 세대들의 사상 정신상태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며 "청년 교양문제를 조국과 인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운명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 단장, 언행,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늘 교양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지난 6일 개막한 세포비서대회는 사흘 만인 8일 마무리됐다. 북한은 당 최말단 조직인 세포비서대회를 5년마다 개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