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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결제 깡'에 우는 장애인들…금융범죄 극성이지만 혐의입증·사후구제 어려워


입력 2021.04.28 09:00 수정 2021.04.28 08:52        김수민 기자 (sum@dailian.co.kr)

"수사기관·사법당국, 장애인 대상 범죄를 비장애인 시각으로 보는 사례 많아"

"지적장애인들의 반복적인 피해…가해자들의 고의성 입증 어려워져"

ⓒ게티이미지뱅크

금융 이해도가 취약한 장애인들을 상대로 한 범죄가 급속히 늘고 있다. 무엇보다 혐의 입증이 쉽지 않고 사후구제 또한 어려워 이미 심각한 사각지대에 놓인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먼저 장애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모든 해결책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수사기관이나 사법당국에서 장애인 대상 범죄를 비장애인 시각에서 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때문이다.


지난 1월 한 지적장애인 모녀는 친척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자신들도 모르는 보험 수십 개에 가입된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모녀의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진 뒤 남편의 동생 A씨가 재산관리인으로 지정되며 모녀의 경제권을 가져간 것이다. 모녀는 A씨의 뜻에 따라 집을 팔고 반지하 월세방으로 옮기게 됐지만, A씨는 모녀의 신분증·인감도장 등을 이용해 이들 명의로 50여 개의 보험에 가입했다가 해약한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서울 성동경찰서는 지적장애인 여성 B씨의 휴대전화를 빌려 소액결제 방식으로 약 250만 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20대 남성 C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다.


"친구 하자"며 B씨에게 접근한 C씨와 그 일당은 지난해 10~12월 속칭 '소액결제 깡'의 방식으로 A씨로부터 총 250만 원을 갈취했고, 뒤늦게 이를 알게 된 B씨의 아버지가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장애인들은 금융투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금융 이해도가 낮아 금융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한국금융연구원에서 발표한 ‘장애인 금융 이용 차별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 및 시사점 분석(2017)’ 보고서에서 ‘예·적금 및 금융투자상품의 이용 현황’을 장애 유형별로 살펴보면, 모든 장애 유형에서 은행 예·적금의 이용이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지체 73.8%, 시각 69.8%, 청각 67.2% 등). 이에 반해 금융투자상품을 이용한다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낮았다(시각 11.6%, 청각 11.3%, 지체 8.7% 등).


또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발간한 '장애인 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19년 한 해 발생한 장애인 학대 사례 1천258건(중복 포함) 중 '경제적 착취'는 328건(26.1%)으로, 전년도보다 8.6% 증가했다.


특히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등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지인에게서 사기 피해를 보는 지적장애인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지적장애인들은 범행 수법을 제때 알아채지 못해 반복적인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잦고, 그럴수록 가해자의 고의성 입증이 어려워진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신우철 담당은 “현재까지 일어난 사건들 모두 금융 관련 지식이 부족한 장애인에게 접근해 범죄를 행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범죄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하여 금융투자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맞춤형 금융투자 교육을 제공하고, 사회적으로 대두된 장애인 대상 금융투자 사기 피해 사례를 기반으로 범죄예방 교육 영상을 제작 및 배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는 지난 2일 장애인제도개선솔루션위원회가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정책과에 건의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신우철 담당은 특히, 어려운 사후 구제에 대해 “범죄 수법이 나날이 다양해지지만 정작 장애인 피해자들은 심각한 범죄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기죄로 신고해 손해배상청구를 하거나 의사결정 능력이 현저히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제도를 통해 법률 행위를 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장애인 대상 금융 범죄가 반복되고 있는 만큼 먼저 장애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대책의 출발점이 돼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겸 대학원 장애학과 교수는 "장애인의 재산권 침해가 일어났을 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피해가 일어난다"며 "지적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달리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진술하기 어렵기 때문에 혐의 입증이 힘들다. 법원을 포함한 사법당국이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장애인을 지원하는 공적 기관(장애인권익옹호기관, 발달장애인지원센터 등)의 역할과 권한이 축소되어 있는데 이를 확대해야 한다"며 "그렇게 돼야 지적장애인의 재산권 침해 피해를 돕는 민간단체들의 힘도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 사회 전체적으로 지적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해야 한다"며 "교육이나 홍보, 인식 개선과 공적 기관의 역할 강화, 민간단체로의 일정 권한 배분, 사법당국의 장애인 특성 파악 등등 모든 것들이 총체적으로 제대로 이뤄져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재산권 침해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선형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수사기관이 장애인 대상 범죄를 비장애인 시각으로 보는 사례가 많다"며 "수법이 교묘해지다 보니 관계기관에서 교육해도 범죄 노출을 완전히 막기 어렵다. 상담소나 지원기관으로부터 빠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민 기자 (su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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