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회장 보유지분 51.68% 달해…알맹이 빠진 대국민사과 지적
네티즌들 "경영권 물려주지 않아도 지분은 물려줄 것 아니냐" 비판
침묵을 지키던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최근 논란이 된 불가리스 코로나19 마케팅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동시에 사퇴를 공식화했다. 또 자녀들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다.
불가리스 코로나19 마케팅 역풍이 거세지자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에도 직접 나서지 않던 홍 회장이 공식석상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쇄신안 등에 대한 내용은 발표하지 않으면서 알맹이가 빠졌다는 또다른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홍 회장은 4일 서울 논현동 본사 3층 대강당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먼저 온 국민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당사의 불가리스와 관련된 논란으로 실망하고 분노했을 모든 국민과 현장에서 더욱 상처 받고 어려운 날들을 보내는 직원, 대리점주 및 낙농가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홍 회장은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저는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최근 사퇴 수습을 하느라 이러한 결심을 하는데 까지 늦어진 점 진심으로 죄송하다. 살을 깎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나날을 만들어갈 우리 직원들을 다시 한 번 믿어주고 성원해주길 바란다"고 고개를 숙였다.
홍 회장은 사실상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개발' 심포지엄이 열린 지 3주 만이다. 경찰 압수수색 등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오너가 직접 입장을 발표할 만큼 위기의식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홍 회장이 직접 현장에 나와 입장을 표명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 2019년 외조카 황하나 씨의 마약 범죄 혐의 당시에도 남양유업은 홍 회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홍 회장 본인이 공식석상에서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 홍 회장 사퇴에도 지배력은 ‘여전’…여론 싸늘
홍 회장의 대국민 사과에도 소비자들은 싸늘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구체적인 경영 방안없이 사퇴 의사만 표명해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퍼포먼스에 지나치지 않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홍 회장이 2선으로 후퇴해도 기업 지배력에는 문제가 없다. 남양유업 사내이사 4명중 3명이 홍 회장 가족인데다, 홍 회장 지분이 51.68%에 달한다.
홍 회장의 사퇴 관련 기사 댓글에는 많은 네티즌들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아도 지분은 물려줄 것 아니냐", "지분을 어떻게 처리할 지 여부에 대한 언급이 빠진 대국민사과" 등 부정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됐다.
또 그동안의 과오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남양유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던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바꿀 지 여부 등도 포함됐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네티즌은 “코로나19 마케팅으로 영업정지를 당할 위기에 처하자 성난 여론을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며 “기업 문화를 근본적인 쇄신안으로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식품업계에서도 홍 회장의 대국민 사과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모습이다.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금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다 2선에서도 기업을 좌지우지 할 수 있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해석에서다.
특히 업계에서는 향후 회사 이미지 재고와 자사 제품 마케팅에 어떤 변화를 줄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그간신규 제품 등 일부 자사 제품에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이른바 ‘로고 지우기’를 시도해 비판을 받아왔다.
로고 지우기는 직접 생산한 제품이나 외부 업체와의 협업으로 만든 제품의 경우 남양 로고를 감추거나 없애는 식이다. 회사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면서 차라리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불매운동에 적극 나선 탓에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유제품의 바코드를 스캔하면 남양유업 제품인지 아닌지를 가려주는 애플리케이션 '남양유없' 등도 등장한 상태여서 새로운 기법이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남양유업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남양유업 소비자에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한 건 2013년 영업사원의 폭언 사건 때부터다.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퍼붓고 할당된 판매물량을 대리점에 강제로 떠넘기는 이른바 ‘밀어내기’를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 첫 계기가 됐다.
그 해 남양유업은 성차별 논란까지 휩싸였다. 여직원이 결혼하면 계약직으로 전환시키고, 임신을 하면 그만두도록 압박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은 일파만파 커졌다. 남양유업의 불합리한 고용 관행은 순식간에 세간에 알려졌고 ‘갑질’ 이미지에 쐐기를 박았다.
또한 2019년엔 홍두영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인 황하나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면서 기업 이미지에 또 다시 타격을 입었다. 당시 남양유업이 회사 경영은 황씨와 전혀 무관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여전히 구설수에 오르면서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쟁사 비방 의혹에도 휩싸였다. ‘경쟁사 유제품의 성분이 좋지 않다’는 취지의 글을 홍보대행사를 통해 지속 게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지만, 오랜 기간 기업 이미지가 추락했던 터라 남양유업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급기야 올해는 불가리스 논란까지 더해졌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13일 서울 중림동 LW컨벤션에서 불가리스를 공동개발한 한국의과학연구원(KRIBS)과 함께 '코로나19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한국의과학연구원에 따르면, 불가리스 항바이러스 효과를 분석한 결과 감기 바이러스인 인플루엔자바이러스(H1N1)를 99.999%까지 사멸했다. 충남대 수의대는 불가리스가 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인 코로나19 억제 효과 연구에서 77.8% 저감 효과를 확인했다.
남양유업은 "국내 최초로 소재 중심이 아닌 완제품 형태로 항바이러스 효과를 규명해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고 발표해 논란이 커졌다.
식약처는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행정처분·고발조치했다. 남양유업 세종공장 관할 지자체인 세종시에 영업정지 2개월도 요청했고,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달 30일 남양유업 본사와 세종연구소 등 총 6곳을 압수수색했다.
현재 남양유업은 세종시에 "구두로 소명할 기회를 달라"며 의견서를 제출한 상태다. 세종시는 24일께 청문회를 개최, 남양유업 의견을 듣고 영업정지 명령을 확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