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락에 관계없이 보수 야당 이미지와 젊은 층 흡인에 녹색불
김웅, 윤희숙 등 합리-실력-소신 갖춘 50대 초반들도 큰 자산
언론은 민심을 실시간으로 따라가지 못한다.
온라인이라는 정보 소통과 습득의 획기적인 수단이 있는 데도 그러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론의 나이가 늙어서다. 다시 말해, 그 기자들, 특히 편집 간부들과 내부와 외부 논객들 대다수가 50~60대이기 때문이다. 소위 꼰대들이다. 이들의 눈에 40대 이하 사람들은 어리다.
어린 사람들은 조직이나 나라를 이끄는 자리에 오르긴 이르다는 한국적(어쩌면 우주 보편적인) 관념도 꼰대들의 젊은 인재 무시 습관에 한몫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1961년에 군사혁명을 일으킨 박정희의 나이는 불과 43세였으며, 2년 후 대통령이 됐을 때 45세였다. 김영삼은 그보다 10년 아래로, 1971년 대선 무렵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을 때 역시 43세였다.
36세의 ‘약관’(弱冠, 원래는 남자 나이 20세를 이름)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 경주에서 여론조사 결과 선두로 치고 올라 전당대회 흥행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지난 주말 실시된 쿠키뉴스 의뢰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지지율 30.1%를 기록, 2위 나경원(17.4%)과 3위 주호영(9.3%) 등 ‘어른’들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그의 30%대 인기는 10여일 전 같은 기관의 조사 때보다 2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돌풍이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선 야권 경선에서 언더독(|Underdog,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낮은 열세 선수) 오세훈이 나경원, 안철수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집권당 후보 박영선에게도 완승한 드라마가 재상영되고 있는 듯 한 스릴마저 느껴진다.
오세훈의 돌풍은 당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불어온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 위선, 오만 등을 심판할 적임자로 중도(中道) 후보인 그를 선호한 결과였다. 이준석 돌풍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같은 민심이, 같은 가파른 궤적을 그리며 그를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여론조사 80%를 반영한 보선 후보 경선과 달리 당 대표 선거는 30%를 반영하게 돼 있으므로 결과는 두고 봐야 한다.
이준석은 1985년 생이다. 그 5년 전에 일어난 광주항쟁을 언론 보도로 읽고 보지 못한 세대이다. 하버드를 나온 수재이니 혹시 모르긴 하지만, 세 살 때 잠실에서 열린 88올림픽도 아마 기억에 없을 것이다.
늙은 언론이 어, 어 하는 사이에 ‘애송이’ 이준석이 제1야당 얼굴이 되거나, 적어도 2인자가 되게 생겼다. 정당과 정치 생리로 볼 때 돌풍의 주인공은 낙선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는 재수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아 단번에 차석(次席)의 자리에 올라앉게 된다.
이준석의 부상(浮上)은 당 대표 선거 당락에 관계없이 4.7 보선 결과에 이어 보수 정당의 미래에 녹색 신호등을 켜 주는, 대단히 희망적인 사건이다. 국민의힘 당이 국민의 따뜻한 시선을 지속적으로 받고 젊은 층을 흡인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그 길을 가리킨다.
이제 국민들, 특히 20~30대 유권자들은 이념이나 지역에 큰 관심이 없다. 이들을 붙잡을 당의 얼굴과 정책을 내세워야만 국민의힘은 성공할 수 있다. 이번 전당대회는 비상대책위원장 김종인 이후 지도 체제 구성을 위해 열리는 것이지만, 국민은 그보다 더 멀리 보고 그 얼굴을 골라 주고 있다.
그럼 젊은 국민들이 보는 이준석과 늙은 언론이 보아 왔던 이준석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언론에게 이준석은 만년 ‘박근혜 키즈’였다. 그러나 그는 여성 대통령에 의해 발탁된 20대 수재 젊은이에서 미래 대한민국의 합리적, 민주적 보수 정파를 이끌어갈 30대 중반 정치 재목으로 성장한, 이미 어른이다.
이준석은 박근혜와 관련, 자신을 정치에 입문 시켜준 데 대해서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나 탄핵은 정당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나이에 비해 노회(老獪)하고 정치에 벌써 물이 많이 든 듯하게 보이는(특히 구세대 정치인들과 언론들에) 면이 있지만, 그의 어떤 말과 행동이 그렇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꼬집을만한 건 없다.
최근 논객 진중권과 SNS에서 벌인 페미니즘 설전은 진중권의 이미지를 오히려 꼰대로 끌어내린 해프닝이었다. 그는 공정을 얘기하기 위해 문재인 정권의 지나친 여성 우대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진중권은 페미니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몰아 “공부 좀 더 해라”라고 훈계를 함으로써 이준석이 30.1% 지지를 받도록 하는 데 혁혁하게 기여 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의 지도적 위치 등장으로 30대에서 60대까지 굵직굵직한 인물들을 보유한 정당으로 커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단단히 형성되고 있다. 이준석(35)~오세훈(60), 박형준(61) 사이에 50대 초반 그룹이 인재 숲을 이뤄 당이 장밋빛 미래로 우거지는 모습이다.
이번에 초선 의원(송파갑) 대표로 당수(黨首) 자리에 도전하는 김웅은 호남(순천, 51)에 고향을 둔 검사 출신의 용기 있는 정치 신인이다. 그는 추미애의 검찰 인사 농단과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하며 옷을 벗었다. ‘국민에게 검찰 개혁이라고 속여 도착한 곳은 경찰공화국’이라고 내부 게시판에 쓴 그의 사직의 변은 역대 최대 공감 수를 기록했다.
같은 51세로 가뭄에 콩 나듯 서울 서초갑에서 당선된 교수 출신 초선 의원 윤희숙은 이제 논쟁에 관한 한, 정치 ‘거물’이 됐다. 포퓰리즘 파이터로서 이재명이 정책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논리로 제동을 거는 한편 다른 여당 의원, 장관, 총리, 대통령 할 것 없이 근거가 부족하고, 정파적이거나 이념적이고, 나라와 국민들의 미래를 망칠 수 있는 발언들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보수 제1야당이 나라를 걱정하는 다수 국민들로부터 우호적 관심과 지지를 받는 길은 지역주의나 맹목적 반대, 투쟁에 있지 않다. 공정과 상식, 정의에 바탕을 둔 논리와 설득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이준석, 윤희숙, 김웅이 보여 주는 합리와 실력, 온건, 예의,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지키는 소신과 지조가 꼰대들에게 일격을 가하며 보수우파,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