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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민의 슬기로운 예술소비] 예술계의 신대륙 발견자! 공간주의를 창시한 ‘루치오 폰타나’


입력 2021.06.09 14:43 수정 2021.06.16 16:54        데스크 null (desk@dailian.co.kr)

루치오 폰타나, 탈리 연작 중, Concetto spazile, Attesa, 1965-1966ⓒTwitter


“나는 그림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공간을 확장하고 싶다.” -루치오 폰타나


예술은 동시대의 사회적 맥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왔다. 20세기에 이르러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이라는 급변하는 생활양식과 이데올로기 속에서 더욱 다양한 예술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서구사회는 ‘우주시대(Space-Age)’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예술도 이와 무관할 수 없었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이탈리아 예술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1899~1968)는 그에 맞서는 대표적인 예술가로 꼽히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우주 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당대의 여러 유럽 예술가들이 지녔던 실험적인 전위정신의 실마리가 되었는데, 이들은 우주시대를 인식하고 그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동시대의 흐름에 동참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을 형성하였다. 폰타나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소명하듯 일곱 편의 공간주의 선언문을 공표함으로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e)’ 이라는 독자적인 미학을 정립하였고 이를 반영한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우주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예술을 제안하였다. ‘공간주의(Spatialism)’를 창시한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공간주의(Spatialism)’의 본질적인 내용은 기존 예술의 미학을 타파하고, 시간과 공간의 통일에 기초를 둔 새로운 예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194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표된 폰타나의 ‘백색 선언(Manifesto Blanco)’에 잘 요약되어져 있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낡은 예술의 개념을 깨뜨리기 위한 고차원적인 예술을 펼치겠다는 선언’으로, 폰타나의 ‘공간주의 선언’이후의 작품 대부분에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e)’이라는 명제가 붙여졌다.


캔버스에 구멍을 뚫거나 칼로 베어냄으로써 또 하나의 공간을 암시하는 작업을 주로 하였는데, 이러한 행위로 그 소재가 뚫리고 잘린 흔적은 무한히 펼쳐지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공간’으로 관통하는 인간의 몸부림의 흔적, 즉 공간을 지각한 고통과 상처의 흔적으로 간주되었다.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공간개념, 신의 종말(Concetto spazile, La fine di Dio), 1963-19644, Oil on shaped canvas, 178.4 x 123.2 cmⓒChristie's 부키(Buchi) 작품중 가장 완성도 높음 2015년 11월 10일, 한화 약 350억에 낙찰, 그의 전체 작품가운데 경매 최고가 기록


“내가 구멍을 내는 건 미지의 차원과 우주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 루치오 폰타나


공간주의 선언 이후, 첫 번째 작업인 부키(Buchi, ‘Holes’1949) 시리즈가 탄생했다. 이태리어로 구멍(Holes)이라는 뜻의 부키 시리즈는 얇게 칠한 캔버스에 구멍을 여러 개 뚫은 것이다. 구멍은 평면의 캔버스를 뒤편의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시켰음은 물론, ‘2차원은 회화, 3차원은 조각’이라 명명한 기존 통념을 깼으며, 회화도 조각도 아닌 새로운 예술세계를 탄생시켰다. 루치오 폰타나의 미학인 ‘공간 개념(Spatial Concept)’도 여기에서 처음 탄생되었다.


부키(Buchi, ‘Holes’1949) 시리즈 이후, 두 번째 작업인 탈리(Tagli, ‘Slash’1958) 시리즈가 탄생했다. 이탈리아어로 ‘베어서 난 자국’이라는 뜻의 탈리(Tagli) 연작(series)은 캔버스를 면도칼로 베어낸 것으로, 오늘날 폰타나의 대표 연작이다. 공간주의를 발전시킨 작품답게 공간이 더욱 깊어 보이도록 캔버스 뒤편을 검은 천 혹은 테이프로 마감함으로써 빈공간의 외형과 공간감을 극대화 했다.


ucio Fontana, Concetto spazile, Attesa, 1965, Water paint on canvas and Lacquered wood, 197 x 143.5 cm, 탈리(Tagli), 2008년 2월 한화 100억 낙찰ⓒChristie's

부키와 탈리 연작은 공통적으로 공간개념 ‘Concetto spazile’이라는 제목을 갖는데, 탈리 연작에는 부제가 하나 더 붙는다. 폰타나는 탈리 작업에서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캔버스를 베었고, 한 줄로 그은 캔버스 뒤에는 ‘Attesa’(기다림)를, 여러 번 그은 캔버스에는 복수형인 ‘Attese’를 써 놓았다. 탈리 연작은 각각 ‘시간과 공간’을 뜻하는 두 단어의 결합이 보여주듯, 말 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인 것이다.


탈리는 한순간, 혹은 즉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폰타나의 매우 치밀한 계획들이 맞물려진 직후, 그 순간에 완성되었다. 붓 터치를 대신한 ‘손으로 베어내기’라는 행위는 특정 형상이 아닌 ‘신체적 행위 자체를 작품으로 남겼다’라는 점에서 폰타나의 예술이 혁신적이라고 손꼽히는 또 다른 이유이며, 이 같은 행위를 폰타나는 “나는 파괴한 것이 아니라 구성한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미술에 대한 모욕’이라는 혹평도 받았지만 현대에 이르러 회화의 새로운 고차원적 미술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크리스티(Christie's)라는 세계적인 경매에서의 낙찰가 기록들만 보더라도 충분히 추정 가능할 것이다.


‘탈리(Tagli)’ 연작 작업중인 루치오 폰타나ⓒUgo Mulas/Arsy


루치오 폰타나는 모노크롬의 캔버스에 길고 휘어진 칼자국을 내는 상징적인 '슬레쉬(Slash)' 제스쳐(Gesture) 작가로 유명하다. 탈리 연작으로 불리는 이 '슬레쉬(Slash)'작품은 1958년 밀라노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그가 1927년 브레라 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작업 활동을 시작했음을 감안하면 ‘탈리(Tagli)’는 작가의 전작 중 꽤 늦은 시기에 발표된 작품으로, 처음 이를 발표했을 당시 폰타나의 나이는 이미 60세에 접어들고 있었다.


“겨우 캔버스에 상처를 내는 사건이었다.” 그해 겨울 파리의 화랑에서 열릴 전시회를 준비하던 중, 수정하려던 그림을 망쳐버린 것에 화가 난 폰타나는 그림을 찢어버리려고 칼로 캔버스 한 가운데를 무자비하게 그은 것이었다. 그것으로 2차원의 평면에 펼쳐진 착시효과로 인한 가상의 공간이 만들어졌고, 기존의 평면 회화가 아닌, 진짜 3차원의 공간을 창조하는 회화가 탄생된 순간 이었다. 이로 인해 폰타나는 인간의 행위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창조적 잠재력을 깨닫게 되었고, 예술의 ‘공간적 창작 방법’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캔버스를 베었다는 것은 명백한 ‘조형상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캔버스 위에서의 물리적인 변화라면 현대의 회화에서 그다지 진귀한 사건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예술의 형식적 범주와 한계를 넘어서려는 폰타나의 강한 의식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예술창조에 대한 시도는 그 의미가 남다름을 전문가들은 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폰타나의 공간주의 작업은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공간의 문제를 20세기 후반부 추상미술 담론의 화두에 올려놓았으며, 그러한 공간에 대한 본성과 개념의 정립에 기여하였다. 나아가 그는 공간주의 개념을 통해 동시대의 흐름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추상과 구상, 추상주의와 리얼리즘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미술 형태를 만들어 냈다.


1968년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공간개념’이라는 총칭 하에 2천여 점의 무수한 작품을 탄생시키며, 끊임없이 공간탐구에 대한 연구와 탐구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의 공간개념은 ‘시공간이 일치 한다’라는 것으로 현대 미술에 새로운 조형의식을 일깨우며 키네틱 아트(Kinetic art), 늘(Null), 제로(Zero)등의 그룹에 큰 영향을 주는 미학으로 발전 하였다. ‘르네상스부터 이어진 전통적 회화를 탈피했다’고 평가받는 폰타나의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등 전 세계 대형 미술관에 소수 소장되어 있다.


루치오 폰타나 탈리 연작 중, Lucio Fontana, Concetto spazile, AttesaⓒAlain R. Truong


BONUS NOTE:

예술을 창작하고 표현하는 2차원의 물리적인 표면이라 여겼던 캔버스도 실제로 4차원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물로 일깨웠다는 점에서, 폰타나는 ‘콜럼버스에 버금가는 새로운 공간의 발견자’라 일컬어지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예술계의 신대륙 발견자인 셈이다.


서구사회의 ‘우주시대(Space-Age)’ 라는 당대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탄생되어진 공간주의라는 폰타나의 신대륙 모험담을 펼쳐본 오늘의 필자는 현재 우리의 사회적 맥락과도 일맥상통하는 그가 주창했던 ‘가상의 공간’, ‘새로운 세계’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주목해 보았다.


코로나19 시대가 바꿔놓은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폰타나의 캔버스 위에 잠시 올려 본다면,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생활방식에서 생겨난 지금 우리사회의 새로운 메가 트렌드로 떠오른 메타버스(Metaverse)는 폰타나의 부키와 탈리의 구멍과 칼로 베어진 캔버스의 상처 속 깊게 생겨난 바로 그 가상의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그야말로 폰타나의 의도대로 시공간을 또 한 번 초월해 버린 것이다.


현실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말 그대로 자신이 아바타로 활동하는 또 하나의 가상현실이다. 메타버스는 현재 우리 산업과 서비스 전반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으며, 코로나 19가 바꿔놓은 비대면 생활은 이러한 현실과 가상세계의 연결을 앞당겼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은 미술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디지털 아트자산이라고 소개한 바 있는 대체 불가능한 NFT(Non-Fungible Token) 를 비롯한 분할 지분의 가치를 FT형태로 증명하는 새로운 예술소비의 형태마저 부추기듯 활성화 되고 있다. FT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대체 불가능한 코인(Non-Fungible Token, NTF)과는 비슷하지만 성질이 다르다. NFT는 특정 사건이나 이미지, 개념 등 대체 불가능한 무형의 자산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대체 불가능한 디지털 토큰 형태로 발행해 증명하는 반면, FT는 매 토큰이 유일성을 가지지 않으며, 각 토큰이 연계된 지분의 가치를 증명하는 형태로 사용된다.


한국 미술시장에서 좀처럼 만나보기 힘들었던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 거래가 지난 달, 아트부산의 서울옥션 홍콩갤러리 SA+ 부스에서 최고가 판매 기록인 11억 원에 거래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현재 루치오 폰타나의 단독 전시회가 국내 최초로 테사(TESSA)의 아트테크 갤러리 #UNTITLED 에서 개최 중이다. 테사는 미술품을 FT 형태로 발행하고, 소유자들이 나눠가진 미술품 원본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며 비대면 시대에 도래한 지금의 우리에게 시공간을 결합하는데 성공한 폰타나의 공간주의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관통하여 많은 생각할 거리를 시사하고 있다. 예술은 창조를 넘어서 예술소비의 형태마저도 동시대의 사회적 맥락과 긴밀하게 연관됨을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자! 이만큼의 사전지식을 쌓았다면 루치오 폰타의 작품은 꼭 실견해 보길 추천한다.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


홍소민 이서갤러리 대표 aya@artcorebrown.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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