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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의 치기(稚氣)와 박찬대·조국의 추임새


입력 2024.08.16 08:08 수정 2024.08.16 08:08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 회장 자신의 공적은 무엇인가?

임정에 집착할 처지는 아닌듯한데

일인들조차 웃게 하는 트집 멈추라

독립 대신 국권 회복 국가복원으로

제79주년 8·15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 이종찬 광복회장이 참석하며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엽합뉴스

광복절 경축식을 정부가 주최·주관하고 대통령이 주도하는 것은 이날의 의미를 국가적으로 되새기면서 독립운동가들의 거룩한 희생정신과 국권 회복의 공적을 기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광복회가 15일 광복절 행사를 따로 열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이를 주도했고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이런 당명을 정한 것으로 봐도 이 사람은 아주 교활하다) 같은 사람들이 추임새를 넣었다.


이 회장의 심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단체의 상징성이나 존립의 의의를 생각하더라도 국가적 기념식에 적극 참여하고 협조하는 게 옳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트집 잡아 광복절 행사를 방해한 것은 원로답지 않은 치기(稚氣)이거나 낯 뜨거운 분풀이(자신이 추천한 인사 두 명이 독립기념관 관장 후보 추천에서 탈락한 데 대해 불쾌해했다는 보도가 있어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회장 자신의 공적은 무엇인가?

그가 광복절 경축식 불참 이유로 내세운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가 독립기념관장으로 뉴라이트 인사 최종 낙점, 두 번째가 대통령실의 ‘건국절 제정 기도’이다. 두 가지 다 허위 정보로 드러났다. 단지 오해했을 뿐인지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심정적으로는 후자에 가깝다고 여겨지지만 단지 추측일 뿐이라서 고집할 수는 없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이유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한다.


김형석 관장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직접 해명했다. 과거 뉴라이트를 이끌었던 신지호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도 14일 채널A에 출연해 “내가 뉴라이트 깃발을 든 사람인데 김형석 이름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라며 “그가 뉴라이트 운동에 관여했던 사실은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아닌 말로 뉴라이트였으면 뭐가 문젠데?).


이쯤 됐으니 일단은 사과하고 볼 일인데 이 회장은 시쳇말로 ‘노빠꾸’ 정신을 발휘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어르신’의 자존심을 살리고자 해서인지 되레 강공으로 나갔다. 용산구 백범 기념관에서 별도로 광복절 기념식을 했다. 그는 이날 기념사에서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쳐 이룬 조국광복의 역사를 아무런 공적도 없이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훼손하느냐는 뜻일 터이다.


그렇게 말할 양이면 우선 자신이 어떤 공적을 세웠기에 ‘피로 쓰인 역사’의 주인 노릇을 자처하는지부터 밝히는 게 순서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것만으로는 광복절 독점의 권리가 될 수 없다. 그 이후 자신이 광복된 조국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그의 전력을 보면 변신의 귀재라는 평판을 들을 만하다.

임정에 집착할 처지는 아닌듯한데

반면 그의 조부 이회영 선생과 그분의 다섯 형제분들은 절개와 지조를 목숨처럼 여기고 실천한 선비였다. 다섯 분은 조국 해방을 못 보고 중국에서 순국했고 다섯째 이시영 선생만이 귀국해서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을 세우고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이 회장은 그분들의 위패를 자손으로서 받들어 모실 정치적 궤적을 그려 보였는지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한다.


이회영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에 의정원 의원으로 참여했으나 임정 초기에 벌어진 창조파, 개조파, 임정고수파의 격렬한 대립에 실망해서 이탈했다. 선생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던 것은 맞지만 임정과의 인연은 극히 짧았다. 그리고 애초부터 정부형태의 독립운동 조직이 아닌 독립운동 총본부 체제를 지지‧주장했다. 그는 임정 이탈 후 아나키스트(anarchist: 무정부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이 회장이 임정에 집착할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성정부 집정관 총재·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대한국민회의(노령) 국무총리로 추대됐고 후에 대한민국임시정부(통합정부) 대통령이 됐던 이승만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뜻인가? 그래서 굳이 독립기념관장에 김구 선생의 손자를 후보로 추천했든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추천한 두 사람 모두 준비가 부족해 3배수 추천도 할 수 없었다고 오영섭 임원추천위원장이 토로했는데, 오히려 오 위원장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그야말로 ‘한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건국절 시비도 그렇다. 대통령실이 그걸 추진한 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고 밝혔지만, 이 회장과 그 주변 세력은 물론 야권까지도 일제히 공격하고 있다. 건국은 ‘국가 건설’이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세워졌다. 그게 바로 건국이다. 고려·조선 등 옛날 왕조시대에는 개국(開國)으로 썼다. 개국이나 건국이나 뜻이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상해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었다고 주장해 마지않았다. 이 회장은 그게 건국은 아니었고 다만 대한민국 원년이었다는 황당한 논리를 펴고 있다.

일인들조차 웃게 하는 트집 멈추라

‘건국절’을 몸서리치듯 싫어하는 까닭은 뭔가? 우리가 건국이라고 해버리면 일제 강점의 범죄성이 없어진다는 건가? 광복절을 건국절로 하면 미군정 3년이 일제의 식민 통치 35년을 가려버린다는 뜻인가? 일제가 우리의 국권을 강탈해서 수십 년간 통치를 한 역사가 명확히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수립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부르든 그게 일제와 연관될 리가 없다. 트집 잡기로 작정했다고 해도 일본인들조차 웃게 할 이런 억지는 쓰지 않는 게 좋겠다.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의 기산일로 잡은 것도 문제다. 우리는 해방 이후 3년간 미군정 치하에 있었다. 미 제24군단장 존 하지 중장이 재조선 미국 육군사령부 군정청(在朝鮮 美國 陸軍司令部 軍政廳: United State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AMGIK)의 사령관으로 남한을 다스렸다. 일제 치하에서는 벗어났으나 미군정 치하에서 또 3년을 보내야 했다. 국권 회복 즉 광복은 미군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이뤄졌다.


지금처럼 ‘45년 광복설’을 수용해 버리면 하지 중장이 우리나라 사람이었고 미군정이 우리 정부였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에도 벌떼처럼 덤벼들어 아니라고 우겨대는 건 어떻게 된 심보인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라던 홍길동의 한을 우리 국민들이 짊어져야 할 줄이야! 제 나라의 생일을 입 밖에 내어 말 못하고 종이에 옮겨 쓰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처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명백히 드러나고 기록된 역사적 사실인데도 읽을 때는 다르게 읽으라고 위협해대는 좌파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박정희 시대의 중앙정보부를 거쳐 전두환 정권에서 정치 실세가 됐다가 김대중 정부 첫 안기부장-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 회장이 누구보다 그 배경을 잘 알 것 같은데 그걸 국민 모두와 공유하면 어떨지 묻고 싶다.


미국의 경우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과 전쟁을 치러 승리한 후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취임함으로써 독립이 완성됐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땅을 딛고 서서 독립선언을 하고 그 땅 위에서 싸웠다. 그 전쟁에서 이겨 그곳에 처음으로 독립국가(그 이전에는 국가가 없었다)를 세웠다.

독립 대신 국권 회복 국가복원으로

우리는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 땅에서 일제에 대항할 군사력이 없었다. 독립지사들은 국경을 넘어 이국에다 독립운동의 터전을 마련했다. 거기에 정부를 세웠지만, 국민도 영토도 없는 임시정부일 수밖에 없었다. 그해 4월 11일 수립된 상해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원년이면 1910년 한일합방 후 그해까지 9년만 일제 식민 통치하에 있었다는 건가? 국민의힘 신 부총장이 이 말을 했다고 또 광복회·야당과 그 주변 세력이 오뉴월 무논에서 악머구리 울듯 비난하고 나서던데 그게 뭐 그렇게 흥분할 일인가.


1948년 7월 17일 헌법제정으로 국권 회복을 선언하고 8월 15일에야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들이 모여 우리 정부를 세웠으니 그게 광복이고 개국 혹은 건국이 아닌가? 그 중심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있으니, 이러다가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으로 이미지가 굳어질까 봐 우려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건국과는 직접 이어 붙이기가 부자연스럽지만, 독립운동의 영웅 김구·이회영 선생을 배경 삼아 훼방 놓고 있는 것 같아 한심하다(차제에 ‘독립’이라는 표현도 ‘국권 회복’이나 ‘국가복원’ 등으로 바꿔야 옳다. 반만년 동안 나라를 이어온 민족이라면서 새삼 ‘독립’이 뭔가).


나라를 세운 날이니 건국일이고, 새 국가의 초대 대통령이니 건국 대통령이다. 아니라고 한들 그 사실이 바뀔 리가 없다.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통합) 수립에 맞춘다고 하더라도 건국 대통령은 이승만이다. 뻔한 일을 가지고 왜 언어 테러를 자행하는지 모르겠다.


차제에 정부도 ‘제79주년 광복절’이라는 식의 인식을 버려야 한다. 올해가 광복 76주년이지 어떻게 79주년인가. 해방 79주년, 광복 76주년으로 하든지 해방 79주년 건국 76주년으로 해야 사실에 부합하고 이치로도 옳다. 백범 기념관에서 열린 광복회의 광복절 기념행사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 대표 직무대행,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 등 야권 인사들이 참석해서 박수를 보탰다고 한다. 거기서 “타도 윤석열”을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는데 정말 잘 돼가는 나라다. 이런 굿판을 벌이면서도 ‘국가’ ‘국민’을 운위하는 소위 명망가들, 부끄러운 줄 좀 아시라!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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