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다 넘겨줬는데 무슨 국적?
민주당 애족주의 약발이 떨어졌나
제헌 헌법 전문의 서명자는 이승만
의원들이 소리 지르면 같이 지르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공격의 진지를 주로 과거의 시점에 구축하고 있다. 논쟁의 욕구가 생기면 잽싸게 과거 속으로 뛰어들어 거기서 애족(이번엔 애국)의 기관총을 난사한다. 화약의 재료는 우리 국민의 반일감정이다. 그걸 가득 채운 탄환을 난사하면 상대의 정치·사회적 생명은 끝난다.
‘국적(國籍)’으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매도해대던 민주당 의원들이 다시 국회 환경노동위 인사청문회(26일)에서 이 논란에 불을 붙였다. 제대로 걸렸다는 표정으로!
민주당 박홍배 의원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게 “2018년 인천의 한 교회에서 ‘1919년은 일제 식민지 시대인데 무슨 나라가 있냐’고 했던데 현재도 같은 견해를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김 후보자가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답하자 박 의원은 “그러면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국적이 일본이냐”고 따졌다. 김 후보자는 “나라를 다 빼앗겨서 일본으로 강제로 다 편입(됐다)”이라고 대답했다. 박 의원이 언성을 높이며 “그럼 우리 부모님, 후보자 부모님 일제 치하 국적이 다 일본이냐” 몰아 세웠다.
김 후보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주인이 다 넘겨줬는데 무슨 국적?
일본이 자국 국민에게는 국적법, 우리 국민에게는 ‘호적법’을 적용했기 때문에 ‘일본 국적’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던데, 이런 식으로 일제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식은 너무 군색하다. 조선·대한제국은 왕조체제였다. 나라는 왕의 가산이었고, 산천도 백성도 모두 왕의 소유였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강압 때문이긴 했지만, 자신의 가산을 몽땅 일제에 넘겨줬다. 조선왕조가 ‘원천무효’라고 주장할 근거가 있었다고 해도 국권을 강탈당한 것은 사실이다. 조선 왕가는 왕가대로, 귀족들은 귀족들대로 일제의 작위를 받아 누리기까지 했다. 일제의 조선 병탄이 현실이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1919년 9월 11일 성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통합정부)는 국권회복운동 지사(광복운동 지사)들의 일제 식민통치 극복을 위한 조직이었다. 국민적 염원의 결집체였지만 명실상부한 정부일 수는 없었다. 국가의 3대 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인데 어느 것 하나 충족되지 못했다. 게다가 대한민국 임시헌법의 제2차 개헌(1925년 4월 7일)을 통해서는 임시정부의 성격과 위상도 바뀌었다.
이 헌법은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 제2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통치함, 제3조 대한민국은 광복운동 중에서 광복운동자가 전 인민을 대(代)함]이라고 규정했다. 국토회복 이전까지는 임시정부가 광복운동자들의 단체임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임시정부가 맞닥뜨린 각박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해방이 미국의 태평양전쟁 승전과 일제의 패망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임시정부의 투쟁으로 쟁취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만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이국땅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풍찬노숙(風餐露宿: 바람을 먹고 이슬에 잠잔다) 동분서주(東奔西走: 사방으로 이리저리 몹시 바쁘게 돌아다니다)하던 광복지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해방의 결정적 공로가 우리 차지로 되기는 어렵다.
민주당 애족주의 약발이 떨어졌나
그 이후로도 3년간 우리는 미군의 군정체제 기간을 겪었어야 했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의 영토 위에서 우리의 국민을 주권자로, 우리 정부가 통치하는 대한민국이 성립될 수 있었다. 이종찬 광복회 회장이 작년에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선언하던데, 그 대한민국이 지금의 대한민국일 수는 없다.
조선왕조는 1910년에 망해버리고 통치권은 일제가 장악했다. 일제는 우리를 자기들의 신민으로 편입시켜 다스렸다. 국적법 호적법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919년 4월 11일 이전은 대한제국 국민이었고, 임정 수립 후는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헌법전문에 충실한 것이 아니냐”고 썼다는데 황당한 억지다. 1910년 8월 29일 이후엔 대한제국이 없었다. 그 후 임시정부가 수립될 때까지의 9년은 어쩌나?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점·통치당했던 때는 없었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정부 아래서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 살았다.”
이렇게 주장한다고 잡아갈 사람이 없다. 일제 순사가 지금 이 시대에 등장해 우리를 체포·고문할 것도 아니잖은가.
애국심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국가주의적 발상이라고 공격해대던 좌파 정치인들이 왜 갑자기 ‘한민족’이 아닌 ‘대한민국’에 이토록 한없는 애정을 쏟는지 그걸 알 수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족주의에 함몰돼 있지 않았던가? 애족주의 약발이 떨어진 탓인가?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정신, 헌법전문을 부정한다고 김 후보자를 공격하던데 독법(讀法)이 너무 순진한 것 같기도 하고 억지스럽게도 들린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제헌 헌법 전문의 서명자는 이승만
제헌 헌법의 전문 앞머리다. 그러므로 1948년의 정부수립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아니라 재건이라는 것인가? “그때의 그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대한민국을 세운다”라는 뜻으로 읽히는데 이건 ‘헌법정신을 모르는 소치’가 되나? 그 헌법전문의 서명자는 이승만이다. 이를 금과옥조로 여긴다면 민주당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역사적 위상과 공적을 인정한다는 뜻인가?
헌법전문은 제5차 개헌(1962.12.26) 때 개정됐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4·19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이 부분은 이른바 유신헌법(1972. 12. 27)에도 이어진다. 8차 개헌(1980. 10. 27)에서 전문의 4·19와 5·16이 삭제됐다. 제9차 개헌(1987. 10. 29)에서 헌법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로 바뀌었다. ‘법통’이라는 표현이 이때 들어갔다. 통치기구와 제도를 잇는다는 게 아니라 ‘정통성’의 근거를 거기에 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상해임시정부가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뭔지 이해가 안 된다. 임시정부 시절에는 광복운동에 다대한 공을 세웠으나 대한민국 건국에는 등을 돌렸던 지사들이 건국 공로자 명단에서 배제되는 것을 막고자 해서인가? 이승만의 공로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무조건 싫다는 뜻인가?
미국이 독립기념일로 삼은 날은 독립선언일(1776년 7월 4일) 일이지 미국 정부가 성립되고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취임한 1789년 4월 30일이 아니라는 것으로 1919년 건국설을 정당화하려는 주장도 계속된다. 그래서 되풀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미국의 13개 주 사람들은 자기들 땅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전쟁을 벌여 영국을 몰아냈다. 자기들의 땅 위에서 국민 모두의 참여하에 독립을 선언하고 세운 국가가 미국이다.
의원들이 소리 지르면 같이 지르라
우리는 일제의 병탄에 항거한 지사들이 타국에 가서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하며 그날에 대비하는 조직을 갖추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명명한 경우다. ‘독립’은 국가의 전 단계에 있는 사회의 인민들이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경우는 광복이나 국권 회복이라 해야 옳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역사 해석권을 독점한 양 그걸 무기로 경쟁 정당뿐만 아니라 자유 우파 국민까지 위협하고 있다. “대중의 눈 밖에 나면 어떤 가혹한 환경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보여 주겠다”라는 투다. 전형적인 군중(민중)주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의 민족사적인 고난과 고통을 서로 쓰다듬기는커녕 잽싸게 역사를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 가르고 자신들이 선과 정의를 독점하는 게 이들과 좌파의 남다른 재주다. 자기들의 논리에 반하는 말을 하면 그 즉시 민족반역자, 친일분자로 매도해버린다. 역사를 가지고는 아무리 장난을 쳐도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없고, 아무리 써먹어도 상대를 비난할 거리는 넘쳐난다는 게 이들의 계산인 듯하다.
그들의 권력 자랑을 일개 시민이 어쩌겠는가. 그렇지만 궁금증 하나는 풀어야 하겠다.
“언제까지 과거 속에서 소리를 지를 건가요? 정치의 목표는 미래에 있는 것 아닌가요?”
아울러 인사청문회에 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청문위원들이 소리를 지르면 같이 지르세요. 김 후보자처럼!”
민주당의 어느 의원이 “톤은 내가 조절합니다. 건방 떨지 마세요”라고 호통을 치던데 그런 ‘시건방’에 맞서는 행위를 제재하는 법은 없다. 민주의회 정치를 망치려고 작정한 듯한 사람에게는, 자기보다 더 기가 세고 목소리가 큰 사람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정의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