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북극항로 개발 시급·중요…지방 소외 문제 해결"
박형준 "대통령 보다 만나기 어려운 李… 산은 이전 답 無"
민주당측 "사전에 북극항로 논의 합의…검토하겠다 답변"
부산측 "지역 현안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였다"
6일 오전 부산항만공사신항사업소 부산항홍보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형준 부산시장이 '함께 웃으며' 등장했다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끝내 '얼굴을 붉히고' 헤어졌다. 이날 만남 주제에 대한 입장차가 컸던 탓이다.
이 대표는 북극항로 개척사업을 중점적으로 논의하러 온 것이라는 입장이었고, 박 시장은 대통령보다 만나기 어려운 이 대표가 부산에 왔으니 부산시 최대 현안인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산업은행 이전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입장이었다.
이날 간담회에 나란히 입장한 두 사람은 "박 시장님이 계시니 확실히 오는 사람이 많네요" "이 대표님이 오셔서 그렇죠"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박 시장과 이 대표의 모두발언이 시작되자마자 주변 공기가 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박 시장은 이 대표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민주당이 지역균형발전과 국가균형발전을 가장 중심적인 당 가치로 삼는 정당으로 안다. 우리 노무현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지역균형발전에 대해 가장 중점적인 정책 삼고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민주당은 국가균형발전 가치에 대해서 조금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우리 당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또 최고위원들 대부분이 수도권 의원들"이라며 "인간은 자기 감각세계를 넘은 문제를 인식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어서 우리나라 수도권 일극 체제 문제는 수도권 계신 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또한 북극항로와 특별법·산은 문제를 각각 '중요한 문제'와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명명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북극항로 문제는 시급한 문제와 중요한 문제 중 중요한 문제에 속한다"며 "그러나 특별법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부산 입장에서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니 민주당이 꼭 화답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북극항로 개척을 논의하기에 앞서 특별법과 산은 문제를 빨리 처리해 달라는 뜻이다.
이에 이 대표는 "박 시장께서 민주당 대표가 인천 살다보니까 부산을 잘 모른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라며 "내가 경기지사일 때도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해선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수도권 일극체제가 가진 문제, 지방소외 문제는 국가 생존의 문제란 말씀을 자주 드렸고 지금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웃으며 말했지만, 박 시장의 발언을 정면 반박하는 것이다.
또한 북극항로 문제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북극항로 문제로 부산을 찾은 것은 지방 소외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해 보기 위한 실천적 활동의 일환"이라며 "북극항로는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다. 해운의 특성이 선점 효과가 큰 영역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해도 사실 늦을 수 있다"고 했다.
공개 회담에서의 이 같은 어색한 분위기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이어졌다. 박 시장은 이 대표와 회동 이후 취재진에게 "이 대표에게 2년 동안 만나자고 요청했고, 대통령 만나기보다 10배는 더 어려웠다"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산은 이전에 대한 이 대표 답을 듣기 위해 왔는데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 "나를 무시했다는 생각을 넘어서서 우리 부산 시민들을 냉대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부산 지역 기자들이 "박 시장이 이렇게 화가 난 것은 처음 본다"고 평을 할 정도였다.
또한 박 시장은 "이 대표는 북극항로 이야기만 하셨고 (민주당) 전재수 의원이 보완 설명을 하려고 하니 말을 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부연했다.
그러자 이후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취재진과 만나 "박 시장이 (비공개 간담회에서)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산은 이전에 대해 말했고 이재명 대표는 검토해보겠다 답변했다"며 "정해진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대화를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이 부산시민을 냉대했다고 한 것과 관련해선 "어느 정치인이 지역 시민과 단체장을 무시하려고 만나겠나"라며 "취지는 알겠지만 과한 표현"이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재성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은 입장문을 내고"사전에 북극항로 개척을 중심으로 논의하기로 합의된 자리였는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유감스럽다"며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북극항로 개척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부산의 금융과 산업발전 방안은 다음 주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 관계자는 "자칫 진실 공방을 다투는 것처럼 보일까 조심스럽지만, 오늘 이 대표가 산은 문제와 특별법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또한 논의 주제가 북극항로 개척은 맞지만, 이 대표가 모처럼 부산에 오셨으니 시급한 부산현안에 대해선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표는 이날 오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를 만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송 신부의 건강상 이유로 일정이 취소됐다고 민주당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