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당한 아이들, 그래도 부모와 함께 살고 싶어해…사법부 양형 선고에 영향
보건복지부 “피해 아동이 부모 처벌 원치 않는 '처벌불원', 진정한 아동 의사 맞나?"
법조계 “가해자인 부모가 보호자라는 이유로 양형 참작?…더욱 중하게 처벌해야”
이른바 '정인이 사건' 등 눈만 뜨면 국민적 공분을 야기하는 아동학대 사건이 매일 매일 반복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여론이 요동칠 때 마다 관련 입법과 양형 논의도 가속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실질적인 처벌이 미약하다는 지적과 함께, 가해자에게 폭넓게 인정되는 감형 사유를 제한해 집행유예가 쉽게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등 제도 손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아동복지법은 2000년 1월 아동학대의 심각성이 우리 사회의 큰 화두가 되면서 전면 개정됐다. 이를 기점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개념이 정립됐으며, 아동보호전문기관 설치,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의무화 등도 규정되고, 기존 형법의 학대죄와 비교할 때 처벌규정도 강화됐다.
이후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아동복지법은 2014년 또 한 번 개정됐다. 이때부터 가해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이 마련됐고, 경찰이 피해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분리하거나 법원은 부모의 친권을 정지시킬 수 있게 됐다. 아동학대 사망 시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 선고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런 법 개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아동학대 건수는 지난 2015년 이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아동학대 건수는 3만 45건으로, 2015년 1만 1715건과 비교해 3배 가량 급증했다. 이 가운데 사건처리절차가 진행되는 건수도 2019년 1만 998건으로 2015년 3564건보다 7434건 늘었다.
법조계는 수 차례 법 개정의 노력에도 아동학대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을 꼽았다.
실제로 2019년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아동학대범죄 건수는 총 210건이지만 이 중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33건으로 전체 사건의 15.7%에 불과했다. 반면 집행유예는 96건(45.7%)으로 실형보다 약 3배나 더 많이 선고됐다. 2016년과 2017년, 2018년도에도 아동학대 사건의 1심 처리 건수 중 집행유예가 차지하는 비율은 연도별 43.2%, 36.3%, 41.7%였다.
그러나 서울에 근무하고 있는 한 부장 판사는 "부모가 아무리 때려도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심리가 강하다"며 "아이들의 유일한 보호자인 부모를 처벌했을 경우 과연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도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 사회 현실에서 아이들을 각종 보육시설에 보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형법 분야 전문가들은 21일 '아동학대범죄와 양형'을 주제로 한 대법원 양형연구회 세미나에서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대폭 손질하고 재판부의 선고 형량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박은정 보건복지부 아동학대대응과 과장은 "우리 사회의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 대상의 범죄행위를 더욱 엄중히 처벌하고자 하는 아동학대처벌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보호자로부터 아동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에는 보다 가중해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과장은 특히, 학대 당한 아동이 부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해도 이를 감형 요소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동의 처벌불원이 진정한 아동의 의사인지도 확정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집행유예 등을 결정하는 것이 아동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것인지도 신중히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해자인 부모가 피해 아동의 보호자라는 이유 만으로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쉽게 결정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아동을 보호해야 할 부모가 아동학대 가해자라면 더욱 중하게 처벌 받아야 함에도 오히려 유리한 양형 참작 사유로 작용해온 것은 문제"라며 "보호자가 가해자인 범죄도 가중요소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의 범죄나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는 양형 기준에 가중요소로 반영해 더욱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같은 범죄는 현재,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 중상해·치사죄 양형기준에는 가중요소로 반영돼 있지만, 아동복지법상 학대·방임 등 나머지 아동 범죄에는 가중요소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박현주 서울동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부장검사는 "미취학 아동 범죄는 피해가 쉽게 드러나지 않아 발견이 어렵고 상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특별가중 요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