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발신제한’(감독 김창주, 제작 TPS컴퍼니·CJ ENM, 배급 CJ ENM)의 관람평을 보면 단독주연 조우진에 대한 호평 일색이다.
“조우진 연기 미쳤다”, “조우진의 연기는 일품” “조우진의 연기가 영화를 살렸다” “조우진 연기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연기력은 조우진님 정말 최고!” “조우진의 조우진에 의한 조우진을 위한 영화” 등등.
그런데 왜 100만 관객 문턱을 넘지 못한 걸까.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먼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거센 기세가 계속되는 중에 개봉을 결정할 때부터 흥행력에는 제한을 안고 시작했다. 평소 천만 관객에 육박했을 영화가 200만 고지를 넘는 것도 만만찮은 상황에서 극장 개봉을 선택했다.
둘째, 위중한 상황 속 간만에 극장 나들이를 할 때는 완성도와 재미가 확실히 예상되는 영화를 택하는 경향이 짙다 보니 거액의 제작비가 투여된 할리우드 영화, 이미 주인공 캐릭터를 알고 있거나 선호도가 형성돼 있는 영화를 선택한다. 동명의 소설과 애니메에션, 영화 ‘101마리 달마시안의 개’를 통해 익히 알려진 ‘흑반백반’의 악녀를 주인공으로 한 ‘크루엘라’, 전 지구적 사랑을 받아온 어벤져스 군단의 홍일점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블랙위도우’, ‘발신제한’은 두 영화 사이에서, 또 나란히 관객을 기다려야 했다.
셋째는 내부 요인이다. 간만에 심장 쫄깃한 영화를 봤다며 긴장감 느끼며 재미있게 봤다는 호평이 많았지만, 스토리 전개에 아쉬움을 표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전반은 ‘분노의 질주’, 후반은 안전운전”이라는 관람평에서 확인되듯, 중반까지는 ‘차에서 내리면 터진다’는 흥미로운 설정과 긴박감 넘치는 자동차 추격전으로 속도감을 높였지만 차가 해운대 앞에 멈춰 선 뒤부터는 긴장이 이완된 게 사실이고, 다시 달렸으나 관객의 엔진을 폭발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처음 영화를 볼 때, 감독에게 무슨 복안이 있기에 이렇게 일찌감치 차를 세우는 것인가 우려됐다. 다친 아이를 내리는 인본주의는 미덕이고, 딸아이가 앞자리로 오는 장면은 감동적이고, 범인과의 대면은 일순간 긴장을 형성한 것도 사실이지만 좀 더 빨리 시동을 다시 걸어야 했다. 스토리 전개 발 아쉬운 후기를 보고 극장에 간 관객 중에도 “주변 평보다 재미있었다” “재미로만 영화를 보는데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영화를 봤다”고 칭찬의 소리가 나왔다. 그 배경에는 배우들이 있다.
“스토리보다는 조우진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스토리는 뻔해요. 조우진 배우 보는 재미는 있어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데 시나리오가 조금 아쉽네요”, “하나하나 예상되는 전개였어요. 연기 덕분에 볼 만했습니다” 등에서 확인된다.
아쉬움을 표하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호평의 목소리가 크고, 그래서 관객 별점도 10점 만점에 8점이다. 다만, 배우 조우진의 첫 단독주연 작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200만 관객의 위업을 이루기를 바랐던 팬으로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틈바구니에서 못해도 100만명 이상의 사랑을 받으리라 예상했던 기자로서는 92만이라는 성적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함에도 한 가지의 성과는 확실하다. 배우 조우진이 한 작품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로 명실공히 자리 잡았음을 티켓을 사는 관객과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는 평단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조우진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은 듣기 어렵다.
관객 평 중에 가장 많은 표현이 “조우진 하드캐리”이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배태됐고 연출 과정에서 보완되지 못한 스토리 전개의 아쉬움, 지창욱과 진경 정도를 제외한 배우들의 연기 공백 등 악조건 속에서도 조우진이 열심히 영화를 끌고 간 덕에 볼 만한 작품이 됐다는 의견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우진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영화”라는 평에도 비슷한 평가가 담겼다.
산으로 갈 수 있는 영화를 대로로 잡아끌 만큼의 힘, 그 대단한 연기력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2년 전 인터뷰에서 답을 찾아본다.
영화 ‘돈’으로 만났을 당시 조우진은 실감 나는 인물표현의 이유를 15년의 무명, 먹고살기 위해 했던 다양한 경제활동(아르바이트) 가운데 만난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교감 그리고 기억창고에의 저장을 얘기했다.
마치 15년 무명 생활 동안 ‘조우진 인물대사전’이 집필됐고, 그의 뇌와 가슴에 저장되고 새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품마다, 새로운 인물을 만날 때마다 사전에서 어휘를 찾듯 적합한 인물을 찾아 이번에 맡은 캐릭터의 말투나 표정, 몸짓과 성격의 실마리를 찾는구나 싶었다.
“15년 무명 생활로 의도치 않게 쌓여 왔던 걸 지금 쓰는 것 같습니다. 감정의 표현, 생각의 표현…들. 표현하지 않고 눌러 담아 왔던 성격 덕에, 이제 그걸 끄집어 펼쳐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설퍼서 감추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이걸 써먹겠지 하며 흘러오다 보니 그게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이터가 됐습니다.”
“이 직업으로 살아가자면 경제활동을 다양하게 해야 했습니다. 집세 내고 밥값 벌어야 하다 보면 (연극) 무대 일만 해서는 힘들거든요.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지요. ‘자기 일’(배우로서의 본업) 하지 않을 때, 하고 싶은 일 못 할 때가 제일 괴로워요. 하지만 버텨내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게 나중에는, 좋은 작품과 인물을 만났을 때는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서른 넘으면서부터 그런 생각, 한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쌓여 온 것을 활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어떤 아르바이트요? 음, 노래방, 소주방, 비디오방 일단 방은 다 돌고. 레코드점 알바도 하고 물류창고 가서 일했습니다. 학비를 벌어야 해서 군대를 방위산업체로 간 덕에 공장 생활도 하고. 어쩌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게 됐습니다. 제3 자는 애처롭게 볼 수 있는데 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일하다 간혹 찾아오는 ‘성취감’도 연기하면서 다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했고요. 아, 연극 포스터요? 포스터 붙이는 거, 밥 설거지 청소 다 했지요, 별건가요. 지금도 그렇게 하는 분들 많잖아요.”
조우진의 말을 곁에서 들어보면 조선시대 선비 같다. 바빠도 느리게 걷듯, 뜨거운 얘기를 느릿느릿 별일 아닌 듯 말한다. 표현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는 성격, 짧지 않은 무명고 속에서 기다리고 관조하는 태도가 몸에 밴 듯이 보였다.
“저 자신을 찾고자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한 번 사는데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나’를 발견하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어요. 그것을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연기자라는 직업이더라고요, 그게 또 제게 세상을 향한 끝없는 동경을 품게 만들었고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는 어떤 인간이고,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요즘엔 ‘어른으로서’의 역할도 고민하게 됐는데요. 제게 주어진 몫, 포지션에 대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나를 끊임없이 생각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건강했을 때도 있고 건강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지만 투지라고 해야 할까요.”
“스무 살쯤 되면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뭐 먹고 사나, 이 세상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게 됐고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동경을 목표, 포부로 삼게 됐습니다. 성격이 외향적이거나 활발하지 않았어요. 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그게 사람의 본연의 자세가 아닐까, 사람이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 자신을 찾아야 했습니다. 무엇을 업으로 먹고살고 이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인가,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이어야 하는데 그 안에서 나를 찾아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연기자를 택했습니다. 밖의 거를 가져와 안에 꾹 담아 연기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자기 안의 거를 끄집어내는 작업이라 자기 발견이 됩니다.”
2년 4개월 전, 조우진의 말을 들으며 감탄하고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러이러한 걸 잘해서 배우가,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라는 답이 가장 평범하고 흔하다. 그런데 조우진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 싶었고, 사람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하다 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게 본연의 자세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찾은 해답과 방법이 배우로서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이었단다.
자기 안의 것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연기이기에 자기 발견이 되고, 배우란 혼자 할 수 없고 함께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더불어 살기에 적합한 ‘먹고사는 방법’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니! 게다가 외향적 성격도 아닌 사람이 인생 해법으로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니, 모든 게 생경하고 놀라웠다. 우리가 모두 적어도 인생에 관해선 ‘개똥 철학자’지만, 조우진을 보노라니 겸허한 철학자와 마주 앉은 느낌이었다. 이 배우는 정말 잘되겠구나,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배우의 길이니 잘될 수밖에 없구나, 감탄했다.
그릇의 깊이와 크기가 이 정도인 조우진을 담기에 영화 ‘발신제한’이 작았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도 조우진은 충분히 발산했고, 우리는 그의 명연기를 흠뻑 감상했지만, 다음을 기다리는 이유다. 안팎으로 ‘안성맞춤’일 때 관객인 우리의 만족도는 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