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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이슈] '노동자 사각지대'를 거울처럼 비추는 드라마·영화…인식 개선 유도


입력 2021.08.19 13:00 수정 2021.08.19 10:59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오피스물, '미생' 흥행 이후 연이어 등장

'미치지 않고서야' 중년 직장인들의 애환

'좋좋소' 중소기업 직원의 사각지대 비춰

질 낮은 노동 환경과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의 사각지대를 다루는 영화와 드라마들이 꾸준히 대중과 만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사회에 드리워진 현시대 문제를 흥미롭게 다루며 관심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거울 혹은 스피커와 같은 주효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드라마에서는 오피스물이란 장르 아래 노동자 현실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MBC '미치지 않고서야'와 웹드라마 '좋좋소'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미치지 않고서야'는 격변하는 직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직장인들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다. 퇴사부터 이직, 해고까지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춘이 아닌 내리막 길 앞에 있는 중년 직장인들이 주인공이다.


회사 전성기를 이끈 에이스였지만 퇴물 취급받으며 자신의 경력과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발령받는 반석(정재영 분),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고 싶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번번이 밀려 불안한 자영(문소리 분)을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각자 방식으로 버텨온 어른들이지만 자꾸만 구석에 내몰리는 모습은 중년 직장인들의 애환을 비춘다.


이는 현재 정년 연장 문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통계청 2021년 5월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 경험이 있는 55~64세까지 고령층 인구가 가장 오래된 일을 그만둔 평균 연령은 49.3세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대부터 50대까지 직장인 739명을 대상으로 예상 정년을 주제로 조사한 조사 결과에서 직장에서 가장 먼저 이루고 싶은 목표는 정년 보장이 52%로 1위에 올랐다. '미치지 않고서야'는 자신만의 생존 방식으로 험난한 사회생활을 헤쳐나가는 중년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상을 반영했다.


'좋좋소'는 29살 사회초년생 조충범(남현우 분)이 중소기업 정승 네트워크에 취업한 뒤 경험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그린 웹드라마다. 극 중 회사 임원진들이 최저임금 수준인 신입사원 조충범의 연봉을 임의로 깎는가 하면, 정품 인증이 되지 않는 사무용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사용한다. 사장은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회사의 정체성을 하루아침에 바꾸려 하고, 직원들은 탕비실에서 믹스 커피나 간식을 훔치다 걸린다. '좋좋소'는 척박한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현실을 코믹한 상황 설정과 디테일한 현실 고증으로 녹여냈다.


'좋좋소'는 2014년 tvN '미생'을 연상시킨다. '좋좋소'를 연출한 빠니보틀 PD도 '미생'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대는 중소기업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어 더 현실적이라는 이유다. 이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중소기업의 공기를 웃음과 한숨으로 버무렸고 '좋좋소'는 개봉 2주 만에 100만 조회 수를 달성했고, 왓챠로부터 투자 받아 확장판으로 만들어졌다.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들이 적극적으로 콘텐츠로 활용된 시점은 2014년 '미생'의 흥행 이후다. '미생'은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내세웠고 손에 닿지 않는 판타지는 제거했다. 보통 로맨스로 연결되던 오피스물과 달랐고 현실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은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이후 JTBC '송곳',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자제발광 오피스', KBS2 '김과장', tvN '청일전자 미쓰리'가 '미생'의 뒤를 이었다.


영화는 독립영화에서 웃음기를 제거해 벼랑 끝에 있는 심정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얼굴을 조금 더 클로즈업한다. 신수원 감독의 '젊은이의 양지'는 카드 연체금을 받으러 갔다가 사라진 후 변사체로 발견된 실습생으로부터 매일 의문의 단서를 받게 되는 채권추심 콜센터 계약직 센터장의 이야기를 통해 취업, 감정노동, 정규직, 실습생 등 사회의 현안을 날카롭게 바라봤다. 성과에만 집착해 직장인들에게 노동을 채근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이 바람직한 어른의 부재를 꼬집었다.


지난 1월 개봉한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실제 지방직으로 파견 발령을 받은 뒤 온갖 치욕을 겪은 사무직 중년 여성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돼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다. 회사는 정은(유다인 분)에게 권고 사진을 권유하지만 거부하자 지방으로 파견직을 보낸다. 파견된 사무실에 정은의 책상은 없다. 회사가 퇴직을 종용하는 행동이지만 정은이 버텨낸다. 직장 내 성별, 왕따 등 정은을 몰아내기 위한 여정은 뉴스에서 자주 문제가 되던 현실과 닮아있다.


19일 개봉을 앞둔 '언더그라운드'는 가까이 있지만 깊이 들여다본 적 없는 지하철의 세계와 분주하게 움직이며 지하철을 운행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땅 밑의 노선도를 그려내는 다큐멘터리다. 김정근 감독은 지하철 운행을 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질 낮은 업무 환경, 무인화 등의 문제를 실제 노동자들의 인터뷰로 담아냈다. 이와 함께 부산공고 취업특성화반 학생들이 비정규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솔직하게 보여주며 노동 현장 안에 공고히 자리 잡은 서열화를 드러냈다.


이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노동자의 사각지대를 구석구석 다룬 콘텐츠는 관객들의 인식 개선과 환기를 유도하며 미디어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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