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세 이어 전기요금 올라…정부 인상 기조 지속될 듯
기업 부담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충격 완화 정책 절실
바람 잘 날이 없다. 요즘 정유·석화업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낸 이들은 올해 간신히 숨통이 트이자마자 '환경세 폭탄'을 맞아야 했다.
자동차 경유에 포함되는 바이오디젤 의무 비율이 높아지면서 2030년까지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부담금이 수 천억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올 가을부터는 수십억원 오른 전기요금 청구서도 받게 된다. 일어서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이들 기업을 정부가 아랑곳하지 않고 각종 '세부담'으로 옥죄는 모습이다.
앞서 정부와 한국전력은 4분기(10~12월) 최종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키로와트아워)당 전분기 보다 3.0원 상승한 0.0원으로 책정했다.
전기요금이 kWh당 3원 인상되면서, 가계와 기업 모두 부담이 늘었다. 4인 가구 주택용 월평균 사용(350kWh)액 기준 전기요금은 5만5000원에서 1050원 오른다. 산업·일반용 월평균 사용(9240kWh) 기준 전기요금도 119만원에서 2만8000원 가량 오를 전망이다.
인상분이 낮은 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인상이 올해로 '끝'이 아니라 올해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 문제다. 누적 실적연료비 상승으로 요금인상 요인 10.8원이 남아있는데다, 최근까지도 전기 생산에 들어가는 석탄, 유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를수록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업종은 많게는 수 천억원의 비용 부담을 져야 한다.
삼성전자가 한 해 사용하는 전기료는 약 2조원이며, 현대제철은 1조원에 달한다. 전기요금이 1%만 올라도 수 백억원의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정유사들도 매년 수 천억원의 전기료를 부담해오고 있다.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사업장을 풀가동하면 할수록 전기료가 발목을 잡는다.
석유화학업체들은 사업장 관리·운영 뿐 아니라 제품 제조에도 전기를 쓰고 있어 부담이 더 크다. 창호, 바닥재 등 건축 내외장재로 쓰이는 PVC(폴리염화비닐)의 경우, 소금물을 전기 분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염소를 주 원료로 사용한다. PVC 생산과정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0~70% 정도로 높다.
더욱이 석유화학제품은 제품 원가의 70~80%를 원자재가 차지하고 있어 전기료처럼 원가 인상요인이 생기면 최종 제품 가격도 그만큼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전기요금 뿐 아니라 물가 인상분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세부담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가 '탄소중립'을 내걸고 유례 없는 속도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스케줄 단축 및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전기요금을 필두로 각종 '환경세'를 떠안기는 그림이 그려진다.
정유·석화업계는 정부의 탈탄소 패러다임 변화에 발 맞춰 친환경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에 매년 수 백억원씩 투입하고 있다.수소, 연료전지, 리사이클링 등 다양한 신사업 분야에도 진출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정부는 이념적 정책추진에만 골몰해 기업들에게 혹독한 변화만 강요할 게 아니라 숨고르기를 하며 따라올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줘야 한다.
전기요금 인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과 함께 전기요금을 필두로 각종 '세금 폭탄'이 쏟아지지 않도록 기업들의 목소리에 좀 더 세심하게 귀 기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