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미사일 두고 韓美 '불협화음'
국제규범 벗어나는 北 군사행동
묵인하면 핵개발까지 '정당화'될 수도
북한이 동해상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밝힌 가운데 '완전히 조율된 대북정책'을 펴기로 했던 한국과 미국이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북한의 최근 군사행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향후 대북 협상력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성과에 집착하기보단 국익에 초점을 맞춰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2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과학원은 9월 28일 오전 자강도 용림군 도양리에서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당 중앙의 특별한 관심 속에 최중대 사업으로 간주되어온 이 무기체계 개발은 나라의 자립적인 첨단 국방과학 기술력을 비상히 높이고 우리 국가의 자위적 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데서 커다란 전략적 의의를 가진다"고 전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강조해온 '국방력 강화 차원의 무기개발'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북한은 대화재개 '조건'으로 자신들의 군사행보를 '도발'로 규정하지 말라는 '이중기준 철회'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국제사회 규범을 어기고 핵개발을 강행한 북한의 군비증강과 비확산 모범국인 한국의 신무기 시험을 동일선상에 놓아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 군사행동과 관련한 한미 양국의 평가에 온도차가 감지된다는 점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에 올인하고 있는 문 정부는 도발 평가를 기어이 삼가고 있지만, 원칙론을 견지해온 조 바이든 정부는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규탄 메시지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우리 정부가 매우 신속하고 분명하게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며 "우리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 미사일 '사거리'에 주목해 단거리 미사일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 기존 청와대·정부 입장을 재확인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이 개발 초기 단계로 분석된다며 군사도발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합참은 "실전배치까지 상당기간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 한미연합자산으로 탐지와 요격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미사일 '속성'을 문제 삼으며 북한의 군사행동을 사실상 도발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킨 모이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 등은 이날 각각 별도 자리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국무부 인사들은 북한 미사일이 "북한의 이웃 나라와 국제사회에 위협이 된다"며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한다"고도 했다.
한미 불협화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문 정부는 양국 협의채널을 적극 가동하며 '수습'에 나섰다. 실제로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이기도 한 성 김 대북특별대표와 대면협의를 갖기 위해 출국했다.
노 본부장은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나갈지 (미국 측과) 머리를 맞대고 심도 있는 논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선을 넘나드는 북한 군사행동을 도발로 규정하지 않을 경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도발 표현은 우리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라며 "도발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북한의 행위가 '불법행위'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역으로 북한이 이런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유엔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북한 군사행동을 눈감아줄 경우, 북한이 국제사회 규범을 어기고 밀어붙여 온 핵개발 역시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여지가 커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전제한 핵군축 협상을 벌이기 위해 이중기준 철회를 요구하며 각종 신무기를 선보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 교수는 북한이 공개한 극초음속 미사일과 관련해 "북한이 한국·일본 등에 대한 핵공격 능력을 이미 보유한 상황에서 첨단 무기체계를 지속 개발하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며 북한이 향후 협상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다양한 첨단 무기체계를 내세워 핵군축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