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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최희서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국경을 초월하는 영화의 메시지"


입력 2021.11.08 08:14 수정 2021.11.08 08:15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11월 SBS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로 안방극장 복귀

12월 단편 연출작 '반디', 왓챠서 공개


최희서는 이시이 유야 감독의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을 통해 배우로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일본의 젊은 거장이라 불리는 이시이 유야 감독, 그가 배우로서 동경해왔던 오다리기 조, 그리고 이케마츠 소스케와 함께했다. 일본인 가족과 한국인 가족이 여행길에 만나 말이 통하지 않지만 보편적인 감정으로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꼈다.


자신이 맡은 솔의 역할에도 공감을 느꼈다. 슬럼프나 무명 시절에 겪었던 감정을 솔을 통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 엔터테인먼트

일본어가 능숙한 최희서는 배우로 연기를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번역에 참여하고 일본과 한국 스태프, 배우 사이에서 징검다리가 역할을 하며 함께 영화를 완성해나갔다.


최희서는 처음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번역된 시나리오를 받았다. 이어 바로 일본어로 쓰인 시나리오를 요구했다. 감독의 의도와 문체를 더 잘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사 안에서도 번역 하나에 따라 감정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역시나 일본어로 쓰인 오리지널 대본은 작은 뉘앙스까지 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본을 읽고 이시이 유야 감독님의 따스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일본어 원문이 더 좋더라고요. 비단 일본어 뿐만 아니라 모든 시나리오는 모국어가 제일 자연스럽고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께 제가 한 번 더 번역을 하겠다고 요청을 했어요. 번역가가 정확하게 잘 살릴 수 있지만 배우 본인이 한다면 감정을 더 살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죠. 감독님의 관점과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번역을 했어요. 감독님의 시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내리꽂는 대사들이 특징이었는데 이 부분은 일부러 그대로 번역했어요."


이시이 유야 감독은 '행복한 사전'으로 일본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한 8개 부문을 휩쓸고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로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 21관왕을 휩쓴 인물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이시이 유야 감독의 작업 방식은 최희서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감독님을 '일본의 이준익 감독'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대단한 열정과 실행력이 있죠. 첫 미팅 때부터 느꼈어요. 감독님의 작업 스타일이 굉장히 독특해요. 촬영을 하면서 현장에 모니터를 안 둬요. 카메라 옆에서 연기를 보고 눈으로 확인되면 컷을 해주시죠. 카메라 감독님의 뷰 파인더도 안 보시더라고요. 보통의 경우처럼 제 연기를 자가진단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연극을 하듯이 호흡을 그대로 가져가서 연기했죠. 오히려 제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처음이었기 때문에 재미있었어요."


일본 배우들과는 서로에게 배우에 대한 팬심을 갖고 다가갔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단다. 카메라 안에서 국경, 문화의 차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연기에 대해 서로 의견을 공유했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도 재미있는 신을 찍기 위해 노력했어요. 일본 배우들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화장실도 안 가고 휴대전화도 보지 않더라고요. 자기 현장이 아니어도요. 그걸 보고 저도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사람 엔터테인먼트

솔은 과거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지만 현재는 행사장을 전전하는 무명가수다. 꿈을 위해 달려왔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마다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그만 둘 수는 없다. 오빠 정우(김민재 분)와 동생 봄(김예은 분)이 있기 때문이다. 데뷔 12년 차지만 무명 시기가 더 길었던 최희서는 솔의 외롭지만 담담한 동행에 기꺼이 동참한다.


"솔의 상황은 어떤 배우라도 공감할 것 같아요. 저도 주목받지 못했던 시기도 걸었고, 주목받아도 작품이 잘 안되면 기회가 적어질 수밖에 없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고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공감하기 쉬웠죠.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언제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부담감이 있죠."


이시이 유야 감독이 최희서에게 솔 역할을 제안한 이유는 강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감독님은 제가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아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요. 그런 면이 솔과 잘 어울릴 거라고 하셨죠. 캐스팅됐을 때 머리가 길었는데 원하는 헤어스타일이 있으니 해줄 수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배우로서 당연히 받아들였죠. 숏컷도 아닌 단발도 아닌 헤어스타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헤어스타일은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면을 또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요."


솔의 직업이 가수기 때문에 최희서도 노래를 직접 부르기로 했다. 스스로 노래를 잘 하는 편이 아니라는 최희서는 빅마마 신연아에게 맹훈련을 받고 임했다.


"이 작품은 후시 녹음으로 메꿀 수 없어서 라이브로 잘해야 한단 생각이 있었어요. 녹음도 5시간이나 걸렸어요. 가수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어요. 정말 노래를 녹음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웃음)"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의 원제는 '아시아의 천사'(アジアの 天使)다. 영화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지만, 한국의 정서를 반영해 극중 대사로 제목이 수정됐다.


"일본에서는 아시아라는 단어가 동양을 칭하는 보편적인 단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역사, 교양 등이 생각나면서 영화의 메시지가 피부로 와닿지 않을 것 같단 의견이 나왔어요. 천사도 종교적으로 볼 수도 있고 단어의 합이 주는 느낌이 확실치 않았죠. 저도 거기에 동의했고요. 이시이 유야 감독님은 의아해하더라고요. 직역하면 똑같은데 뉘앙스가 다르다며 신기해하셨어요."


영화 속에는 솔이 절망에 빠졌을 때, 진짜 '천사'가 등장한다. 최희서가 본 천사는 솔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감독님께서는 부모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았던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며 대본을 쓰셨대요. 지금 어린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천사로 보일 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에게 천사라는 모티브는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희망, 두 번째는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잡아주는 꿈과 희망으로 보였어요.


최희서는 왓챠 프로젝트인 '언프레임드'를 통해 '반디'를 연출했다. 이 시나리오 역시 이시이 유야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고.


"앞서 말씀드린 천사의 의미가 제가 연출한 '반디'에도 녹아있어요. 지금은 같이 있지 않지만 그 사람의 감정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힘이 되는 이야기인데, 이시이 유야 감독님께 영향을 받았어요. 그래서 크레딧에도 이름을 올렸어요. 감독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전체 리딩을 충무로에서 진행한 날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날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4관왕을 탔다는 소식을 일본, 한국 스태프들과 함께 들으며 영화는 국경을 넘는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한국 작품에게 새 지평이 열린 날, 새로운 작품을, 그것도 일본 감독, 배우들과 했다는 점이 운명적으로 느껴졌어요. 콘텐츠나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됐고, 사람들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거의 다 볼 수 있게 됐잖아요. 제가 선보이는 작품이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잖아요. 예전에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설레기도 하고 정말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배우란 것도 느꼈어요."


최희서는 언제든 준비가 돼 있다며 지금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도전하기로 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공백기가 있었지만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에 이어 11월 SBS 새 금토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12월 왓챠 프로젝트 연출작 '반디'를 통해 또 한 번 변신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19가 악화되며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우울감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의도치 않게 제가 준비한 작품들을 올해 선물 꾸러미처럼 열어볼 수 있게 됐어요. 감사한 연말이 될 것 같아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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