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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영화 뷰] ‘사건→연대’, 영화 속 디지털 성범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입력 2021.11.08 14:01 수정 2021.11.08 09:55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까만점' 이영음 감독, 퍼플레이 플랫폼, 여성인권단체와 ‘함께 프로젝트’ 진행

2019년 5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아동·청소년 8명과 성인 17명의 성착취 영상물 등을 제작하고 영리 목적으로 텔레그램을 통해 판매·배포한 조주빈의 혐의가 디지털 성범죄에 무감하던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고, 국회는 일명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권고 형량을 높였다. 그리고 경찰청은 2020년 3월부터 12월까지 약 9개월간 디지털성범죄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운영해 총 2807건 단속, 3575명 검거, 245명을 구속시켰다.


ⓒ위쪽부터 '까만점', '찌르개', K대_ OO 닮음_93년생. avi' 스틸컷

디지털 성범죄를 향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분노하며 사회도 조금씩 반응하고 있다. 사회의 이슈나 시대상을 반영하는 영화계는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는 방식을 피해자의 고통을 나열하거나 수동적인 요소로 중심이었다면 범죄의 대상이 된 이후,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영음 감독의 '까만점'은 불법 촬영물이 유출된 3명의 여대생 이야기다. 하지만 이영음 감독은 이들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고소 준비로 분노를 했다가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심각한 와중에도 서로 농담을 건네는 세 친구들의 보편적인 일상 버디 무디로 다가갔다.


이 영화의 가장 미덕은 피해자에게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범죄와 달리 성범죄에 관련해서는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시선들이 있다. 가령 평소의 행동거지나 성범죄를 당한 후 괴로워해야 한다는 프레임이다. '까만점' 속 인물들은 범죄의 피해자가 됐지만 자신들의 소소한 일상을 지속해나간다. 또 대화를 나누고 연대해나가며 서로를 보듬는다.


'까만점'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불법 촬영된 사진이나 영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각화하는 동시에 그 부분에 사로잡힐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해 이영음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제시켰다.


임소라 감독의 '찌르개'는 현정이 화장실에서 자신의 모습이 불법 촬영돼 유포된 것을 알고, 다녔던 화장실 리스트를 만들어 범인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화장실에서 잡은 범인은 범죄의 심각성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한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생으로부터 범인을 유인한 현정은 그들을 향해 다가가며 직접 단죄를 시도한다.


수사기관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혼자만의 힘으로 피해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현정의 모습은 불법 촬영물의 피해자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임소라 감독은 그런 상황에서도 현정이 다른 여성을 위해 손을 내미는 장면으로 연대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찌르개'는 불법 촬영물을 쉽게 사고파는 현실을 강조하는 동시에 디지털 성범죄자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던진다.


'K대_ OO 닮음_93년생. avi'은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제목부터가 불법 촬영물에 대한 역설로 시작한다. 오프닝은 남자들의 음담패설이다. 불법영상물을 봤는데 목에 점 세 개 있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들의 음담패설과 함께 카메라는 목에 점 세 개가 있는 여자들을 비춘다. 목에 점 세 개는 특징이 아닌 보편화를 말한다. 누구라도 디지털 성범죄의 주인공인 혜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혜원은 남자친구가 유포한 영상물로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말만 들어도 공포에 떨어야 한다. 남자친구를 고소했지만, 남자친구는 "네가 나 안 도와주면 나는 자살해야 할 수도 있다"라는 말로 책임을 혜원이에게 돌린다. 하지만 혜원은 새로운 일자리를 고하고, 자신이 나온 영상물을 찾아 신고하고, 일상을 되찾으려 한다.


마지막 장면은 혜원이 화장실에서 불법 카메라를 발견해 눈썹칼로 망가뜨리며 끝이 난다. 더 이상 자신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바람을 결연한 눈빛이 잔상에 남는다.


영화계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N번방으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 전부터 하나의 사건보다는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인식하며 천천히 그리고 끈기 있게 변화하고 있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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