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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먼 부산을 두고 초라하다느니 재미없다느니 하는가


입력 2021.11.15 08:01 수정 2021.11.15 07:59        데스크 (desk@dailian.co.kr)

말실수, 교만과 무례에서 나온다

진솔한 사과 없이 되레 야당 공격

부인 낙상을 순애보로 엮는 재주

지난 12일 오전 국회 본관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를 출발하기에 앞서 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작년 제21대 총선을 목전에 두었던 4월 6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합동 선거대책위원회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부산에 올 때마다 매번 느끼는데 왜 교통체증이 많을까, 도시가 왜 이렇게 초라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부산이 발전을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는 말을 하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부산 사람들로서는 기분이 몹시 상할 법했다.


‘올 때마다’ 그렇게 느꼈다면 그간에 부산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말해줬어야 했다. (아마도 그런 적이 없었을 테니) 그는 립서비스를 했을 뿐이겠는데 그 표현이 또 부산 시민들의 복장을 긁어놨다. “초라하다니?” “부산이 어때서?” “초라한 게 뭔데?” 그런 반발이 안 쏟아졌다면 그게 이상할 터였다.

말실수, 교만과 무례에서 나온다

부산에 10여년 살았던 추억으로 말한다면 거기만큼 멋있고 정감 넘치는 곳이 달리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도시가 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돼 있어서 바로 뒤에 산, 바로 앞에 바다다. 그뿐이랴. 700리 낙동강이 옆구리를 끼고 흐른다. 아침저녁으로 바다를 보며 출퇴근할 수 있는 사람이 국민의 몇 %나 될까. 그런 부산을 이 전 대표는 아주 가엽다는 듯 ‘초라하다’고 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


그 TV광고 카피를 흉내 내서 말 갚음을 하자면 이렇다.


“당신들이 부산의 멋을 알아?”


물론 집권당 대표로서 대한민국 제2도시 부산의 상대적 낙후를 걱정합네 해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걸 이해한다고 해도 표현의 ‘무례’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말이 예사로 나온 것은 교만 때문이었을 듯하다. 자신감이 넘쳐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고 여겼을 수 있다.


“내가 부산을 얼마나 생각한다고. 그러니 우리는 무간(無間: 서로 허물없이 가깝다)한 사이이지. 심정적으로 아주 가까우니까, 그리고 부산의 현실이 답답하니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지.”


그런 심정이었다고 해도 교만은 교만이고 무례는 무례다. 더욱이 이 전 대표는 부산시민과 무간하다고 할 그런 사이가 아니다. 언제 살뜰히 부산을 챙겨준 적이 있기나 했던가?


그랬거나 말았거나 그 총선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그 자신감으로 그런 것인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또 부산을 만만하게 여기는 듯한 언급을 했다. 그는 12일부터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 일정에 들어갔다. 첫 행선지는 울산 중앙전통시장이었고, 이틀째인 13일에는 부산 영도의 한 카페였다. 거기서 스타트업·소셜벤처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화두는 ‘지역 소멸’과 ‘균형 발전’이었다고 한다. 참석자들에게 그가 말했다.


“균형 발전이 인재부족 문제 해결의 단초다. 부산 재미없잖아, 솔직히.”

진솔한 사과 없이 되레 야당 공격

‘아차’했던지 “재미있긴 한데 강남 같지는 않은 측면이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은”이라고 (말하자면) 개칠(改漆)을 했다. 그렇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그래서 횡설수설이 되고 말았다. 벌건 대낮에!


그가 무슨 ‘재미’를 두고 한 말인지는 알 수 없다. 사업하기에 재미가 없다는 뜻이었다면 ‘강남’은 왜 들먹였을까. 아니면 노는 재미, 보는 재미를 말하려 한 것일까? 굳이 이해해 주자면 “부산에서 살며 사업하기가 아주 힘들잖아” 정도의 의미로 여겨지는데 말본새가 곱지 못하다.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비하하는 것도 아니고….


문재인 정권 사람들, 평등 공정 정의의 적(敵) 쯤으로 규정하고 공격해 온 곳이 ‘강남’ 아닌가. 그 지역을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재미의 중심’으로 규정해 주다니 별일이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라면 비단 부산만이 아니라 서울의 여타지역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왜 부산만이 재미없다고 했을까? 젊은이들이 서울로 가고 싶어 하지 않도록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는데 그럴 복안과 자신은 있고?


이 전 대표나 마찬가지로 이 후보도 편하게 말한다는 생각으로 “부산 재미없잖아”라고 한 것 같긴 하다. 부산사람끼리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생전 부산에 대해 별 관심을 가졌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여당 대선 후보로 와서 느닷없이 ‘재미’운운했으니 기분이 좋았을 리 없지 않은가.


장예찬 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는 “평소에 강남에서 무엇을 하길래 부산이 재미없는 도시라는 지역 비하 발언을 내뱉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이 재미없어 죄송합니다”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부산이 재미없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하면서 이 후보에 대해 “부산 시민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해달라”고 주문했다.


일종의 설화(舌禍)라 하겠는데 우선 진솔한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고 도리다. 그런데 이 후보 측은 공격하는 국민의힘에 “아전인수식 해석을 남발하고 있다”고 역공을 퍼부었다. 이소영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14일 “부산은 지역 국회의원 중 78%가 국민의힘 소속이다. 국민의힘은 부산을 떠나는 청년들과 기업들을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묻고 싶다”고 따지기도 했다.

부인 낙상을 순애보로 엮는 재주

이 후보의 진정을 왜곡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면 그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부산의 경제적 낙후성을 국민의힘에 묻는 것은 억지스럽다. 대통령 중심제 권력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다. 우선은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옳다. 문 대통령이 4년 반을 집권했으면서 출신지인 부산의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따지든지 같이 반성하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문 대통령은 그 이전에도 4년간이나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그 때는 뭘 했는지도 말해줘야 한다. 역시 부산 출신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는 또 어땠는지, 가능하다면 그것까지 밝혀줄 일이다. 민주당 소속이었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도 자랑삼아 말해 주든가.


도무지 자신들의 과실이나 과오에 대해 사과나 유감표명을 모르는 사람들인 것 같아 굳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문제를 초래해 놓고 되레 화를 내거나 심지어 고발까지 하고 나서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이 후보 부인의 낙상을 두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해서 네티즌 2명을 고발했다고 을러대는 민주당의 좀스러움을 말하는 것이다.


상상이 날개를 달고 우리 사회를 종횡한 것은 애초에 설명이 부족했던 탓이다. 이 후보 측이나 민주당 측은 사고 경위와 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해서 발표하기보다는 (신판) ‘순애보’ 엮기에 더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선거철이라고 해도 당사자 측에서 부부애를 호들갑스럽게 부각시키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해괴한 소문들이 괜히 나돌까.


이 또한 ‘교만’과 ‘무례’의 덫이라고 생각된다. 정말 진지하게 민심을 헤아리고 존중한다면 말 한 마디 손짓 하나에도 조심 또 조심하게 마련이다. 문 정권, 집권 민주당, 그 당의 대선 후보가 모두 힘이 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 위에 민심의 힘이라는 궁극의 권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이제 주권자의 심판, 민심의 선택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다. 이제까지 모른 채 권세자랑을 했다면 지금이 바로 깨달을 시간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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