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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자의 아픈 상처와 고통 [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입력 2024.12.27 13:53 수정 2024.12.27 13:53        데스크 (desk@dailian.co.kr)

넷플릭스 영화 ‘우리가 끝이야’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0.2초에 불과하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 데일리는 미국 시러큐스대학과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의 연구진이 공동으로 실시한 실험에서 이와 같은 결과를 보도했다. 사랑스러운 사람을 처음 보는 순간 뇌에서는 12 영역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도파민을 비롯해 아드레날린, 옥시토신 등을 방출해 행복한 감정에 빠져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게 되면 부작용 또한 크다. 상대방을 충분히 알지 못해 결국 헤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영화 ‘우리가 끝이야’는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남녀가 헤어짐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릴리(블레이크 라이블리 분)는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에 대한 추도사를 맡게 된다. 집 밖에서는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릴리에게 아버지는 폭언과 폭력을 조절하지 못하는 공포의 인물이었다. 추도사를 망치고 마음이 울적해진 릴리는 자신의 아지트 옥상 난간에 앉아 있다가 분노를 참지 못해 의자를 패대기치는 의사 라일(저스틴 밸도니 분)을 목격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고민을 말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곧 감당하기 벅찬 라일의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완벽했던 관계가 순식간 요동치면서 릴리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과연 그녀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는 가정폭력의 무서운 실상을 밝힌다.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폭력을 포함한 가정폭력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피해자는 자신의 상황을 숨기고 고통받지만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은 대를 이어 반복되고 또한 피해를 보는 경향도 있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는 모녀가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지만, 릴리는 자신의 딸 또한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밑에서 피해자로 자랄 것을 우려한다. 사랑해서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을 위해서,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위해서 이별 또한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세대를 뛰어넘는 여성 간의 우정을 보여준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릴리는 죽은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엄마를 측은하게 여기는 동시에 원망한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남편 역시 밖에서는 인정받는 직업인 의사지만 자신의 아버지처럼 폭력을 쓰는 남자였다. 릴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하고 가해자인 남편을 몇 번이나 용서하지만 결국 자신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낀다.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아버지의 좋은 점을 다섯 가지만 말하면 된다는 엄마였지만 릴리가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았을 때 엄마는 추도사를 거부해 딸의 아픔을 이해한다. 영화는 비록 모녀지간이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여성 간의 끈끈한 우정을 전달한다.


원작 이야기의 힘을 잘 살려낸 작품이다. 영화 ‘우리가 끝이야’는 콜린 후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배우이자 감독인 저스틴 밸도니는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의 작품을 자신의 3번째 연출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원작은 긴장감 있는 로맨스 속에서 가정폭력 피해자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흡인력 있는 스토리로 많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영화는 원작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기지만 훌륭한 원작은 좋은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다.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출산이 감소하면서 가정이 붕괴될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테슬러의 일론 머스크까지 한국을 저출산으로 인한 국가소멸의대표적인 사례로 들 정도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성간 그리고 가정에서의 갈등과 폭력도 중요한 배경이다. 가정폭력은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넷플릭스 영화 ‘우리가 끝이야’는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가정폭력의 위험성과 심각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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