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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도 찬성인데"…의료계, '실손청구 간소화' 반대 왜?


입력 2021.11.29 06:00 수정 2021.11.26 16:48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실손청구 전산화, 13년째 국회 '좌절'

의료업계 '비급여' 노출 우려에 '반발'

"소비자 피해 늘 것, 즉시 도입해야"

서울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 고객들이 실손의료보험 청구를 위한 서류를 떼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30대 직장인 A씨는 허리가 아파 병원을 찾아 4만원이 조금 넘는 치료비를 냈다. 이 치료로 실손의료보험을 탈 수 있단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청구 절차를 알아본 뒤 놀라고 말았다. 실손보험금을 받으려면 병원에 들러 진단 서류를 떼고, 다른 서류까지 받아 보험사에 내야 해서다. 이를 위해 투자할 시간도, 돈도 없었던 A씨는 4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생활에 지장이 없는 금액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결국 청구를 포기했다.


복잡한 실손 청구 절차 때문에 스스로 보험금을 포기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보험업계가 적극 나서 청구 절차의 디지털화에 나서고 있지만, 의료업계의 반대에 번번이 막히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실손 청구 간소화 법안이 올해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소비자 피해가 지속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3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이 논의되지 않았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담은 이 개정안은 정무위에 공식 상정되긴 했지만, 결국 국회 소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해 공식 통과 여부는 해를 넘기게 됐다.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 소비자 피해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가 합동으로 올해 4월 발표한 실손 청구 관련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2년 내 '실손 청구를 포기'한 소비자는 47.2%에 달했다. 진료당일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를 미처 챙기지 못했는데 다시 병원을 방문할 시간이 없거나(46.6%),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아서(23.5%) 청구를 포기한 응답자는 과반을 넘었다.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업계는 오히려 실손 청구 간소화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 실손 청구 간소화가 손해율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올 9월말 기준 실손보험 손실액은 1조9696억원으로 1년 새 10.4% 늘었다. 업계에선 연말까지 2조7000억원의 손실액이 발생해 역대 최대치였던 2019년 2조4774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일리안

실손 청구 절차를 간소화는 의료기관이 가입자의 진료 내용을 전산으로 보험사에 자동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실손 가입자가 별도 진단서, 소견서 등을 발급할 필요가 없어져 소비자 편의 증대는 물론, 의료기관의 비급여 항목 청구를 줄일 수 있단 게 보험업계 측 입장이다.


문제는 실손 청구 간소화를 가로막는 게 의료업계라는 점이다. 의료업계는 비급여 진료 현황이 노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비급여는 진료비 중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금액이다. 각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만큼 의료업계의 큰 수익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수도권 소재 700병상 이상 종합병원 33곳의 비급여 진료비 분석' 결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만 지난 2019년 2539억원에 달하는 비급여수입이 발생했다. 이 중 '거품'이 끼인 것으로 판단되는 금액은 무려 1398억원에 달했다.


정부나 보험사가 진료수가를 통제하는 상황도 의료업계의 반대 주장 가운데 하나다. 의료계는 공공기관인 건강보험심의평가원(심평원)이 보험 청구를 명분 삼아 모은 데이터가 누출되면 비급여 가격이 통제될 수 있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은 국민 4000만명이 가입한 사실상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만큼 청구 편의성이 확대되면 실익이 늘어나는 구조다"라며 "12년 넘게 논의가 중단돼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소비자를 위해서라도 청구 간소화는 꼭 통과가 필요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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