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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⑮] 박창근, ‘국민가수’ 우승이 반가운 이유


입력 2021.12.27 08:30 수정 2021.12.26 17:40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가수 박창근 ⓒTV조선 '국민가수' 화면 갈무리

지난 23일, 음악 예능 ‘국민가수’가 12주에 걸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가창력에 얼마나 자신 있으면 ‘대한민국 최고의 비주얼 가수’라고 자칭하는 김범수가 김동현의 ‘내가 가수가 된 이유’를 듣고 나서 “왜 이렇게, 잘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라고 말했던 것처럼, ‘국민가수’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가수라 불러도 손색없을 대단한 참가자들이 함께했다.


석 달 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그들 가운데 23년 무명의, 30대 외모를 한, 50세의 박창근이 최종 우승자가 됐다. 유치원 사랑반에 다니는 7세 김유하의 깨끗한 감성과 표현력에 반해 시청을 시작한 뒤 이름을 적기 시작하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빼놓을 수 없어 나열이 계속될 많은 국민가수에게 반했다.


경연의 특성상 가창력과 실수 없는 완벽성만 놓고 본다면, 김동현이 1위를 했어도 이견이 없었을 것이다. 김동현이 노래할 때마다 마스터들과 참가자 동료들이 “완벽해”를 말했고, 박창근의 표현대로 “CD를 틀어놓은 것 같은” 흠잡을 데 없는 무대를 선보였다. 김동현이 부른 ‘말리꽃’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다시 들을 ‘내 마음의 레전드’이다.


그런데 왜 박창근이 왕관을 썼을까. 그는 무명부 박장현, 권민제와 함께 ‘알고 싶어요’를 불렀을 때부터 마스터들로부터 “너무 잘한다, 눈물이 났다” “그런데 목은 가 있다” “구력이다, 내공이 다했다”는 평을 들었다. 일찌감치, 최상이 아닌 목 상태지만 23년 내공과 감성으로 노래했다.


박창근을 극찬하는 음악인 김태원 ⓒ이하 TV조선 제공

심각한 목 상태는 결승 1라운드 ‘다시 사랑한다면’을 부를 때도 확인됐다. 음 끝이 갈라졌고 듣는 이의 목도 쓰라렸다. 그런데도 박창근은 ‘기대 이상’이라는 듯한 윤민수의 웃음과 탄식을 잠재웠고, 처음부터 진지하게 집중했던 김태원에게서 ‘기막히다’는 미소를 자아냈고, 김준수의 “와아, 오늘 진짜”를 비롯해 숨죽이고 듣던 마스터들의 감탄을 불렀다. 엄한 선생님 박선주도, 언제나 따뜻한 백지영도, 밝은 미소로 용기를 주는 이석훈도 인정했듯 말 그대로 “미친” 최고의 무대를 선물했다. 다시금, 오래 묵힌 내공과 절절한 감성으로 물리적 목 상태를 잊게 했다.


가수는 자신이 울면 안 되고 관객을 울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관객보다 먼저 가수가 기쁨과 슬픔에 도취하면, 관객의 울고 웃을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박창근에게 우승의 영광을 안겨 준 최종 무대에서, 그는 울컥했다. 복받치는 감정을 누르려 누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랜 세월 혼자 힘으로 버텼던 노래의 순간들이 떠올랐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보는 TV에서 노래 한번 하는 걸로 생일선물을 주고 싶었던 엄마, 어떠한 순간에도 아들에게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고 가수의 길을 지지하고 응원했던 엄마를 생각했을 것이고 경연의 마지막 무대라는 감회도 밀려왔을 것이다.


스스로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엄마’를 부르며 박창근은 특히 ‘보구싶구요’에서 흔들리기 시작해 ‘미안하구요’ ‘사랑하구요’는 정말이지 솟구치는 울음을 참으며 간신히 불렀다. 이어진 엄마를 연호하는 대목에서는 예닐곱 살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무릎에 생채기가 나서 “엄마~~”를 부를 때처럼 목놓아 불렀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했다.


자칫, 아마추어 태도라고 폄훼될 수도 있음을 안다는 듯 박창근은 노래가 끝나자마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정말 사과해야 할 일이었을까. 진정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모습이었을까. 평가는 실시간 투표로 국민이 했다. 결과는 도리어 직전의 합계 순위를 뒤집는 우승이었다.


서로 다른 매력으로 행복을 주는 김동현과 박창근(왼쪽부터) ⓒ

왜 시청자는 박창근에게 표를 주었을까. 2위를 차지한 김동현과 박창근을 예로 들자면, 가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유형은 여러 기준에서 여러 분류가 있지만). 넋 놓고 감상하게 하는 가수, 교감 속에 그의 노래가 나의 노래가 되는 가수.


김동현은 정말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싶게, 완벽한 무대로 전율을 안기는 가수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김연우가 떠오른다. 김동현이 고음을 낼 때면 조금도 불안해할 필요 없다, 잘 올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힘과 감성이 더 커지고 넓어진다. 감성도 세련미 넘치는 선에서 절제한다. 정말 흠잡을 데가 없다. 스스로 몸을 악기 삼아 오랫동안 정성으로 갈고닦아 왔을 인고의 시간이 보여 이런 노래를 들려준다는 게 고마울 지경이다. 앞으로도 계속, 김동현이 부르는 새로운 노래를 듣고 싶다.


박창근은 결국 노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가수다. 처음엔 그의 고우면서도 힘 있는 음색과 공기마저 자신의 밴드로 쓰는 내공에 감탄하고, 들을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감성에 마음의 빗장을 연다. 박창근의 노래, 그 안에 담긴 그의 사랑과 인생에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내 사랑과 인생의 파노라마가 박창근의 선율 위에서 요동친다. ‘박창근의 엄마 생각이 안쓰러워서’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부모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에 감동하고 우는 자신을 발견한다. 울림, 공명이다. 함께 울고 웃는 앞에서 흔들린 음정, 절제하지 못한 감정이 대수겠는가. 자신을 넘어 우리, 우리를 넘어 시대의 아픔과 공명했던 김광석이 연상되는 이유다.


언제나 웃을 수 있는 마음, 박창근의 보물 ⓒ화면 갈무리

이런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도 명성을 얻지 못하면 억울했을 법도 한데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은 박창근. 반백 년을 스스로 가하는 박차로 살아온 그인 만큼 대중의 사랑과 칭찬 속에 맞이할 반백 년은 거뜬히 노래하리라 믿는다. 본인이 말했듯, 죽는 날까지 우리 곁에서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TOP 7이 아니라 TOP 10, 준결승에 오른 14명뿐 아니라 본선에 오른 가수들도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확인해 볼 기회를 국민 앞에 얻었던 만큼 이제 제대로 담금질을 시작할 때다. 이번에 받은 성적, 순위가 자신의 최종 성적표는 아니다. 무엇보다, 점수에 얽매이지 않고 무대를 즐기고,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시청자 대중에게 “노래를 올렸던” 박창근이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이유를 되새길 때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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