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인사들 "얼굴 변했다" "성형수술로 외모 가꾼 사례" 김건희 얼평
2030 여성들 "외모 품평에 검증은 실종…아이돌 뽑을 때도 이 정도는 아냐"
여성학계 "여성을 선거과정에서 가십성으로 소모하고 신체자본으로만 측정하려해"
"외모 칭송·혐오는 여성을 주저앉히고 싶어하는 은밀한 작업"
'허위 이력' 논란에 대국민 사과를 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에 대한 얼평(얼굴 평가)과 화장법 지적이 난무하면서 여성 혐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품평 논란은 선거과정에서 여성을 가십성으로만 소모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여성을 동등한 주체가 아닌 일종의 신체자본으로만 측정될 수 있는 존재로 만들고 있다며 우려했다.
지난 8일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씨의 과거 사진과 2019년 7월 윤 후보의 검찰총장 임명식 때 배석했던 모습을 나란히 올린 뒤 "(김 씨의) 얼굴이 변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눈동자가 엄청 커져 있다"고 적었다. 논란이 일자 지난 13일 다시 김씨의 사진을 공유하며 "그저 커진 눈동자가 신기했을 뿐"이라고 썼다.
해당 글에는 여권 지지 인사인 진혜원 수원지검 안산지청 부부장검사가 관상을 언급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진 검사는 "입술산 모습이 뚜렷하고 아랫입술이 뒤집어져 있고, 아래턱이 앞으로 살짝 나와 있다"며 "여성적 매력과 자존감을 살려주는 성형수술로 외모를 가꾼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관상 관점에서"라고 댓글을 남겼다.
이후에도 손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화장법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김씨가 사과를 하는 사진에 대한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의원의 글을 공유하고, "한껏 홍조 올린 화장에 순간순간 배시시 미소를 흘리는 이 태도가 사과의 모습이라고?"라고 적었다. 이날 허위경력 의혹 사과를 위해 기자회견을 연 김 씨의 태도가 부적절했다는 취지다.
2030 여성들은 정치권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같은 외모 품평 논란에 대해 "성차별적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직장인 정모(28)씨는 "김건희씨를 쥴리라고 하거나, 자녀가 없는 엄마라는 점을 물고 늘어지는데, 이제는 하다하다 외모까지 지적하느냐. 허위 경력이나 표절 문제가 공정성 측면에서 훨씬 큰 문제"라며 "비판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허구한날 외모 타령인가. 무슨 아이돌 뽑나"라고 꼬집었다.
직장인 이모(31)씨는 "김건희씨 기자회견을 보고 주변에서 예쁘긴 예쁘다, 누구 닮았다 등 외모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해 선거에서 중요한 검증이 실종되는 것 같았다"며 "서바이벌 아이돌 프로그램이었던 프로듀스101도 이 정도로 실력을 안 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이돌 경합대회 보다도 수준이 떨어지는 대선"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선거 과정에서 여성을 가십성으로만 소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김건희씨의 기자회견을 정의나 공정성 차원에서 '국민들의 요구에 제대로 답변했는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성형 여부나 화장 방식으로 소비하는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소위 공적인 영역에 여성이 진출하면 여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가 외모가 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윤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여성이 공적 영역에 나오면 그 여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노 단위로 품평하고 평가하는 사고방식이 팽배한데, 이는 여성을 동등한 주체가 아니라 일종의 신체 자본으로만 측정될 수 있는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극히 우려된다"며 "쥴리 여부, 성형 여부 등은 선거 검증 절차에서 논의될 가치가 없는 것들"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영부인의 자리는 가부장 사회 질서 안에서 아이를 낳고 부계 혈통의 정통성을 위반하지 않는 내조와 정숙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관점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쥴리 논란은 성적으로 정숙해야 한다, 자녀가 없는 김건희씨를 강조하는 것은 여성이 육아를 잘해야지 하는 요구들이 모두 함축돼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학계 인사는 "주체적이고 당당한 직업인으로서 일하다 허위 기록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고 얘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수동적인 여성인지 부각해 스스로 이런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만약 남성이 헤어 드라이를 하고 양복 수트를 입고 사과를 했다면 외모로 이렇게 주목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수용자들이 김건희씨를 예쁘다고 얘기하거나 외모를 깎아내리면서 비하하는 것도 본질을 흐리는 공격"이라면서 "여성의 논리성이나 합리성을 찾기보다는 일단 외모에 집중하는 것은 여성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격체나 주체로 보지 않고 상품화하거나 평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사회적 차별 요소는 결국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예뻐야 한다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고, 예쁜 여성을 칭송하고 찬양하는 사회에서는 못생긴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칭송과 혐오는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서 "'못생긴 여성들은 여자가 아니다'는 전제도 성립해 여성의 외모를 부각하고 칭찬하는 것 역시 여성을 주저앉히고 싶어 하는 은밀한 작업"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