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홍종선의 명대사⑳-1] 토닥토닥 위로 한 모금, 커피 한잔할까요?


입력 2022.01.09 08:57 수정 2022.01.16 11:55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시청자가 본 드라마 '커피 한잔 할까요?'

볼수록 행복해지는 드라마 ⓒ이하 카카오TV 제공

너무 좋은 걸 보고 나면 겁이 덜컥 난다. 연출과 연기와 음악과 미술과 조명과 메시지…, 내가 이 작품의 면면을 잘 전할 수 있을까. 작품이 지닌 너무나 많은 장점, 내가 받은 감동과 위로를 잘 소개하고 전해서 한 분이라도 더 보시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큰 데서 오는 겁이다. 자세히 전할 필요는 없다고, 너에게 그런 글재주가 없어도 된다고, 명작은 시청자가 먼저 알아보시니 그저 ‘또 하나의 댓글’ 정도를 달면 되는 거라고 스스로 부추기며 노트북을 열지만 영 엄두가 안 난다.


그럴 때 힘이 되는 존재들이 있다. 앞서 작품을 접한 시청자분들의 평, 이 좋은 작품 안에 이미 담겨 있는 명대사, 그걸 소개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지금 기사를 시작하고 있다. 가장 좋은 평, 가장 좋은 대사를 선정할 자신도 없다. 전부 소개하고 싶을 만큼 기막힌 댓글도 명대사도 많다. 그중에 몇 개만, 그저 개인적 취향으로 전해 보려 한다.


'2대커피' 전경 ⓒ

기사 쓸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좋았던 작품은 드라마 ‘커피 한잔 할까요?’(연출·극본 노정욱, 기획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작 컨텐츠크리에이티브그룹 문)이다. 노정욱 감독도 분명 ‘커피 한잔할까요?’가 어법을 따르는 띄어쓰기임을 알면서도 말의 속도와 뉘앙스를 살려 적은, 또 허영만 작가의 원작 만화를 그대로 따른 제목일 터. 좀 더 겸손하게, 주저하듯 청하는 제목이지만 보는 우리는 주저 없이 봐도 좋을, 하루치 고단함을 풀어 주는 한 모금의 위로가 에피소드마다 담겼다.


시청자 ‘지니’ 님의 “진짜로 등장인물들이 동네 근처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어. 나 너무 힐링 되는 거 같아. 진지하게 (말하는데), 이런 드라마를 일일드라마로 만들어 주면 안 돼? 매일 하나씩 보면 매일 치유 받는 기분이 들 거 같아”라는 글에서 같은 마음을 보았다. 정말 매일 보고 싶은 드라마다. 여러 편은 욕심, 하루 하나씩 누군가 오늘을 산 이야기로 내일을 살아갈 힘을 나눠 받고 싶다.


동네 사랑방이 된 커피자판기 앞 '공존' ⓒ

“일상적인 음료 ‘커피’를 둘러싸고 개성 강한 삐쭉 빼쭉한 여러 사람의 각기 다른 삶의 태도와 소통방식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대사들이 세밀하고 개인적이어서 참 마음에 와닿는다. (중략) 카페인의 기운을 편안하게 상승시키는 이 드라마, 느낌 있다. 그래서… 참 좋다…”고 4화까지의 소감을 적었던 ‘묘淑’(숙) 님은 12화까지 완료한 뒤 “절제 있고 편안하고 느낌 있는 K드라마, 오랜만에 참 잘 보았다”라고 후기를 완성했다.


맞다. ‘커피 한잔 할까요?’는 12화로 끝을 맺었다. 대를 이어 커피를 내리는 건지, 대한민국에서 커피 맛있는 두 집을 뽑으면 그 안에 든다는 자부심을 담은 건지도 알려주지 않고(^^) ‘2대커피’라는 이름을 건 고즈넉한 동네 카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느긋한 햇살 아래 천천히 마시는 커피 같은 이야기를 끝냈다.


“왜 끝인 거죠, ㅜㅜ. 16화까지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회라니…. 요즘 확 추워졌는데 이만큼 따뜻한 드라마가 또 어딨다고 ‘쫌만’ 더 해주지”(시청자 ‘네티’)


'겉바속촉' 무뚝뚝하지만 깊은 배려와 넓은 아량을 지닌 박석 ⓒ

‘2대커피’ 사장 박석(박호산 분)은 일에 관한 고집이 세다. 커피 평론가 초이히트(송재룡 분)의 설명을 빌자면, 박석은 최고급 혹은 ‘스페셜’ 생두, 90점짜리 생두를 가공해 90점 혹은 그에 못 미치는 점수의 비싼 커피를 파는 대신 70점짜리 평범한 아라비카 또는 로브스타 생두를 바리스타의 정성과 애정으로 로스팅하고 추출해 70점 이상의 커피를 합리적 가격에 내놓는다.


박석의 커피는 글 쓰는 김주희 작가(서영희 분)나 웹툰 그리는 안미나 작가(김예나 분), 빵 만드는 일로 진로를 정하고 하교 후 베이커리 카페에서 몸으로 부대 배우고 있는 고3 정가원(추예진 분), 고깃집 황 사장(이주실 분), 부동산 남 사장(김왕근 분)처럼 동네를 잘 벗어나지 않는 이들에게만 행복을 주는 게 아니다. 시내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보온병을 들고 와 하루를 함께할 커피를 담기 위해 일찍부터 줄을 선다. 동네 사람 아니어도 각자의 사연과 이유, 약속으로 ‘2대커피’를 알게 된 사람들의 마음에도 온기가 퍼진다.


바리스타 박석과 강고비(왼쪽부터) ⓒ출처=네이버 블로그 micahyesung

한 자리에서 20년, 오롯이 혼자 ㄱ에서 ㅎ까지를 해온 박석 곁에 신입이 생긴다. 싹싹하고 예의 바르고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하지만 할 말은 하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말끔한 청년 강고비(옹성우 분)가 숱한 지원자가 뚫지 못한 벽을 넘어 박석의 애제자가 된다. 드라마 속 표현처럼 비옥한 땅에서 잘 자란 아라비아카 같은 박석과 척박한 땅에서 커서 아직은 투박해 보이지만 가능성이 풍부한 강고비의 ‘서로 다름’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한다.


배우 박호산은 자칫 가르치려만 드는 꼰대로 보일 수 있는 박석을 겸손의 시간 속에 다져진 특유의 차분함과 사람 넉넉해 보이는 미소로 멋지게 살렸고, 좌충우돌 실수투성이로 보일 수도 있는 강고비를 배우 옹성우는 다부지게 내일을 열어가는 청년으로 소화해 냈다.


김주희와 박석(왼쪽부터), 뜨겁지 않아도 좋은 '따스한 커플' ⓒ이하 카카오TV 제공

요즘 청년 강고비의 성장기에만 집중했다면 드라마는 인위적으로 감동을 지어내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커피 한잔 할까요?’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다. 매회 등장하는 주요 배역뿐 아니라, 회차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에피소드별 인물들도 각자의 이야기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렸다.


아직 덜 익어 푸릇한 젊은 배우들, 농익었으나 회차별로 바뀌며 오가는 특별출연 배우들을 한데 어우르고 잠시 들른 손님처럼 보이지 않게 한 주연배우가 있었으니 박호산과 서영희다. 두 사람은 드라마의 중심축 역할을 톡톡히 했다. 표나게 나서지도 않고 뽐내지도 않고 묵묵히 배경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노정욱 감독의 연출 스타일 그대로, 드라마 분위기 그대로의 연기였다.


박석과 김주희는 연인 관계인데, 그조차도 유별스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과 애정을 잘 표현했다. 아마도 커피에 몰두하느라 아직 미혼인 박석,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뒤 혼자 딸을 키우고 있는 김주희, 힘들 때 가장 큰 힘이 되고 편이 되어 주는 두 사람의 덤덤한 사랑이 참 아름답다.


자신의 힘, 오늘의 노력으로 내일을 만들어가는 청년 강고비 ⓒ

드라마를 보노라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안다는 표현조차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시나브로,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누가 지키고 있는 것인지. 지구든 대한민국이든 이 세상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건 정치권력자도 돈 많은 사람도 사회지도자도 아니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힘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 남이 준 게 아니라 스스로 가꾼 일상의 기쁨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또 내 곁의 사람을 위해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구나.


세상만이 아니다. 오늘의 나를 진정한 행복 속에 살아가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기쁜 일이 있을 때 잠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행복을 키워 주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클릭! 방영은 끝났지만 왓챠에서 볼 수 있다.


[홍종선의 명대사⑳-2] ‘명언 메이커’ 박석과 커피 한잔할까요?…로 이어서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