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이어온 해운업계 ‘관행’
허술한 법망으로 갈등 야기
촘촘한 제도로 재발 막아야
이 말은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요즘에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로 뒤집어 많이 표현하는데 의미는 같다. 착한 신이든 나쁜 악마든 핵심은 ‘디테일’이란 점이다.
디테일을 강조하는 것은 대충 보면 쉬워 보이고 완전해 보이는 것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구멍’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허점 때문에 쉽게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하고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갈등이나 문제를 낳기도 한다.
법(法)은 특히 더 그렇다. 세상 속 많은 갈등을 규제하고 행위를 통제하는 최소한의 규칙이고, 만인에게 적용되는 기준이기 때문에 최대한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 구멍 난 법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고 잘못된 결론으로 사회적 혼란을 가져온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촘촘하고 빈틈없어야 한다.
지난 1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원회의를 열어 ‘한국-동남아시아 항로 컨테이너 해상화물운송 서비스 운임 관련 23개 사업자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건 및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대한 건’을 심의했다.
일명 ‘해운 담합’이라 부르는 이 사건은 해운사 23곳이 2003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동남아 노선에서 운임 담합을 하다 적발된 내용이다. 지난 2018년 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가 이를 신고해 공정위가 지난 3년 동안 조사했다.
조사 끝에 공정위 심사관은 이들 업체가 운임을 부당하게 담합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최대 8000억원 가까운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 등을 검토 중이다.
심사보고서를 받은 관련 해운사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다만 담합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담합은 했으나 불법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해운사들이 담합하고도 불법이 아니라는 이유는 해운법 29조 때문이다. 해운법 29조에는 ‘외항 화물운송 사업의 등록을 한 자는 다른 외항 화물운송 사업자와 운임·선박 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해운사 담합을 허용한 것이다.
다만 해운법은 협약 참가나 탈퇴를 제한해서는 안 되고 협약 내용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협약 내용이 달라진 경우도 신고해야 한다. 화주(화물 주인) 단체와 사전 협의도 담합 허가 조건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세밀하지 못한 법 때문이다. 가격담합 허가 조건은 해석에 따라 서로 다르게 이해할 여지가 있다. 화주와 협의하라는 데 어디까지를 협의로 인정할 것인지, 해수부에는 어떤 내용까지 보고해야 하는지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같은 정부 부처 사이에도 의견이 부딪히고 있다. 해수부는 해운사로부터 가격담합 보고를 모두 받았다는 반면 공정위는 해수부가 받은 신고 외에 다른 것들까지 신고했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해운사들은 장기 불황으로 수년째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공정위는 이들을 시장 질서를 해친 가해자로 보고 있다. 허술한 법이 해운사를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드는 상황이다.
공정위와 해수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래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고치는 게 당연하다. 부디 이번 ‘해운법 리모델링’은 더욱더 촘촘하게 만들어 해운사와 화주 모두 법 테두리에서 자신들 권리를 보호받고 이익 활동을 이어갈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