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90달러 턱밑…수요 회복+지정학적 리스크 혼재
1Q 재고평가이익 전망에도 "수요 감소 시 장기적으로 부정적"
올해 들어 고공행진하고 있는 국제유가가 90달러 가까이 올라서면서 정유사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최근 유가는 석유제품 수요 회복 뿐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 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치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수요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원유 구매 부담만 높아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2일(현지시간) 기준 WTI(서부텍사스유)가 88.26달러를 기록, 올해 초 76.08달러 보다 12.18달러(16.0%) 상승했다. 올해 들어 최고치다.
같은 기간 브렌트유는 10.49달러(13.30%) 오른 89.47달러를 나타냈다. 브렌트유는 지난달 30일과 31일 이틀간 90달러를 웃돌기도 했다.
그간 유가는 글로벌 전역으로 확대된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각국의 경기 부양책 등에 힘입어 지난해 2분기부터 꾸준히 상승해왔다. 그 결과, 국제유가는 팬데믹 충격을 겪은 2020년 두바이유와 WTI 연평균 가격이 각각 42.29달러, 39.34달러에 불과했으나 1년 뒤인 2021년에는 69.41달러, 68.11달러로 반등했다.
올해 역시 석유제품 수요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최근 80달러 후반대로 급격히 오른 유가는 석유제품 수요 뿐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 중동 지역 분쟁 등 지정학적 이슈가 얽혀 있어 불확실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은 2일(현지시간) 러시아를 겨냥, 동유럽에 병력 3000명 추가 파병을 결정한 데 이어 반도체 수출 금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 군사적, 경제적 제재 조짐에 러시아-서방 국가들간 신경전이 날로 격화되는 분위기다.
그런가하면 중동에선 예멘 반군이 지난달 무인기와 탄도미사일을 이용해 UAE(아랍에미리트)를 세 차례나 공격했다. 이에 미국은 UAE에 최첨단 전투기 등 추가 전력을 배치하기로 하면서 전면 대응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중동 지역 갈등은 국제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원유·천연가스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수급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미국의 추가 증산 요청에도 하루 평균 40만배럴 증산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점도 유가 상승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같은 글로벌 흐름으로 국제유가는 12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JP모건은 OPEC+의 생산량 부족에 국제유가가 올해 125달러, 2023년엔 15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IHS마킷의 애널리스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원유 가격은 더 오를 수 있으며, 서방의 제재는 에너지 수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는 최근 국제유가 상승이 긍정과 부정적 요인이 혼재된 현상인만큼 당장 호재 또는 악재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간 유가 상승은 정유사 실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나, 석유제품 수요가 덩달아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높여왔다. 실제로 지난해 말까지 석유제품 수요 회복에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 이상으로 올라서면서 국내 정유사들은 모두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 등 비용을 뺀 가격으로 통상 업계에서는 배럴당 4~5달러를 정제마진 손익분기점(BEP)으로 판단한다. 최근 정제마진은 6.5달러까지 상승했다.
정유사들은 국제유가를 둘러싼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재고평가이익(원유 구입 시점과 제품 판매 시점 차이를 통해 갖는 이익) 등 긍정적인 영향과 석유제품 수요 부진 등 부정적인 영향 등을 이해득실을 살피고 있다.
정유사는 원유를 매입한 후 정제 과정을 거쳐 통상 2~3개월 후에 판매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처럼 유가가 단기간에 상승하면 싸게 산 원유 비축분의 가치가 올라 이익을 본다.
다만 국제유가가 지나치게 올라 제품 가격이 급등하면 수요가 줄어 정유사들의 마진(제품-원유 가격차이) 이 악화될 수 있다. 만일 제품 수요 증가 없이 원유값만 올라간다면 정유업계는 원재료 부담만 늘게 돼 수익성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현재 유가 상승은 수급 문제 외에 지정학적 문제가 겹친 현상"이라며 "수요가 탄탄하다면 유가 상승분 만큼 제품 가격에 전가돼 정유사들의 실적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지나친 유가 상승으로 제품 수요가 위축될 경우 그만큼 마진 확보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