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M&A 승인 조건에 운수권·슬롯 반납
김포발 국제선과 몽골 노선 제외…노선별 특성 감안 없어
미주·유럽 장거리 노선 확보 기대…경쟁력 확보는 미지수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간 인수합병(M&A) 조건으로 운수권(항공사가 운항할 수 있는 권리)·슬롯(Slot·항공사가 특정 시간대에 배정받은 항공기 운항 횟수) 반납을 내걸면서 향후 이뤄질 재배분에 이목이 쏠릴 전망이다.
노선 추가 확보를 기대했던 저비용항공사(LCC)들 사이에서는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는 상황으로 LCC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2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이날 오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간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운수권 및 슬롯 반납을 제시하면서 LCC들의 알짜노선 확보를 위한 행보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양사간 M&A 승인 조건으로 경쟁제한성이 큰 국제선 여객 26개 노선과 국내선 여객 8개 노선에 대해 향후 10년 내 슬롯과 운수권을 이전하는 구조적 조치를 부과했다. 향후 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사업자에게 슬롯과 운수권을 재배분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선 및 중·단거리 노선 아쉬움…기한 10년 길어
이번 조치에 대해 LCC업계에서는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다. 국내선과 중·단거리 국제선 노선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장거리 노선에 대해서는 기대감이 좀 더 큰 모습이다.
대표적인 것이 김포공항 출발 국제선으로 이번 공정위의 승인 조건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공정위가 인근 공항을 하나로 묶어 경쟁 제한성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서 경쟁 제한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 노선의 경우,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을 하나로 묶고 나리타와 하네다 공항을 하나로 묶어서 판단했다. 김포~하네다 노선의 경우 진입 장벽이 높은데도 LCC들이 대부분 인천~나리타 노선을 운항하고 있어 경쟁성 제한 우려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됐다는 것이다.
김포-하네다 노선은 비즈니스 수요가, 인천~나리타는 여행·관광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을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포~하네다 노선의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아쉬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LCC들의 반응이다.
또 이들은 공정위가 몽골 울란바토르 노선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노선이 시장 1위 사업자인 몽골항공과 우즈벡항공이 강력한 경쟁자로 운항해 경쟁 제한성이 없다고 본 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울란바토르 노선의 경우, 과거 대한항공이 독점하던 노선으로 국토부가 지난 2019년 아시아나항공에 추가로 배분했었는데 이번 M&A로 다시 단일 항공사 노선으로 통합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김포와 인천을 서울로, 하네다와 나리타를 도쿄로 하나로 묶어서 판단한 것은 노선별 특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조치”라며 “울란바토르 노선의 경우, 국토부가 아시아나항공에 추가 배분할 당시 운임 하락 효과로 인한 소비자 편익 증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정부간 다른 관점이 확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슬롯·운수권 이전 기한을 10년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길다는 입장으로 항공자유화와 비자유화 노선, 국제선과 국내선 등 모두를 동일한 기간을 설정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선의 경우, 국제선과 달리 슬롯 반납만 이뤄지면 바로도 가능한데 기한을 국제선과 동일한 10년으로 책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각 노선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기간을 차등 부여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중대형기 도입으로 장거리 노선 확보 본격화
국내선과 중·단거리 국제선 노선과 달리 장거리 국제선 노선에서는 LCC들의 기대감도 나타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인천~뉴욕·로스앤젤레스(LA)·시애틀(이상 미국)·바르셀로나(스페인) 등 15개 항공자유화노선에서는 국내 공항 슬롯을, 인천~런던(영국)·파리(프랑스)·로마(이탈리아) 등 11개 항공비자유화노선에서는 슬롯과 운수권을 신규로 진입하려는 항공사에 이전해야 한다.
이에 반납되는 운수권과 슬롯을 확보하게 되면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티웨이항공의 경우, 이달 말 총 347석 규모의 중대형 항공기 A330-300 기종 1호기 도입을 시작으로 상반기 내로 총 3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항공기 도입 시기와 운수권 슬롯 재배분 시기가 맞물리면서 유럽과 미주, 호주 등에서 나오는 노선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최대 LCC 제주항공은 미주와 유럽 등 장거리보다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중거리 노선에 더욱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최대 항속거리가 5352km(기본모델 기준)인 보잉 737-800 단일기종을 운용하고 있는데다 내년부터 오는 2027년까지 최대 50대를 도입할 보잉 737-8 맥스 항공기도 최대 항속거리가 6570㎞에 불과해 장거리 노선은 운항이 불가능하다.
티웨이항공 외에 에어프레미아가 중대형기 도입을 통해 장거리 노선 운항을 노리고 있지만 에어프레미아는 설립 당시부터 LCC가 아닌 국내 최초의 하이브리드항공사(HSC·Hybrid Service Carrier)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다소 성격이 다르다.
에어프레미아는 최대 항속거리 1만5000㎞ 이상의 보잉 787-9를 도입해 유럽 노선 등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수권·슬롯 확보해도 경쟁력 확보는 별개
다만 LCC가 미주와 유럽 등 장거리 국제선 운항을 위한 운수권과 슬롯을 확보하더라도 실질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LCC가 장거리 국제선 노선에서 운항 경쟁력을 갖추려면 대형기 도입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업 모델 전환과 운항 노하우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LCC들의 보유 기재 현황을 감안하면 사업 모델 전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노하우 축적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어진 10년이라는 시간도 대형 항공사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 온 과거를 감안하면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고효율과 가성비(가격대비성능)에 방점이 찍혀있는 LCC에게는 장거리 노선 운항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본적으로 LCC의 사업 모델은 중단거리에 최적화돼 있다”며 “장거리 노선에서의 경쟁력 확보보다는 중단거리 노선에서의 경쟁력 극대화가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도 보다 긍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북미와 유럽 등 장거리 국제선 노선에서 국내 항공사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반납하는 노선은 국내 항공사든, 외국 항공사든 구분을 두지 않고 배분할 계획이다. 슬롯이나 운수권 배분에서 국내 항공사와 외국 항공사를 차별적으로 조치하는 것은 위험하고 부적절하다는 판단이다.
결국 장거리 국제선 노선에서는 LCC가 아닌 외항사의 진입으로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약화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향후 10년간 신규 진입하려는 다른 항공사가 없으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통합 항공사는 슬롯·운수권 반납 대상 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지만 공정위가 항공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추진한 경쟁제한성 해소는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